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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Mar 17. 2020

슬픔이 선생이다

 

 

 어릴 때 잠귀가 밝아서 엄마에게 칭찬을 듣곤 했다. 아무리 깊은 밤이라도 한번 부르면 잠기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고, 그런 기질에 새벽예배가 더해졌으니 한두 시간마다 시계를 보고 자는 것이 평생의 습관이 되었다. 하루 중 가장 블루한 시간은 새벽이다. 어둑함 속에서 눈을 들 때, 마치 눈에서 눈 커플이 밀려 올라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은 ‘도대체 삶이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다. 


  ‘블랙 워터스’는 글로벌 거대 기업 듀폰을 배경으로 한 환경영화다. 3,535건의 대규모 집단 소송을 승리로 이끈 변호사 롭 빌럿이 주인공이다. 가볍게 시작했지만 사람들의 치아를 검게 변색시키고 소 190마리를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몰고 간 독성물질 PFOA를 알게 된다, 듀폰은 PFOA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PFOA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무단 방류까지 하며 40년 넘게 진실을 은폐하고 있었다. 나도 기억이 났다. 우리 집에도 있던 듀퐁사의 테프론 후라이팬이, 전을 붙여도 달걀 프라이를 해도 눌러 붙지 않던 아주 좋았던 후라이팬.

 헐크역을 했던 마크 러팔로는 환경운동주의자로 뉴욕 타임스에 실린 ‘롭 빌럿’ 관련 기사를 읽고 영화제작을 결심 자신이 직접 롭 역할을 한다. 기업의 존재는 이익에 있다. 그 이익을 지켜내기 위해 대기업의 사람들은 어떤 거짓이나 폭력 만행을 서슴지 않는다. 법을 이용한 시간 끌기, 돈을 이용한 매수, 돈이 장악한 정치까지,  진실을 가린다. 이익 앞에서는 그 어떤 가치도 의미가 없다.  극한의 이기성은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 사회를 생각하게 된다. 그 사회 속에는 나도 있다. 당연히 가습기 살균사건도 떠오른다.

 이십여 년이 넘게 한 사건을 추적한 사람, 적당히 살았다면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위치에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환경 영화지만 결국 사람에 대한 슬픈 이야기. 최소 육십년 정도가 걸려 <노아>의 방주가 만들어졌을 거라고 성서학자들은 추론한다. 멸시와 조소를 의연하게 감내하는 산위의 노아,  롭은 현대판 <노아>처럼 보였다.  

 

 겸손히 주를 섬길 때 괴로운 일이 많으나... 찬송가 가사처럼 환경문제에 대해 알아갈수록 괴로운 일이 많이 생기곤 한다. 기실 나는 눈은 밝은데 행함이 없는 힘없고 유약한 생태론자다. 지하철을 탈 때 멈춰있는 에스컬레이트나 엘레베이터를 타지 않는다. 백화점에서는 함부로 엘레베이터의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여전히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종이컵과 사용되는 물의 상관관계를 생각한다. 찬장 안에 쌓인 텀블러가 괴롭다. 우리 동네 맛집에서 음식을  시켜 먹으면 아주 통통한 플라스틱 그릇에 면과 소스가 따로 담겨져 온다. 별로 필요치도 않는 그릇을 물로 닦아서 놔둬야 할까, 그냥 버려야 할까, 수많은 아파트를 보면서 그 아파트 안을 면면히 흐르고 있을 하수도가 괴롭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정화시설이 있어야 소변의 양보다 몇 배나 많은 물이 함께 한 하수를 정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한 때는 머리를 비누로 감고 식초로 헹구기도 했다. 뜨물을 받아 설거지를 했고 그 물을 화분에다 주기도 했다. 상당히 번잡하고 힘들여서 하는 그런 작은 일들이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 콸콸 틀어 놓고 머리감고 이 닦는 사람, 욕조에 비누거품 가득 풀어놓고 몸 담그는 티비 화면을 대하게 되면 부질없고 무력하게 느껴진다. 슬픈 일이다.      

 

 새벽 시간은 나를 깊이 바라보는 시간이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면 나 아닌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블루 속에서만 가능한 자신의 객관화. 자신의 객관화 속에서 어느 누구든 쓸쓸하지 않겠는가. 환하고 밝을 때보다 블루할 때 창의적이 된다고 했다. 그런 시간이 많아질수록 삶에 대한 욕심은 작아질 것이다. 그러니 블루한 시간은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시간이다. 잠에서 깨어나 현실로 복귀하기 전 경계의 지점. 어쩌면 그분께서 주신 특별한 은총의 시간, 영적인 센서가 발현하는 때. 하루 중 가장 명료한 시간일수도 있겠다. 오늘아침 성경 말씀은 어이 이다지도 슬픈가.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다고 하신다. 밤의 한 순간 같다고 하신다. 잠깐 자는 것 같다고 하신다. 풀 같다고 하신다. 순식간이라고 하신다.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하신다. 니 인생이 그렇다고 하신다. 그래도 봄이다.  

                                  

                                     *밤이 선생이다’ 라는 황현산의 책을 패러디함<교계신문 연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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