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영 Dec 23. 2019

연창에 청복이 가득하리

 

  줄기차게 그대를 기다린다. 목을 길게 빼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틈만 나면 웨더퐁을 켜서 그대 소식을 살핀다.  기다리면 외려 더디 올까 싶으면서도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이다. 가볍고 우아한 모습의 겨울 손님 그대는 내겐 설렘 자체다. 일본의 아주 오래된 수필에는 눈 내리던 날 쓴 편지에 눈에 대한 이야기를 적지 않았다고 관계할만한 사람이 아니라며 힐난하는 글이 있다. 며칠 전 지인이 카톡에 눈발이 비친다고 적었다. 눈이 살짝 흩뿌릴 때 눈 온다는 소식을 전하는 이는 정감 있는 사람이다.

 벌써 오십여 년도 한참 넘었다. 그날 엄마는 동지죽을 만드신다고 팥을 고르고 계셨다. 바람이 약간 부는 날이었다. 언니는 왼 발 뛰고 오른발 뛰는 균형 잡힌 뜀을 했지만 아이는 그게 안 되어서 한발 뛰고 다시 한발 뛰는.... 그런 뜀을 하며 집 밖으로 나갔다. 그때, 무엇인가 나풀거리는 하얀 것이 날기 시작했다. 이내 그것은 조금씩 커졌고 휘몰아치며 비어있는 공간들을 하얗게 채워갔다. 아이는 한참 동안 서있었다. 마치 사진이라도 찍힌 것처럼 선명한 장면인데 어린아이가 길 위에 혼자 가만히 서있다는 것은 그다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매우 특이한 행위 거나 아이가 할 수 있는 아주 거대한 일일 수도 있다. 그대에 대한 첫 인식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에 대한 예민한 센서가 아무것도 모르는 그 나이 즈음에도 작동했을 것이라고, 

 사람들이 모여 서있다. 누군가가 감나무집 벽에 기대서 신음하고 있다. 아픈 소리를 내며 배를 부둥켜안는다. 나는 마구 달려서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 누가 소리를 지르고 있어, 아프다고, 애기가 나오려고 한 대.’ 엄마는 선걸음에 달려 나가셨고 첫눈 내리던 그날 우리 집에는 아이가 태어났다. 부엌에 서있던 낯선 남자의 쩔쩔매는 모습과 길고 어둡던 그림자도 생각난다. 엄마는 바쁘게 부엌문을 들락거리셨고 검은 솥에 물을 가득 담고 장작을 모아 불을 때고....

 미역 장사? 여기서부터 약간 기억이 흐리다. 사실 기억은 일 년 안에 50%가 소실되며 변형된다고 한다. 기억이란 이 친구는 호오가 분명한 것 같기도 하다. 수많은 것들을 듣고 보았을 텐데 정확한 기억보다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남겨둔다. 그러니 산모를 위해 미역을 사온 건지, 아니면 진짜 미역 장사인지, 여기저기 들춰봐도 더는 없다. 아 큰오빠가 툴툴거렸었다. 자기 방에서 나쁜 냄새가 난다고, 그 얼마 후 우리 집에는 굵고 넓적하게 만들어진 인절미가 한참 동안 벽장에 놓여 있었다. 아기 순산에 대한 감사 표시로 장사를 나온 부부가 해온 떡인데 그 인절미에 돌이 지금거렸다. 떡이 귀한 시절이었는데도 아무도 먹지 않았다. 그들의 정성이 벽장 안에서 말라갔다. 약한 비위는 한참 예민할 때 친구들과 도시락도 같이 먹지 못할 정도로 왕성했다. 그때 타인을 향한 더러운 연상들이 얼마나 집요했던지 아이들 없는 틈을 타 혼자 고개를 박고 점심을 먹곤 했는데... 어느 순간 비위도 너그러워지고... 그렇다. 모든 것은 그렇게 시간 속에서 변해간다. 어느 것들은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그대에 대한 설렘은 여전하다. 아니 오히려 강화되어간다고 할 수도 있다. 그대 나풀거리며 강림하실 때 어린아이가 놀란 눈빛과 설레는 마음으로 가만히 서있었던 것, 아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경외가 아니었을까, 사랑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세모다. 눈다운 눈이 내리지도 않은 채 해가 저물어 가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서로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복을 비는 빌어주는 시간이다. 복이라 하여 다 같을 손가, 선비들은 복을 청복淸福과 탁복濁福으로 나누었다. 세속적인 재물이나 권력 욕망을 채워주는 것은 탁복이고 자연에서 얻는 행복, 청빈한 삶에서 다가오는 행복이 청복이라고 여겼다. 김정국은 정치 소용돌이 속에서 벼슬을 떠나 아이들을 가르치며 생활하게 된다. 그이는 아예 호를 팔여 거사로 바꿨다. 의미를 묻는 친구에게 대답한다. ‘토란국과 보리밥을 넉넉하게 먹고 부들자리 온돌에서 넉넉하게 잠자고 맑은 샘물 넉넉하게 마시고 책이 있어 넉넉하게 보고 봄 꽃 가을 달빛 넉넉하게 즐기고 새들의 지저귐 솔바람 소리 넉넉하게 듣고 눈 속에 핀 매화 서리 맞은 국화를 넉넉하게 감상할 수 있으니...’ 가난해도 넉넉할 수 있는, 무엇이 넉넉해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알게 하는 글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과 궤를 같이한다. 그대를 기다리는 마음도 가난한 마음속으로 슬며시 밀어 넣는다. 

연창에 청복이 가득하시길!                 


           


작가의 이전글 쇠딱따구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