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etano Gandolfi
Joseph's Dream circa 1790
유명한 꿈 중에 장주의 호접몽이 있습니다.
<꿈에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다가 깨보니 장주였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되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짧은 꿈에 대한 이야기지만 기실은 매우 철학적이죠.
자연에 대한 무한 경외를 바탕으로 네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을 다시 바라보라는 은유 가득한 이야기.
저도 가끔 꿈이 기억날 때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곤 해요.
대개는 허무맹랑하여 개꿈이군, 휙 버려버리지만
돌아가신 분이 나타나거나 아주 생경한 경험을 했을 때 그 의미를 곰곰이 헤아려보는 거죠.
뇌를 공부하는 학자들은 뇌가 입력된 정보를 마음대로 조립하여 내보내는 과정이 꿈이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예지몽과 연관시켜 꿈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어요.
성경에는 꿈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아주 중요한 루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꿈쟁이 요셉의 꿈이 미래에 대한 예언이라면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꿈은 절박한 상황 속에서 인도함을 받은 꿈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성경 속 이름 요셉은 아무래도 꿈과 다정한 것 같아요.
이 그림의 제목은 <요셉의 꿈>입니다.
성경대로 번역해 보자면 <요셉의 현몽>이 될 거예요. 물론 마리아의 남편 요셉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요셉이 예수님과 관련하여 꾼 꿈이 무려 네 번이나 기록되어 있죠. 첫 번 째 꿈은 두려워말아라,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알림과 위로였어요. 그리고 이집트로 가라,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가라, 거기서도 요셉이 두려워하니 나사렛으로 가렴...... 간돌피는 그 어느 때의 요셉을 그린 걸까요?
Gaetano Gandolfi (1734~1802)는 이탈리아의 화가, 도안사, 조각가, 에칭 화가이며 거의 모든 가족들이 예술가였다고 합니다. 17세에 Bologna지방의 Academia Clementina에 입학하여 뛰어난 성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았어요. 저 수많은 옷의 주름들은 삶의 고달픈 결을 나타내 주는 것 같습니다.
진지한 고통은 삶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결이란 메시지로도 읽힙니다.
고뇌 속 요셉의 심중을 다층적으로 표현한 수작입니다.
깊은 잠을 자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고독 속에 침잠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요.
우울하고 쓸쓸해 보이기도 합니다. 세상 근심에 지쳐서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나선 길일 것 같습니다.
사람 없는 숲 속, 거기 어디쯤 혼자 앉아 있을 만한 바위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쉬고 있었을까요. 지팡이를 잡고는 있지만 손아귀는 느슨하게 풀려 있어요. 지팡이뿐 만 아니라 세상일을 놓은 듯 보이는 손짓이네요.
하늘의 빛으로부터 얼굴을 살짝 숙이고 손으로 이마를 기댄 채 깊은 절망에 빠져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요셉은 구세주 탄생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람입니다.
어쩌면 가장 신실한 증인일 수도 있어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성령을 의지 않았더라면 그 시절에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할 수 없었을 거예요.
성경에는 요셉이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주의 가정을 이끌어 가는 요셉의 몫이 절대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천사가 나타날 때는 오~ 아멘 순종하게 되지만 천사의 자태가 희미해지면 다시 묻게 되고 절망에 빠지는.....
확신하면서도 때때로 속삭이는 회의와 의심이 왜 없었겠어요.
마리아도 천사와 대면하여 듣고 묻고 다시 대답을 들으면서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했지만 그녀가 바로 찾아간 곳은 엘리사벳의 집이었지요.
주의 말씀이 사실인가.... 확인 차 떠난 거지요.
우리들 역시 순종하고 난 뒤에도 여전히 확인하고 싶거든요.
평생 연약한 모습의 인생들.... 요셉도 그런 약한 인간이었을 거예요.
그럼에도 인카네이션의 가장 근접한 위치에서 구세주를 지켜본 요셉. 그 깊고 심오한 상황의 경계선에 선 인물,
그런 요셉에게 날개 달린 천사가 아주 가까이 내려앉아 요셉의 팔에 손가락 네 개를 대고 지그시 터치합니다. ‘이봐 요셉 왜 또 그래... 왜 그러는 거야, 저길 보라고 저길....
천사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자세히 보아도 푸른 하늘 조금과 커다란 나무와 바위뿐입니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살이가 정말 그럴지도 모르지요.
예배하면서 위로받고 말씀 보면서 힘을 얻지만 그렇다고 이곳이 천국은 아니니 말이지요.
아무도 없는 깊은 숲 속인데, 아무도 없을 거라고 여겼던 곳인데,
고독한 요셉에게 찾아온 천사는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너와 같이 하겠다는 사인처럼 느껴집니다.
이즈음 딱 초록이 고플 때입니다.
겨울은 조금쯤 지루해져 있고 삶의 통찰을 주던 나무들의 헐벗은 가지들도 이젠 익숙해져서 말이지요.
산책 나가는 길에 산당화가 무리 져 있어요.
그곳이 양지바른지 며칠 전 꽃망울 한 송이가 붉은 꽃잎을 살짝 내밀었어요.
나갈 때마다 그 꽃 한 송이를 눈여겨보곤 합니다.
거의 변화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기도 하죠.
혹시 피었다가 추워지면 어떨까 싶어서 말이지요.
사계절이 뚜렷한 곳에서 사는 것도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가요.
봄이 지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