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지를 몇 개 꺼냅니다.
푸르르던 오이가 소금에 저려지고 돌에 눌려 노오랗게 질렸군요..
'원래 삶이란게 좀 질리는 거란다.',
오이지에게 다분다분 말하며 다분다분 썹니다.
오이도 가느다랗게 중얼거립니다.
" 언제 푸르른 시절 있었나 몰라,
새순으로 태어난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파리 나고 무한대로 솟구치듯 자라나더니 곁가지에 예쁜 꽃 피어나고
새낀지 에민지 꽃인지 줄긴지 잎인지 뿌린지...... 뭉텅거려진 세월 가운데서 그저 토실하게 자랐는걸,"
간이 있어요. 손에 온 힘을 다해, 꼬옥 짜서
고춧가루와 통깨 마늘 파 곱게 다져 조물조물 무칩니다.
참기름도 넣으려면 넣으세요. 하지만 무슨 기름이든 기름은 느끼해요.
그러니 알아서 하세요. 저는 안 넣었어요.
음 느끼한 것은 사람도 싫으니 오이지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요.
이상하지요.
이 ‘지’라는 말은 전라도 사투리거든요.
‘같지’, ‘파지, 채지(무채를 썰어 담근 김치)
서울 경기에서는 절대 파김치 같김치 하지 채지 같지 파지, 안하지요.
그런데 왜 오이에만 오이지라고 쓸까요.
더군다나 전라도에서는 이 오이지 잘 안 해먹거든요.
여름이면 그냥 오이 생채로 시원한 냉국을 만들어 먹던지
아니면 굵직굵직 썰어서 된장에 무쳐 먹지요.
예전부터 전라도에서는 모든 나물을 이 된장에 잘 무쳐 먹었는데
특히 이른 봄,
풀씨노물(자운영나물)을 맛있는 된장에 무쳐 먹으면 정말 환상이었지요.
이른 아침 울엄마 시장에 가면 꼭 사오시곤 했지요.
갓 삶은 풀씨 노물을 지기(제기??)로 뭉쳐와 읍내 근교의 시골 사람들이 팔곤 햇어요.
꼭 전라도에서 해먹어서가 아니라 된장에 무친 음식은 왠지 좀 촌스러운듯 하기도 해요.
냄새도 그렇고 생김새도 곱거나 멋지질 않으니 말이지요.
된장이 들어가면 고춧가루 색을 죽이거든요.
혹 된장과 고추장은 말그대로 이웃사촌이면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파하는 사이일지도 모르겠어요.
고춧가루는 새빨간 모습으로 흥 새침을 떨고 된장은 네까짓게 하며 뭉게는....
그러면서 미운정 고운정 들어가는 연인 사이일지도 모르겠네요.
적당한 그릇에 오이지 담고 보니 조금 남아요.
완두콩, 두벌콩 조금 들어 간 밥을 한숟갈 오이지에 넣고 슥슥 비빕니다.
아시다싶이 이 비빔밥이란게 품위와는 거리가 멀지요.
아, 굳이 표현을 해보자면 정말 아줌마스런 밥이여요..
수저로 많이 떠도 괜찮고 수저아래 콩나물 대가리 주욱 걸쳐 있어도 괜찮고
고춧가루 여기저기 뒹글으면 어때요..
하여간 그 볼품없는 오이지 콩나물은 커녕 참기름 한 방울 안 들어간
이상한 오이지 비빔밥 한 입 입으로 가져갑니다.
음,
음,
음,
그 개운하고 칼칼한 소금 맛,
그 시크한 오이향,
그 둘이 함께 버무려내는 환상적인 하모니,
전라도에서는 오이지 안담어먹는다고 했지요.
지금은 몰라요. 워낙 온세상이 한동네가 되어서.....
난 왜, 이리 오이지가 좋은지 몰라,
잠시 후,
나: 진짜 맛있당께, 한번 묵어 봐.
엄마: 이것이 그라고 맛있냐?
언니: 아무 맛도 없다.
올캐: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