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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un 20. 2016

숲에 대한 예의

  너나 잘  살아!

하도 세상에 개성이란 꽃이 만발하여 

예의 즉 사람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예절과 의리 같은 것은 

'많은 사람이 하기 때문'에 혹은 '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경홀히 여김을 받는, 예의 바른 사람이라면 도식적인 사람으로 치부되는, 경망함과 발랄함이 예의보다 앞서는, 예의 부재의 시대!

이 역광의  시대에 무슨 고색창연한 예의인가, 

더군다나 사람도 아닌 산에? 숲에? 눈이 휘둥그레 해지신 YOU!!!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의는

모든 관계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자 근간이 아닐까 싶다. 

기나라 어떤 사람처럼 하늘 무너질까 침식을 잊을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심심한 우려가 가끔 다가오는데.....

특히 산을 오를 때 숲과 대면할 때, 

그들이 주는 기쁨과 상쾌함 여여함 느긋함 편 안 함 등 주는 것 들이 너무 많아 

그들에 대한 예의를 차려야 하지 않을까 싶더라는 거지.  


북한산 응봉능선삼천사 조금 못 미쳐서 걷기 시작하는 길인데

시작점이 조금 가파르더니.... 능선 위에 서니 세상에, 거기 하늘길이 열리더라. 

하늘위에 두둥실 자그마한 소롯길이 그것도 평평한 길이 주욱 이어졌다. 

세월이란 신묘막측한 더께가 끼면 그 무엇이든 깊고 승한 조화로움이 배어난다.

하물며 산 위에서 하늘과 바람을 벗 삼아 지낸 고요한 나무들이야 말해 무삼하리오.

북한산 수목의 종류는 그다지 많지는 않다.

소나무 참나무류들 오리나무 드문드문 물푸레나무과. 쪽동백 

관목류인 진달래 철쭉 산초나무 노린재나무..... 

그리고 자그마한 본 홍빛 꽃 매달고 서있는 싸리나무....  

근데 올해는 이상하게 꽃 진 나무에서 잎들이 보이더라. 

엽엽이 다른 그 생김새들이 

톱니바퀴의 선명함이 

둥글고 가늘고 길쭉함이 

나뭇잎 위에 솟아나 있는 자그마한 털들이. 

그중 팥배나무의 이파리는 정말 단정하고 참하기 이를 데 없다.

뚜렷하고 촘촘한 측맥은 언감생심 다른 마음 품지도 말라는 듯 단호하기조차 하다 

배 꽃 닮은 꽃은 아름답고 청초하다.


어느 까다로운 평론가는 스타일 부인의 회고록을 읽을 때

‘십일월의 나무 밑에 서서 “ 읽으라고 했다. 

독서도 장소가 중요할진대 나무의 고향은 나무에게 더할 수 없는 품위를 지니게 한다는 것,

자명한 사실이다.. 야트막한 산자락 아래의 팥배나무와 

산 봉우리 위의 팥배나무는 그 태생이 이미 다른 것이다.  


아마도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겠지만 

내 소망 중의 하나는 수목한계선에 서보는 것이다.

지구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본 수목한계선은 고요 외에는 없었다.

움직이는 물체라고는 전혀 없는 적막 그 자체였다. 

나무는 살아 있었지만 죽어있는 듯 보였고 죽어있는 듯 보였지만 분명 살아있었다.

그곳에 서면 이 미망의 삶이 조금 정리가 될까, 


하늘길에 서니

증취봉 용혈봉 용출봉이 한걸음에 닿을 듯했고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도 한눈에 보였다.

진관사에서 향로봉 가는 능선 길도 바로 곁에 있었고 계곡 길도 살짝살짝 보였다. 

왼쪽으로는 삼천사에서 비봉 문수봉 오르는, 내가 자주 가는 길도 보였다. 

사람만 첫인상 있는 것 아니다. 산도 나무도 숲도 길도 첫 느낌 있다. 

겨우 두 번째 상봉한 응봉 능선 길은 나에겐 새로운 화양연화였다. 

화양연화의 두 사람은 사랑했고 헤어졌고 그는 사랑을 써서 봉인한다. 앙코르와트의 나무속에.....

자신의 사랑을 역사 속으로 떠나보내는, 그래서 더 극진한 사랑을 만들던, 가장 아름다운 시절. 

응봉능선을 걷을 때  아무도 없는 길, 그래서 더욱 화양연화다  

그렇게 좋은 산을 오가면서 산에 가는 태반의 사람들 봉우리와 걷는 자신 외에는 관심도 없다.

가령 당신이 다른 집을 방문했다 치자.  기본적인 메너로 정원을 혹은 정원이 없다면 화분 한 개라도 유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가른 시는 거예요? 아 멋지군요..... 인사하지 않겠는가,

나이 드신 어른 계시면 건강하신가요? 안부 묻지 않겠는가,

혹여 아픈 아이라도 있으면 아 우리 아이 때도 그랬는데..... 공감한다면 아이 부모 위로되지 않겠는가? 

산은 당신의 방문지 아닌가,

산이 지닌 숲에는 수많은 나무들이 있어 자라고 아프며 금방이라도 세상을 하직하려는 나무도 있다. 

당신이 산이라는 부모라 치면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길들이 고맙질 않겠는가,

아 건강하구나, 아름다워. 싱싱도 하지. 다정한 눈길에 힘이 솟구치질 않겠는가,

유월 산 유월 숲 유월 나무라고 하여 다 건강할까.

이르게 단풍 든 나뭇잎도 있고 가뭄에 약한 나무들은 벌써 몸을 꽈대고 있었다.

힘들겠다. 비가 와야 할 텐데.... 조금만 더 기다리렴 오란비 시간이 지척이야. 

속삭여주면 힘이 나질 않겠는가, 

이미 삶을 벗어난 나무도 있다. 드물긴 하지만 일시에 옷을 벗어버린 나무를 본 일이 있다.

견디다 견디다 못해 삶의 의지를 포기해버린 나무.... 그는 옷= 표피를 벗어버렸다. 

그리고 깨복쟁이 자태를 나타냈다. 겉이. 옷이, 껍질이, 체면이, 예의가 삶의 의지도 되는구나를 여실히 깨닫게 해주는 웅변이었다.

잠깐 멈추면 어때, 무엇보다 산초나무 가시 사이로  쪽동백나무 사이로... 힘겹게 피어난 

저 나리. 저 가느다란 몸짓 봐.  대궁 하나 수욱 올라와서

대궁에 어울리지 않게 환하게 커다랗게 피어난 것 좀 봐. 그 옆의 저 나리 

보다시피 자라나기도 어렵지만 겨우 꽃 머금어도  저렇게 벌레들이 호시탐탐 노려서 봉오리 머금었는데

피어나기도 전에 벌레에게 먹힌 것 봐.

에미, 얼마나 전전긍긍하며 저들이 피어나기를 기다리는지. 떠나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리가 아름다운 것은 저만 아름다워 서가 아니 라저 작은 것 피어나면 며칠 살지도 못하지만,

그 작은 시간 동안,  주위가 온통 환해. 런 아름다운 주황 등롱을......

조심스레 조금 길가 벗어난 곳에 피었다고 해 그렇게 바라보지도 않고 성큼 거리며 가버리면..... 

그래 설령 저 이야 무슨 말을 할까, 이미 오래전에 홀로였고 지금도 여전히 홀 로고

미래도 홀로 존재할 터인데 그 단단한 존재를 빙자해

그저 이내 외로움 조금 내비쳐본 거지......

예의 는 무슨, 너나 잘 살아.... 

산이 말하길래

네에,!!!! 


대답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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