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교황>을 두 번 보았다. 한 번은 영화관에서 또 한 번은 집에서 넷플릭스로,.
아무래도 좋은 지문을 놓친 것이 많은 듯하여 다시 보았는데 지루하기는커녕 마치 처음 본 영화처럼 새로웠다.
포스터에 실린 교황의 빨간 구두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실제 영화 속에서도 빨간 구두가 자주 눈에 띄었다.) 카렌의 빨간 구두가 저절로 연상이 되었다.
지금처럼 춤 못 추면 행세 못하는 세상에서 카렌의 빨간 구두 이야기는 잔혹동화다.
기실 잘린 다리로 빨간 구두가 춤을 춘다니....
교황의 빨간 구두는 순교의 피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러니 저절로 그 빨간 구두가 이해되었다.
또한 그 빨간 구두의 염색은 매우 귀한 염료로 보통 사람들은 신을 수 없는 구두였다고 한다.
그 대목에서 카렌의 빨간 구두가 지닌 여러 가지 결이 엿보이기도 한다.
사치를 배격하는 교회의 풍토에서 빨간 구두.... 는 결국 세상에서 자신이 놓아야 할 것들을 예표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동화를 읽는 아이들이 ‘놓음’을 알까,
두 교황의 성향은 판이하다.
우연히 화장실에서 두 사람이 만나는데 휘파람으로 노래하는 프란치스코.
무슨 곡이냐고 묻는 베네딕토에게 아바의 댄싱퀸이라고 대답한다.
보수지향적인 클래식한 베네딕토 교황과
그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프란치스코.
영화를 보는 내내 당신은 어느 쪽인가... 묻는 듯 그 대비가 선명하다.
추기경을 사표 내려는 프란치스코와 교황이 여름 별장에서 만난다.
그를 마중 나온 사람에게 가방을 맡기지 않고 서슴없이 앞자리에 앉는,
추기경은 잠깐 교항을 기다리면서도 별장의 정원사와 말을 통하고 그에게 오레가노라는 허브를 선물 받는다..
변화와 타협에 대해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 설전,
지나온 시간들, 즉 삶 속의 태도가 배인 그들의 신앙관은 현저하게 다르다.
추기경 관저를 크고 화려해서 사용하지 않는 프란치스코에게
당신만 검소하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말한다.
교회의 법대로라면 성찬을 가령 이혼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는데
프란치스코는 예수님이 죄인들을 위해 오셨다는 말로 대답한다.
교황이 되면 뭘 하고 싶냐는 질문에 프란치스코는 우선 혼자 밥을 먹지 않겠다고 말한다.
교황의 혼밥은 독선과 외로움으로 영화 속에서 표현되지만
교황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혼밥도 생각났지만
그 시간까지 홀로 있지 못한다면..... 그런 생각도 들었다.
‘죄악은 상처지 얼룩이 아니다’
기억해야 할 어록,
어쩌면 프란치스코의 가치관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격식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가 어디서 콘클라베의 내적 정황을 볼 수 있겠는가,
동그란 볼에 써진 추기경들의 이름, 그 이름과 함께 하는 투표, 투표용지를 감는 빨간 실타래,
오히려 연기함으로 더 사실적으로 추기경들의 모습을 재현해낸다.
아름다운 풍경까지 보고 느끼는 그리고 생각하게 하는 즐거움이 무수하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앤서니 홉킨스..... 그이의 늙음은 저릿하다
그런데도 배우로서의 아우라, 기는 여전하다.
강인하면서도 외로운 베네딕토를 누가 그 보다 더 잘 연기할 수 있으랴,
죠나단 프라이스는 설핏 아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연기를 하는 것처럼 닮아 보였다.
실제로 그의 억양까지 연습했다고 한다.
탱고를 같이 추는 장면은감동과 재미를 주긴 했지만 과했다.
다큐처럼 등장한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축구 시합은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세트이긴 하지만 사람없는 빈공간이 상상되지 않는, 시스티나 성당의 만남은 감동적이다.
사람이 없는 그곳에서 둘은 만나고 사람이 가득한 곳으로 둘은 다시 나온다.
아주 소략하게 표현해보자면
베네딕토 교황은 계명과 함께 교회의 역사를 보존하려 하고
프란치스코는 교회가 사회 안에 살면서 변화해야 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 둘은 서서히 자신을 내려놓는다.
베네딕토는 프란치스코에게 다가서고 프란치스코는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베네딕토를 위해서 기도한다.
‘행복이란 레퍼토리의 축적’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 말은 단순해 보이지만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많이 보내고 난 후의 생각이라고 여겨진다.
행복에 대한 숱한 개념을 무수히 생각했지만 어느 한 곳에 행복은 머무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축적은 결국 기억을 기억하면서 되새김질하는 단어일 것이다.
좋은 영화 <두 교황>은 내게 축적의 레퍼토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