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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an 28. 2019

임진강 독수리 제위께

  

                                                                

수년 전 모하비 사막을 지난 적이 있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데 변함없는 풍경이 한도 없이 이어졌다. 삼십 센티가 될까 말까한 아니 그보다 더 작은 나무들이 땅에 한껏 붙어 있었다. 가이드 말로는 수 십 년이 지나도 거의 같은 모습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황무한 땅에서 자랄 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자라지 않는 것이 그들의 존재방식이었다. 생명체라고는 거의 없는 수목한계선의 침엽수들도 그러하다. 깊은 고요와 적막 속에서 그렇게 가만히 존재하는 것,  죽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살아있는 것, 

 그대들을 보기 위해 겨울 들판, 황량해 보이는 넓은 벌을 앞에 두고 서있으려니 생명의 다양한 존재방식이 저절로 생각이 날 수 밖에 없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 넓은 겨울 벌 역시 이미 저만의 방식으로 수많은 생명을 잉태하고 있을 것이다. 죽음처럼 보이지만 새롭게  움틀 생명들을 기다리고 있는 시간, 부활 전 무덤 속 적막이 자연스레 연상되어졌다. 

 겨울날씨답게 차고 매운 날이었다. 공기는 맑고 서늘했다. 임진강을 숱하게 지나다니면서도 그대들이 겨울 철새가 되어 이곳으로 날아온다는 것을 몰랐다. 머나먼 몽골 땅에서 삼천KM를 날아 우리나라로 날아온다니, 백두산을 지나 남쪽인 이곳으로 날아오기 까지 약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몽골은 구월이면 겨울이 시작돼 한겨울의 고산지대는 영하 사십 도가 넘는다고 한다. 사막을 지나 바다를 지나 따뜻한 남쪽나라로 내려오는 그러니까 그대들, 독수리제위는 우리나라의 겨울 철새이다. 세계적 희귀종이며 맹금류 중에서 가장 큰 종류, 날개를 펴면 3M가 넘는다고 하니 가히 가벼움의 대상인 새라는 단어와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실제로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데도 그대들의 위용은 대단했다. 늠름하고 우람해보였다. 어깨를 쪽 펴고 고개를 빳빳이 든 모습들은 겨울들판에 선 제왕 같은 기개를 보여주고 있었다. 기이하게도 일본에는 독수리가 없어서 독수리를 보러 겨울 여행 오는 일본인도 많다고 하니 새삼 귀해 보인다. 아주 작고 섬세한 것도 사람을 홀리지만 거대한 것도 사람을 혹하게 한다. 멀리서 그대들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사랑에 빠졌다. 무리중 하나가 검은 날개를 살짝 펴며 가볍게 떠오를 때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저리 우아할 수가... 실제 그대들은 거의 날개를 움직이지 않은 채 기류를 이용해 난다고 한다. 그러니 공간을 부리는 그대들 아닌가, 그런 위용을 지닌 그대들이 맹금이란 단어가 무색하게 사냥을 하지 않고  그저 사체를 먹는다고 하니 그 또한 얼마나 자연에 대한 너그러움을 보여주는가,  천연기념물 제243호 그대들은 서열이 분명해 독수리 식탁을 차리는 분의 말로는 리더가 먼저 식사를 시작해야 그 다음에 먹는다고 한다. 그러니 그대들은 예의 또한 깊도다. 그대들은 평생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고 하니 이를 데 없는 신사숙녀다. 이곳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몽골로 돌아가 짝을 이룬 다음 새끼 한 마리를 얻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그해 겨울 다시 우리나라를 찾는다는 것,  수년 전부터 우리나라 곳곳에 그대들을 위한 식탁을 차려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임진강 생태보존회에서도 귀한 손님인 그대들을 위해  문산 벌에 일주일에 두 번, 식탁을  마련한다고 했다. 우리 팀에서 그대들에게 대접한 식탁이 펼쳐져 있지만 그대들은 마치 식탁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이 멀리서 등을 보이고 앉아있었다. 벌써 기웃거리는 까치 까마귀들과는 격이 다른 모습이었다.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식탁 주변에서  군인들이 훈련을 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군인들이 철수 했지만 그대들은 쉬 움직이지 않았다. 저리 거대한 몸과 날카로운 부리로 남을 해치치 않고 사체들만 먹는 선한 성품....그러니 겁도 많으리....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대들을 긍휼히 여기사 사람보다 열배나 많은 위산을 주셔서 어떤 썩은 음식을 먹어도 병들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서운했지만 그대들의 식사를 위해 그곳을 뒤로하고 떠나왔다. 머리 위로 기러기들이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아마 그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나보다. 문득 3000KM을 날아오는 이유가 겨우 추위와 음식 때문일까, 그보다는 남쪽 나라로의 여행을 통하여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훈련이 아닐까, 그대들에게 부여된 세상을 알기 위한 방법이 아닐까, 

 맑고 차가운 겨울 날 넓은 겨울 들판에서 그대들과의 만남은 설레는 시간이었다. 

                                                                    <사진은 허락없이  빌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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