디아스포라
인도네시아 땅그랑 교회
데미안을 두 번 읽었다.
고등학교 때와 그리고 삼십대 초반 즈음에. 기억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전혀 다른 느낌의 책이었다.
새는 알을 까고 나온다는 단순한 문장에서 시작된 思惟ㅡ 하나의 세계가 파괴되지 않으면 새로운 세계로 나갈 수 없다는 그 통찰의 시선이 눈부셨다.
가끔 여행을 떠나며 여행에 대해 정의해보곤 하는데
습관을, 일상을, 나를 떠나는 작은 파괴의 시간이 아닐까,
알속에서 나는 소리 줄(啐)을 내는 시간, 새로운 풍경과 낯선 사람들의 삶
그들의 문화는 아마 어미닭의 탁(啄)일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성찰하게 하고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게 하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여행 복을 주셨는지 MDiv 11기 동기 몇 분들과 낯선 도시 인니印尼여행을 하게 되었다.
마침 황은연목사님 자제인 원은재집사가 그곳에서 사업을 하고 있어 여행이 기획되었는데
의도치도 않게 럭셔리 투어를 하게 되었다.
맛있는 음식과 좋은 잠자리 그리고 기사 달린 차를 두 대나 제공해주었고
바쁜 사업가께서 가이드를 자처하고 나서 더할 수 없이 완벽한 여행이 되었다.
나는 도무지 갚을 길 없어 그분께서 갚아주시리라 기도한다.
그리고 여행 후반 마치 여행의 방점을 찍듯이,
주님께서 준비한 탁(啄)인양, <땅그랑 교민교회>를 만나게 되었다.
인도네시아는 같은 아시아이면서도 왠지 내겐 미국이나 유럽보다 더 아득한 도시다.
인구가 세계 4위인 나라.
400여년 가까이 네덜란드의 속국인 나라 그래서 그들의 표기언어는 알파벳이었다.
물론 읽는 방식은 전혀 달랐지만,
그곳에 가서야 무슬림이 87% 이상이라는 가이드의 말을 듣고 놀랐다.
그리고 첫날 새벽 네 시 반에 거침없이 우리의 잠자리 속으로 파고들던 무슬림의 새벽기도 소리라니,
새벽이라 해서 작지도 않았다.
아마도 호텔 어디에서 하는 기도소리였다.
어린 시절 새벽 잠 속에서 아스라이 들리던 아름답고 청아하던 교회 종소리를 잊고 사는 내게
이슬람의 기도소리는 경이로움을 넘어 두려움을 주곤 했다.
그들의 기도소리는 여행 내내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하루 네 번씩 들려오곤 했다.
실제 크지 않는 장사터에도 그들은 소규모기도처를 만들어놓고 있었다.
그래서 어디서든지 기도시간이 되면 기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완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이슬람은 종교가 아닌 삶이었다.
그런 빙하(?)의 극지로 MDiv 11기 동기인 김재봉 선교사는 선교사 훈련을 받고 떠나게 된다.
한국 도자기 직원들의 신앙생활과 그곳에서 일하는 지역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계획되었던
선교지 사역은 처음부터 꼬이고 막혔다.
결국 막막한 가운데 낯선 나라에서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십여 년의 성상이 흘러갔다.
교민들을 위한 교회에서 멈추지 않고 2000년 교인 자녀들을 위해 꿈나무 유치원을 개소했다.
그리고 연이어 현지인들을 위한 꿈나무 유치원 2가 개설되고
2004년 나환자촌에 꿈나무 유치원 3이 개원되었다.
2005년 꿈나무 초등학교가 문을 열었고 2011년에는 꿈나무 중학교
2015년에는 꿈나무 고등학교까지 허가를 받아 당당한 고등학교로 서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2001년 제 1 사랑의 집인 보육원을 개원했고
가까운 지역 내에 있는 나환자촌에 제 2사랑의 집을 설립했다.
2005년에는 나환자촌 자녀들을 대상으로 장학금도 주기 시작했다.
풍산성결교회 청주서원교회 서호성결교회의 지원을 받아 현지인들이 사역하고 있는 교회개척도
벌써 세 교회였다.
땅그랑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성도들과 같이 한 점심식사는 정말 맛있었다.
한국김치보다 더 맛갈지고 정갈스러웠다.
나는 마치 그 김치가 땅그랑 교회의 성도들처럼 여겨졌다.
예쁘고 정갈스럽고 맛갈진 성품의 성도들,
먼 나라로 떠난 이유는 모두다 각각이리,
그러나 그 먼 나라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한곳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가며 서로를 위로하고 위로받는다는 것,
교회 아니면 그 무엇이 외로움을 감싸주리.
더군다나 이슬람교의 기도소리가 날마다 시간마다 퍼지는 땅에서 학교를 세우고
그 학교에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말씀을 가르친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단순히 땅그랑 교회의 풍성한 열매에 대한 찬사가 아니다.
외적인 부흥이나 성장에 대한 찬양도 아니다.
땅그랑 교회가 나를 감동시킨 것은 그런 외적인 성장이나 교민교회의 부흥이 아니었다.
저절로 느껴져 오던 힘들고 고독했을 선교사님 내외분의 절절한 아픔 때문만도 아니었다.
이쯤 살아오니 저절로 체득되거나 보여지는 것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열매도 귀히 여기시지만 그보다 그 열매를 만드는 과정을 더욱 세밀하게 보신다는 것,
그런 과정이 사람 속에 자리 해서 그 사람이 된다는 것,
어쩌면 땅그랑 교회의 모든 열매는
김재봉 선교사님의 정!직!한 삶의 모습 때문에
주님께서 만들어 주신 선물이 아닐까,
당연히 나의 정직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는데 그저 나는 부끄러웠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너머'를 뜻하는 '디아(dia)'와 '
씨를 뿌리다'를 뜻하는 스페로(spero)가 합성된 단어로,
이산(離散) 또는 파종(播種)을 의미한다.
땅그랑 교회는 디아스포라의 현장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