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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May 15. 2020

느티나무

제주 민속 성읍마을

나무는 절대 혼자 살지 않는다




나무는 현대 미술처럼 머리를 쓰거나 설명을 들어야 필요가 전혀 없다. 

오래 산 나무는 세월만으로 충분히 사람을 압도한다. 

기이한 형상이 없다할지라도 크고 강렬한 메시지를 존재만으로 뿜뿜 내뿜는다.   

사람의 감정 중 가장 깊은 ‘숭고’ 까지 순식간에 데려간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위대한 작품이다. 

말하자면 나무는 신께서 혹은 자연이 세월이라는 붓으로 수많은 덧칠(생각)을 해서 만든 거룩한 작품. 

오죽하면 오래전 시인께서 신만이 나무를......했겠는가,     


나흘 째 아침도 느긋하다. 누룽지를 끓여서 숭늉까지 마시고 사과와 나만의 돌체라테도 마셨다. 

여행을 시작하려 차를 타려다가 문득 한나 아렌트의 말이 떠올랐다. 

‘남의 시선에 노출된 자신만을 신경 쓴다면 그 삶은 천박한 것이다’

매우 깊고 인상적인 말이지만 마음에 딱 맞는 말은 아니다. 

왜냐면 나는 정말 많이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제주 속의 나는 사람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소박한 밥상과 작은 차, 옷은 교복이며 

사람들에 대한 관심 보다는 자연만으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리자면 매우 고급한 상태의 여행이 아닐까,     


숙소 지척에 있는 성읍 민속마을로 갔다. 

수학여행 때 부터 시작해서 제주에 올 때 여러 번 들렀던 곳이지만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한 고택과 나무가 목표다. 

오백년 도읍지 성읍은 꾸며진 것이 아니고 원래 있었던 곳을 보존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곳이다.

그러니 눈이 밝으면 오백년의 세월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제주 여행 때 팽나무를 찾아서.....가 세 번이나 된다. 

한림읍에 있는 팽나무 군락지를 가서 작은 계곡을 점유하고 있는 기이한 형상의 팽나무들에 놀란 적이 있고

와흘리 본향단의 팽나무는 그 기괴함으로 경탄을 자아냈는데 벼락에 의해 사라져버렸다.  


인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나무를 타고 하늘로 간다는 말이 있다. 

노거수들은 오랜 시간을 자연과 합일 한 채 살아선지 자연이 부여해준 특별한 경건함을 소유한 듯, 

그 경건함이 사람의 영혼 속에 있는 깊은 영성을 터치해주는 것 같다.

그러니 창조주를 모르는 사람들은 와흘리 의 팽나무에게 제사를 드렸을 것이다. 



제주 나흘째 

민속마을 팽나무는 육백여년을 지나온 세월을 담뿍 담고 있었다. 

경건하고 놀라운 마음으로 입은 저절로 벌려졌고 

하늘을 향해 아니 나무를 향해 내 몸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수많은 세월 봄마다 저리 여린 싹을 내보냈겠지, 저 한 가지는 한그루 나무보다 더 큰데

어떻게 저리 여전하게 품에 안고 키울 수 있을까,

무수한 이파리들을 품에 안고 키우다가 깊은 가을이면 홀홀히 져 내리는 것들을 바라보고 있었겠지.

고독한 겨울을 보내며 다시 봄을 기다렸을까? 

아니면 가을을 생각하며 이렇게 이파리 솟구치는 봄에도 서늘할까, 반복되는 이별은 참혹할까, 

하 오랜 세월이라 이젠 그대 담담할지도 모르겠네. 


나무 사진은 참 안된다. 가장 안되는게 나무 사진 같다. 

설마 그 거대한 몸을 휴대폰의 작은 렌즈 속으로 들이밀고 싶겠는가....    


유채꽃길로 아름답다는 길 100선에 들었다는 녹산리길  가시리... 가는 길 . 

유채는 베어졌고 벚꽃은 사라졌다. 그래도 너무나 아름답고 한적했던 길이었다. 

그런 길을 가다가 다른 차들이 세워져 있으면 무조건 서야 한다. 

말 목장  가는 길에 나무가 도열해 있었다. 

사진 찍는 젊은이들이 많아서 살짝 눈을 옆으로 돌리니 저쪽 잘 보이지 않는 곳에 홍가시 나무가.... 

농로를 지나 들어가봤더니 오메, 홍가시 농원이다. 웨딩 촬영을 하고 있었다. 

하얀 드레스와 붉은 나무의 조합이 환상적이었다. 그들이 나무들을 더 아름답게 해주었다. 

한참 구경을 하다 왔는데도 목장 가는 길에는 사람이 있었다. 

이번에는 먼 곳에 있는 말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다리가 길고 몸이 탄탄하고 매우 큰 생김새가  보통 말이 아니었다. 새끼를 데리고 있었다.

우리가 보는 사이 목부들 여럿이 그 말을 목장에서 데리고 나갔다.

새끼는 어미를 자연스레 따라가고, 잠시 후 어미 말만 혼자 목장으로 돌아왔다.

새끼와 함께 하지 못한 어미는 분노에 차서 벌컥벌컥 뛰다가 달리다가 땅을 차다가...... 

그 격렬한 분노가 멀리 있는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참척의 마음이리라....

적나라한 말의 고통을 멀리서 즐겁게 바라보다니....

생각해보면 참으로 이상한 인생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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