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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Apr 01. 2020

경주2


나무도 늙거나 비만이면 지팡이를 짚어야 한다. 

계림 노거수들은 금방이라도 메부리코에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든 마술할머니로

변할 것처럼 보였다. 

이파리 없는 노거수들은 존재의 괴이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우리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한 파괴를 시간의 흔적인 나무의 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오래 사니 

좋으셨소? 고생하셨소? 즐거우셨소? 사람이 같잖아 보이시오?

여기저기서 보이는 신라의 첨성대가 있어도 경주의 정경에 신라의 세월은 없었다. 

그래도 능들이 그 부드럽고 우아한 선으로 자주 출몰하니  

오래된 세월의 더께를 덧입혀 주는 것은 확실했다. 

능을 하도 살펴선지 숙소에서 보이는 먼  산그리메들도 혹 지구의 능이 아닌가,  


   

셋째 날은 살짝 흐렸다. 오후에는 비 소식도 있었다.

건물로 가자....그래서 엑스포공원으로 갔다.  솔거 미술관이 있다고 해서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웬걸, 안 갔으면 후회할 뻔 했다. 문화엑스포라는 이름이 무색치 않았다. 

주상절리를 구현한 꽤 큰 작품과 기념관내에 있던 백남준의 작품을 위시해서 중국 작가 문자의 숲....은 평이하다 싶었는데 뒤로 서서 보니 작품에 비치는 그림자들이 황홀했다. 

신라를 형상화한 미디어 아트도 좋았다. 첨성대 석굴암 별 금관등, 사람이 없어서 얼마나 혼자 잘 놀았는지.....  높이 82m의 황룡사 9층 목탑을 재해석한 경주타워, 자연사 박물관은 남편이 무척 좋아했는데 처음 보는 기묘한 화석 광물들이 아름다워 진짠가...손을 넣어 다듬은 거 아닌가, 의심이 갔다.



솔거미술관은 가는 길조차 좋았다. 엑스포 문화공원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는 비밀의 숲처럼 높은 언덕 위 작은 둠벙 옆에 살짝 숨어 있었다. 고즈넉했고 벚꽃은 환상적으로 피어났으며 오른쪽으로는 광대한 공원의 자락들이 무심하게 펼쳐 있었다. 박대성의 작품이 있었는데 아, 손의 힘이라니.......큰 수묵화에도 압도당했지만 작은 가지 하나를 그린 작품 앞에서 오래 서있었다. 빈 공간에 저렇게 나뭇가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식사장소가 없어서 경주타워에 있는 선덕 카페에서 커피와 빵을 점심 대신 먹고 다시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타워에 있는 오아시스 정원 같은 것은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의 소산물.  그냥 자연스럽게 두면 좋았을 텐데, 과유불급이여..... 새마을관....도 낯설었다. 아사달 조각공원은 시간이 흐르면 더욱 좋아질 것 같았다. 비움명상길, 시간의 정원들을 전체적으로 다 걷고 나니 오후 세시가 넘었다, 무려 네 시간 넘게 아주 잘 놀았다. 석굴암까지 드라이브라도 하자, 가는 길에 차가 많이 서있는 곳에서 늦은 점심으로 돌솥밥을 먹었다. 어제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맛있었다. 불국사 주차장을 지나는데 오른쪽으로 꽃이 그득했다. 스톱, 마침 어중간한곳에 서있는 차도 있어서 거기다 붙여 주차를 하고 내려갔더니 목월 동리 문학관이었다. 목련과 벚꽃이 피어나 있는 모습이 위에서 보니 완전 비밀의 정원(이 말 두번째네)이었다. 이미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우산을 들고 팔짱가지 낀 채 들어섰더니 휴관이다. 뭐 더 좋았다. 우리 같은 늙은 부부도 한 팀, 고개를 들고 꽃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보슬비 내리는 경주, 목월동리 문학관의 나무꽃들이 주는 정한, 

안개도 조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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