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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un 28. 2016

은백양나무

     유월의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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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부는 날 은백양나무 숲으로 가면 
청명한 날에도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귀를 막아도 들립니다 
저무는 서쪽 하늘 
걸음마다 주름살이 깊어가는 지천명(知天命)
내 인생은 아직도 공사 중입니다
보행에 불편을 드리지는 않았는지요
오래 전부터 그대에게 엽서를 씁니다
그러나 주소를 몰라 보낼 수 없습니다 
서랍을 열어도 온 천지에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한평생 그리움은 불치병입니다       6월 / 이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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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자그마한 방죽이 있었다. 
방죽 옆으로는 도트람한 산이 있고 

그보다 조금 낮은 자리에 방죽 둑이 제법 넓게 펼쳐 있었는데 그 둑에 가득가득 포플러 나무가 심어 있었다.  

언제나 그곳에 가면 그노래..포플러 이파리는 작은 손바다아악 찰랑찰랑 소리나면~~~~이 생각났으니
기억속에 내장된 나무의 형체로는 미루나무 같기도 하다.  
하여간 미술실기시간이면 자주 그곳으로  그림을 그리러 나갔다. 

지금이나 그때나 손재주 없는 것은 여상하여서
미술시간 내내 그림은 안 그리고 여기저기 해찰을하거나 가만히 앉아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다는것,
어느 해 초가을에는 아직도 초록중인 세상에 너무나 이쁘게 물든 빨간 이파리를 꺽었는데, 
옴마야, 영아 그것, 옻나무여야. 
촌에 사는(이 시골의 촌이 또 웃긴다. 보성도 촌인데 읍내는 촌이 아니고 읍내를 벗어난 곳이 또 촌이다.) 

친구의 말에 순간적으로  이파리를 놓으며  등줄기를 흐르던 식은땀. 옻이 오르면 어떡할까,
그전 해 여름 임해훈련(지금 보니 이름도 디게 무시무시하다)을 가서 태운 등이 여름이 다 지나가도록 옷만 입으면 쓰려오곤 했는데 옻까지??  사시나무 떨 듯 떨었던 기억이 선연하다.    

사시나무는 백양나무다. 

하기는 사시나무 떨 듯....이라는 표현으로
사시나무를 대나무 비슷한 나무로 연상을 한 적도 있긴 하지만,
포플러나 사시나무 소리가 유별난 것은 잎보다  잎자루가 길어서다..  
그러니 아주 작은 바람에도 잘 흔들릴 수밖에, 그 이파리는 넓으니 소리가 클 수밖에, 

은백양나무는 굉장히 물을 잘 빨아 올린다고 한다. 
너무나 많은 물을 욕심 사납게 빨아올리다 보니 소비를 해야할 터, 그 소비의 방법이 바로 이파리를 흔드는 것, 
아주 미소한 바람에도 여지없이 흔들리게 하는 것,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파리가 떠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떤다고도 하더라. 이파리가 내는 단순한 부딪힘보다 ‘온 몸으로  우는 사시나무’는 지극히 사실적이면서도 자극적이고 자극적이지만 우아하다.  

일본 사람들은  그래서 이나무를 산명(山鳴)나무, 
즉 산을 울게 하는 나무라고도 했다. 삶의 행간을 생각하게 하는 은유 아닌가, 

유월.

오래 된 둑에 한 소녀가 앉아있다.  
그 소녀를 중년의 여인이 저 건너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 사이로 바람이, 바람의 소리가,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가,
그리고 가끔은 무거운 듯한 더위가 지나간다. 
그렇게 앉아있는 사위로 슬며시 해가 낮아지기 시작한다.  
순후하기 이를데 없는 시간,
틀림없이 은백양나무의 방정맞은 떨림도 조금은 점잖아질것이다.  
그리고 그 남은 에너지로 저물어가는 햇살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자신의 뒷모습을  일몰 속에서 깊이 생각해보듯 
은백양나무도 나무도 나무의 生을 생각하지 않을까, 


아, 백양나무 껍질을 벗겨 연서를 쓰면 그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울울한 백양나무 숲으로 가서 가만히 아주 조심스럽게 백양나무 껍질을 벗긴 후 

그위에 연서나 한번 써볼까,

유월이 다 가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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