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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May 09. 2020

제주 사흘

 



비 내리는 아침이다.

어제 생각으로는 비가 오면 마음이 좋고 가라앉고 침착해지니까 써야할 글을 써야지. 정했다.

그런데 아침이 되고 빗소리가 들려오는데도 

창밖 비 내리는 풍경을 한참 바라보았는데도

그리고 우유 반잔이 못되게 머그잔에 담고 렌지에 2분 18초를 데워서 컵도 우유도 뜨거운 것에 

폴리페놀이 많이 들어 있다는 믹스 커피 하나를 타면 딱 스벅의 돌체라테 맛으로 

요즈음 내 아침 식사라, 식사를 마쳤는데도  

써야할 글은 쓰기 싫고 결국 제주 사흘을 제목으로 쓰고 말았다.     

제주도에서는 이미 찔레꽃들이 그것도 자그마한 장미처럼 제법 커다란 송이들이 

어우렁더우렁 피었더라만...이 비 후에 우리 동네는 찔레꽃 향기가 피어오를 것이다. 

찔레꽃 머리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우리말로 내가 애정사랑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옛날 사람들은 찔레꽃 피는 시점을 여름의 시작으로 여겼다는 말이다. 


이런 흐리멍텅함 속에는 얼마나 깊은 서정이 고여 있는가,

정확하지 않고 딱 부러지지 않고 동네마다 꽃피는 시간이 다른 찔레꽃 피는 시점이 여름의 시작이라니,

그 불분명함 속에 고여 있는 것은 차이나 다름을 인정하는 여유나 자유가 아닐까, 

한낮에 등줄기에 땀이 났다.....그러면 여름의 시작이다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찔레꽃을 넣은 찔레꽃 머리...를 생각해면 사람의 정서가 보이기도 한다. 

모든 순한 것들에 익숙한 것들에 자연스러운 것들에 대한 인정이자 긍정의 표현일 것이다.     

제주도에서 찔레꽃 사진은 한 장도 찍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는 꽃들을 찍노라 익숙한 꽃은 저절로 밀리게 된다.

그러니 찔레꽃에 대한 내 생각도 여러 가지가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 방 컴 앞에 앉아서 제주도의 사흘째를 생각한다.

벌써 지나가버린 시간이다. 

내가 보았던 꽃들은 이미 사라졌을 것이고 내가 보았던 이파리들도 이제 신록으로 들어섰을 것이다. 

그 대상들은 무수히 변하고 있으나 그를 기억하는 나란 존재 속에서 그 대상들은 변하지 않고 있다.  

가령 내가 사흘 째 신천 목장 주변의 바닷가 올레길에서 바라본 파도...

그 짙푸른 남빛을 똑 같이 바라본 내 남편은 그 푸르른 남빛 바다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단언컨대 그 기억들을 그림으로 누군가 표현해준다면, 줄 수 있다면

내 기억이 몬드리안 적이라면 남편의 그림은 아마도 니콜라 푸생 정도가 아닐까, 

왜 기억 이야기냐면 기억이 존재 자체 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기 때문이다. 

 현실 속에 살고 내가 몸담고 있는 현실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나를 이끌어가는 무수한 생각과 기억, 사유들이 현실의 나를 만들어가는 게 아닌가,  

존재 역시 실재만이 아닌, 사실 실제란 얼마나 작은 것인가, 

내가 수산한 못을 보았지만 내가 본 수산한못이 정말 수산한못 일까? 

이제 그 수산한못은 내 기억 속에 존재하는데 그 존재가 정말 수산한못 일것인가,

아니다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기억은 존재의 흔들림 속에 존재하는 존재.    


숙소와 멀지 않는 올레길 구간 신천 목장.....주변을 걸었다.  

젊은이들이 제법 보였다. 그것도 혼자 걷는....

그런 친구들을 보면 좋아 보인다. 저리 걸으면서 많이 생각하겠지,  깊이 생각할 수 있겠지,

삶을 변화시킬 수는 없어도 생각의 전환은 이루어져 삶이 풍성해질 것이야,  

내 아들도 칠레 아타카마 사막을 완주 했었지. 

세상에 그런 일을 혼자 계획하고, 

덤덤한 어미는 남들이 하면 너도 할 수 있겠지...라고 단순하게 생각을 했으니, 엄청나고 무서운 일인데....

젊음이라 가능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늙음이 꼭 나쁜 것은 아니나 

몸으로 하는 눈부신 일들을 못하게 되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곳 바닷가 쪽에 사스레피 나무가 마치 서로 떨어지면 죽기라도 하듯이 

작은 키로 오종종하게 엉켜서 살고 있었다. 

바람 때문에 키는 자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저 존재하기에도 벅차서,

혼자는 절대 안되니까 서로 서로 껴안고.....

황제 펭귄이 서로 껴안고 맹추위를 견디며 알을 보호하듯이 그렇게 사스레피 나무들도 껴안고 있었다. 

실제 사스레피 나무는 잘 자라나는 나무인데 

바람 센 바닷가 쪽에 터를 잡으니 마치 다른 종류의 나무처럼 자라나더라는 것,        

경험상이라 단언은 못하지만 미술관만큼은 못하더라도 박물관 주변도 꽤 괜찮다.

바닷가 쪽에 있는 해녀 박물관을 그래서 선택했다

그런데 문을 닫았고 생각보다 주변 경치가 없어서 살짝 실망을 했지만 

실망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언제나 좋을 수만은 없으니까, 

점심 집을 찾다가 차량이 갑자기 많아져서 아니 여기는 머여? 했더니 

세상에 물빛이 기가 막히다. 세화해변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 어슬렁 거렸다.

그리고 해안가 도로를 천천히 드라이브했다. 


별방진펌사진


별방진을 발견한 것은 남편이었다. 

“저 담들이 보통의 담은 아닐 것 같은데?”

별방진은 제주도 기념물 제24호.  우도 부근에서 출몰하는 왜구를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 1510년 김녕 방호소를 옮겨와 다시 축성했다고 한다. 제주의 옛 돌담길과 성벽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오랜 시간을 지나고도 씩씩하게 남아 있는 돌담, 진 , 성의 바람 이기는 방법에는 결국 틈이었을 것이다.

돌 틈이 바람을 갈라 힘을 약화시켜 저렇게 긴 시간을 서있을 수 있는 것, 

사스레피 나무는 바람을 이기기 위하여 서로 엉켰고 돌담은 살기 위하여 틈을 낸 것이다.

지나가다 우연히 만난 보물,

성벽 곁에는 장구채가 엄청나게 피어나 있었다. 갯장구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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