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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Mar 11. 2020

헐렁하게

시나 읽자, 시라도 읽자

구십 넘은 시인께서 이제 시를 쓰지 않고  헐렁하게 살겠다고 하신다. 

 귀가 얇아선지 그이가 말씀하신 헐렁함이 가슴속으로 수욱 들어온다. 

 그래 맞아, 헐렁하게!

 그렇다고 이 사람이 뻑뻑하게 사는 것도 아니다. 

 대놓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 키워야할 손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식은 다 컸으니, 

거기다가 무슨 여성성이 있는 나이도 아닌 할미니까... 자유다. 

아, 밥, 밥이야 어쩔 수 없지, 나도 먹어야 사니까, 그래도 가끔 남편에게 그러긴 한다.

 나도 누군가 밥상 차려놓고 와서 “식사하셈.” 이런 말 듣고 싶다고 , 

책 읽고 영화보고 영화는 극장에 가서 보기도 하지만 왓챠를 이용하기도 한다. 

넷플릭스보다는 왓챠에 내 취향의 영화가 더 많이 있는 듯하다.

어제 체르노빌을 봤는데.....  괴란한 봄날이 더욱 어두워지는 경험을 했다.      

외출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기이한 봄날이다.  

그래서 연천 고대산. 휴양림으로 갔다. 고대산은 연천의 끝 철원과 맞물린 지점이다. 

올라갈수록 산세가 다르다. 사람의 발자국이 적은 산의 느낌일까, 

사람은 사람의 냄새ㅡ 느끼하고 더티한ㅡ를 자연에 덧입힌다. 

고대의 천연의...라고 한다면 과장이 분명할 터나 뭔가 도시 근교의 산과는 확연히 느낌이 달랐다. 

거칠고 싱싱해보였다. 

여행의 시작은 열린 마음이다.

뭐든 받아들이고 감동을 할 자세......가 되어 있다면 떠남은 완성된다. 

 호로고루는 한번 보고 반한 곳이다. 처음 여러 명이 갔지만 나처럼 반한 사람은 없었다. 

호로는 임진강의 옛말이고 고루는 성이다. 고구려 시대에 만들어진 성이니 얼마나 오래된 성인가, 

‘오램’은 이미 그 자체로 매혹이다. 나는 그리 생각한다. ‘오램’은 의미와 가치라고. 자연의 근육이라고,

당연히  세월이 가만두질 않아서 다 허물어진 흔적만 남아있는 곳을 다듬은 곳이다.  

안은 돌로 쌓았다고 하는데 겉은 흙이다. 

야트막한 구릉이 임진강 옆으로 펼쳐진다. 

그 구릉을 앞뒤로 크진 않지만 공간의 여백이 있다. 

크지도 작지도 않게 흐르는 임진강이 하염없이 함께 하니 호로고루는 매혹적일 수밖에 없다. 

사람 없을 때 혹은 한두명 멀리 있어 작은 점이 될 때 

그리고 해저물 녘 임진강으로 저물어가는 윤슬이 빛 날 때 

헐렁한 마음을 더 헐렁하게 한다. 내게는 연천 일경이다. 

연천에는 고구려 성이 세 개나 있다. 호로고루와 당포성 은대리성이다. 

당포성은 나무 한그루가 성위에 서있다.

은대리성은 도립병원 옆에 있었는데 굵은 소나무사이로 한탄강이 유장하게 흐른다. 

연천 평야와 산그리메가 아득하게 펼쳐지고

우리는 비가 조금씩 내려서 우산을 쓰고 팔짱을 껴야 했다. 

촌사람이라 남편의 팔짱을 끼고 걷는 것이 많지 않은데 비 때문에.....

그곳에서 조금만 가면 고랑포구에 경순왕릉이 있다. 

나는 비애론자인가....무덤에 관심이 많다. 신랑의 마자막 왕의 무덤이 경주에 있지 않고 연천에 있다. 

견훤에 의해 세워진 마지막 왕, 꼭두각시 왕, 큰아들 마의 태자는 금강산으로 들어갔고 둘째 아들은 중이 되었는데 아버지 경순왕은 정략적인 결혼까지 하면서 고려에 항복 빌붙어 살았다.  

결기가 없거나 경주의 문화를 사랑했거나 현실에 안주하거나 두려움이 많거나 지혜롭거나 두루뭉술한  왕이었겠지. 

왕릉가는 길을 걸으며 세상일이 그렇지,  

처음에는 옳고 그름도, 색채도, 선명해보이나 세월이 지날수록 흐릿해진다. 

모든 선택에는 그늘이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경순왕릉을 보며 더욱 흐릿하게 살 것..... 생각을 했던가...     

그리고 겨울연천에서  볼 수 있는 풍경.... 폐터널에 있는 역고드름(승빙)은 신기했다. 

터널 지붕에서 떨어진 물이 지면에 얼어있는 얼음 위에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 생기는가, 

지면의 물 표면의 물 분자가 지하에 있는 물분자를 솟아오르게 하여 고드름이 자라는가,

처음이유라면 그럴 듯 하고 두 번째 이유는 신비감 조성?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지만 가장 책이 안 팔리는 때가 가을이라고도 한다. 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만든 때는 종이가 없던 시절, 책을 만들려면 죽간이 있어야 했고 가을이 되어서야 대나무 수확을 할 수 있었으니 가을이 독서하기에 좋은 시절이 되었다는 추론을 하곤 한다. 책만이 독서가 아니니 아름다운 자연을 묵상하는 것도 훌륭한 독서다. 

신천지가 문제가 아니고 종교 자체가 문제라고 쓴 글을 읽었다. 명민하고 재기어린 글을 쓰는 시인이다. 종교를 문제라고 단언 하는 사람의 속내를 짐작 못하는 것은 아니나 서늘한 것 역시 사실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모든 것에 유해지는 경향이 많아진다고 스스로 느낀다. 유해진다는 것은 자신감이 사라진다 것이기도 하고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게 겸손해진다는 태도이기도 하다. 그게 설령 나쁘다 할지라도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이면을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엇을 단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시를 쓰는 사람이 종교가 문제라는 말을 단호하게 할 수 있다니....단호는 매혹적일 때도 있지만 그 뻑뻑한 마음속에 무슨 시심이 들어찰 수 있을까,     

"시인은 그 따위 권위 앞에서 / 머리를 수그린다거나 허리를 굽혀서는 안되는 것이다. / 모름지기 시인이 다소곳해야 할 것은 / 삶인 것이다 / 파란만장한 삶 / 산전수전 다 겪고 / 이제는 돌아와 마을 어귀 같은 데에 / 늙은 상수리나무로 서 있는 / 주름살과 상처자국투성이의 기구한 삶 앞에서 / 다소곳하게 서서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 그것이 비록 도둑놈의 삶일지라도 / 그것이 비록 패배한 전사의 삶일지라도"- 김남주, 「시인은 모름지기」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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