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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Dec 10. 2019

아름답게 나이 들고 싶다

 딱 이 무렵이면 황필호 선생이 가끔 생각난다. 부음을 듣던 때도 이삼 년 전인 것 같으니  꽤나 오래전 일이다. 글 쓰는 지인과 함께 그분을 만났다. 젊을 때는 텔레비전에서나 뵙던 분이었는데 그때는 이미 나이가 꽤 드셨고  지인의 말로는 파킨슨 병 중에 계시다고 했다. 그러나 겉으로 봐서는 전혀 아무런 티도 나지 않았다. 그분의 눈을 처음 볼 때,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표현이 딱 떠오를 만큼 눈이 크고 맑으셨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몸 중에 가장 섬세한 부분이 눈이 아닌가, 입술이 지각의 언어를 혹은 들려줄만한 언어만을 표현해내고 손이나 발의 면구스러운 포즈가 불안이나 두려움을 나타낸다면, 보이지 않는 마음의 더듬이처럼, 좀 더 깊고 내밀한  마음의 언어는 눈빛이 대신하는 게 아닌가. 눈이 맑을 때, 눈이 깊은 마음의 뜻을 은일하게 전할 때, 그 눈에 비치는 자신을 바라볼 수 있을 때, 굉장히 맑고 고요한 눈빛으로 이야기할 때 우리는 눈이 창이란 표현을 이야기한다. 창은 양면적이다. 밖을 내다보게도 하지만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게도 한다. 누구나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맨 처음 하는 행위가 아마 눈 마주하기일 것이다. 통성명을 하기 전 미소를 보여주기도 전에 눈빛으로 먼저 상대방을 바라보며 눈빛으로 먼저 나를 보여주게 된다. 창을 통한 들여다보기 혹은 내다보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사람과의 만남은 시작되는 것이다. 

 낯선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가장 최상급의 관계를 이끌어 내는 지름길은 솔직함과 겸손함이다. 물론 일부러 지어내는 솔직함이나 마음에 없는 겸손함이 아니라 자연스러움, 편안함,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과장 없이 보여주는 것, 더불어(이제까지 배워온 대로) 당신은 천하보다 더 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함이라는 병기가 있다면 당연히 상대방은 무장해제될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이 태도가 견지될 만큼 성숙한 것도 아니고 상대적인 경우도 없지 않아서 전부 다라고는 말 못 할 일이긴 하지만 적어도 그분 앞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그분은 자신이 수필가라는 것을 강조하셨다. 내게는 그 말씀이 수필처럼 살고 싶다는 의미로 읽혔다. 플라톤은 시인이었으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평론가였다고 그래서 플라톤을 더 좋아한다고, 본인이 쓰신 글 속에서 아름답게 나이 드는 여섯 가지 방법을 말씀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말을 조금 할 것이었다. 늙어갈수록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가 걱정과 마뜩잖음이라고도 하셨다. (혹시 확인과 외로움 탓은 아닐까, 속으로 생각했지만) 그러면서 자신만의 규칙으로 둘이 이야기할 때는 50 퍼센트, 셋이 있을 때는 30퍼센트만 말할 것을 세워 놓고 있는데 지금 그것을 어기고 있는 것 같다고..... 나중에 읽었지만 ‘나도 아름답게 나이 들고 싶다’라는 책이었다. 씨앗에서 나무가 태어나듯 인간의 생각은 숨겨진 씨앗이라는, 행동은 생각에 의해 꽃 피워지며 기쁨과 고통은 그 열매라는, 지적인 사람과의 대화는 얼마나 재미나는지, 평생 공부하고 사유하며 살아온 그 폭넓고 깊은 사고력에 세월의 무게를 얹은 단순 소박한 어법은 얼마나 매혹적이던지....

 그때가 딱 이 무렵이었다. 서늘한 초겨울, 정원의 등이 하나하나 켜지던 기억도 선명하다. 어둠이 오기 전, 밝음이 사라지기 전의 그 미묘한 흐름이 보일 때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헤어지기 전 이다음에 뵐 때는 선생님 글을 더 많이 숙지하고 와서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하니, 사랑의 고백을 할 때 꼭 꽃이 필요하지는 않으나 꽃이 있으면 사랑의 고백이 더 좋을 수 있다고 하셨다. 놀라운 은유여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문장인데, 그때 나는 고백에서 예배를 꽃에서 봉헌을 떠올렸다. 

 침잠하며 성찰하는 계절, 겨울은 단조다. 단조는 단음계를 바탕으로 만든 곡이다. '라, 도, 미' 중 한 음으로 시작해서 보통 '라'로 끝나고 반음의 위치도 달라진다. 단조는 어둡고 쓸쓸하지만 대신 슬픔과 여유가 있다. 늙음 역시 단조다. 걸어가야 할 길보다 걸어온 길이 많은 지점이다.  몸은 무겁고 걸음은 느려지니 쉬기 위해서라도 뒤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다. 어쩌면  가야 할 길의 지루함을 잊기 위해서 멈춰 서고 거기쯤서 채색된 기억을 자주 소환할지도 모른다. 채워 가는 길이 아니라 비워가는 길임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청지기답게 언제든 주인에게 YES! 할 준비를 하는 길. 아름답게 나이 드는 방법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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