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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Feb 12. 2019

꽃의 편지




나를 지극히 사랑하신다고요?. 그래서 꽃에 대해 조금 아는 사람들의 아는 척 하는 말ㅡ 꽃을 성기라고ㅡ쉽게 말하는 분들에게 당신은 무지 화가 난다고요? 화내지 마세요. 사전에도 버젓이 적혀 있잖아요. 꽃은 속씨식물의 생식기관이라고....사실 그럴 때 마다 좀 머쓱하긴 하죠. 겨우 나를 그렇게 밖에 표현할 길이 없을까, 마음을 환하게 해주는 존재,  아름답고 어여쁠 뿐 아니라 어느 종류는 매우 귀여움. 귀하게 피어나나 빨리 시들어서 삶의 애환을 느끼게 하는 존재. 그도 아니라면 잘 꺾이니... 조심해야 할 것, 드문드문 몽환적인 향기가 배어 나와 홀리게도 함.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음. 때와 시를 아는 물질로서 매우 총명함.....더할까요? 한없이 할 수도 있는데,....근데 겨우 속씨식물의 생식기관이라니 그 하염없는 상상력의 부재에 대해 아연 키는 하죠. 그렇다고 그렇게 화낼 일이야 없지 않아요?

 언제나 사랑의 고백은 설레긴 하죠. 가끔 당신의 다정해 보이는 눈빛을 바라볼 때마다 나도 설레긴 해요. 그런 눈빛이야 언제나 내겐 흔하디흔한 경우이긴 하지만 말이죠.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도 당신을 내가 좀 다르게 본 것은 당신이  꽃 진 자리까지 다정한 마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하지만 당신이 내게 한 그 숱한 사랑의 표현들은 나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도 해요. 자연 산 숲 푸나무 꽃 등을 사랑하는 당신의 마음은 즉 누군가를 향한, 적절한 대상에게로 투영되지 못한, 대신 만만한 나에게로 꽂히는....즉 당신에게 고이는, 결국 고이고야 마는, 사랑이라는 그 로맨틱한  감정을 나에게 분출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거죠. 무엇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벗어나는 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조우!!!!라서 대개의 사람들은 그 길을 모르거든요. 미답의 길은 언제나 사람에게 두려움을 주고 사실 험하기도 해요. 그래서 절망에 빠지기도 하고 드물게는 자살에 이르기도 하죠. 사람에게만 자살충동이 있는 게 아니랍니다. 꽃들도 체념하며 낙망하며 너무나 심한 절망에 빠지면 일시적으로 세상만사에 눈을 감거나 경기를 일으키거나 그것도 안 되면 그냥 죽기 위해 '화들짝' 꽃으로 피어나기도 해요. '핌'이 사랑에 대한 보응이 아니라 그냥 죽기 위한 몸짓일 수도 있다는 거지요.  화원의 주인이 허구한 날  물주고 약 주고 먹을 것 주고 그렇게 보살펴주면 우리들이 행복할 것 같나요? 우리들은 오히려 불행해서 그 몸을 일찍 피워내 버리기도 한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그래 나 죽어버릴 거야! 분노하듯 몸을 열어젖히는 거죠. 그러면 화원의 주인은 얼씨구나절씨구나 어깨춤을 추며 우리의 몸뚱어리를 싹둑싹둑 경쾌한 소리를 내며 비어내지만 어쩌면 우리들은  꽃을 피워낸 그 순간에 이미 죽음의 세상으로 들어선 거죠. 그저 많이 그저 크게 피어나기에도 바빠서 거기 어디 향기 숨을 곳도 없어요. 그렇다고 화원의 꽃만 그런 것도 아니에요. 기실 꽃은, 핌과 함께 저물어가는 길로 들어서는 거예요. 열매를 위한 길 말이죠. 마치 세례 요한처럼 말이죠. 아니 사실은 당신들 모두도 그렇죠. 

 사람들이 가끔 '꽃' 자를  넣어 만든 단어들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구슬퍼요.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꽃을 꽃불이라고 하고 여러 가지 색깔의 아름다운 구름을 말하는 꽃구름은 그윽해요. 꽃무덤은  젊어 죽은 아까운 사람의 무덤을 말하고 꽃귀신은 어린아이가 죽어서 된 귀신을 말한다구요. 사무치는 사랑을 그리 표현했겠지요.  아 그것도 있어요. 신혼부부의 첫날밤 잠을 꽃잠이라고도 하는 것, 그러니 용서해주기로 하죠. 식물의 방점이기도 한 나를 성기라고 칭하는 사람들을 말이죠. 설이 지났으니 부지런한 내 친구들 소식이 금방 들려올 거예요.  복수초나 바람꽃, 아마 어디 정원에서는 노오란 풍년화가 살짝 입술을 벌렸을거구요. 제주도에서는 벌써 매화향이 그윽하던걸요.


그나저나 당신들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은 죽음의 여정에 서 있는데 혹시 그것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가요? 죽음을 꼭 기억해야 할텐데요.  


꽃이 총총   


      

사진은 2019년  일월 하순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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