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루주 드 라 투르
서랍에 양초가 꼭 있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전기가 나가버리고(끊어지고가 아닌 나가버리고를 사용했는데 존중의 느낌이 있네요)
어둠은 정말 깊어서 온통 깜깜했지요. 그럴 때 가끔 눈을 감아보기도 했는데 감나 뜨나 똑같았죠.
서랍에 넣어두었던 양초를 겨우 찾고 엄마가 더듬거려 부엌에 있던 성냥을 가져와 치익 소리가 나게 그으면
성냥에 불이 켜졌어요. 양초 심지에 불을 붙이고 일렁거리는 촛불을 조심스럽게 전축 위에 놓곤 했죠.
방은 아늑해지고 덮고 있는 이불은 더욱 따뜻해졌어요.
눈이 익숙해지는 것을 촛불이 점점 밝아진다고 생각했어요.
은유긴 하지만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초의 역할을 희생정신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희망의 빛으로 환유 되기도 하고 소망의 대상(?)으로 환치되어 교회에서도 대림절에는 촛불을 켜기도 합니다.
‘흐릿함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한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리움 미술관에 가면 그의 작품 ‘촛불’이 있습니다.
흐릿한 촛불이지만 보는 순간 미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매혹해 저절로 그 자리에 서 있게 합니다.
그는 회화에 대한 사랑과 새로움에 대한 갈망 속에서 고민하다가
사진에 기반한 포토페인팅 시대를 열었습니다.
묘사로서의 회화를 벗어나 회화를 통해 순수한 실체를 드러내는 그의 의도는
그림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하게 합니다. 그의 촛불 가격은 현존 작가 중 선두일 거예요.
조루주 드 라투르도 촛불 작가라고 불립니다.
베드로의 배반도 밝히더니 그의 참회도 촛불 앞에서 이뤄집니다.
주사위 놀이를 하는 즐거운 시간이나 죽음 앞에서 애도하는 순간에도 촛불은 다양한 형태로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탄생도 촛불이 비춰내고 목수 일을 하는 요셉 곁에서 촛불이 혹시 꺼질까 봐
손으로 바람을 막고 있는 어린 예수의 표정은 섬세합니다.
손의 섬세함 못지않게 깊은 밤까지 일하는 요셉에 대한 긍휼도 담고 있습니다.
‘아내에게 조롱받는 욥’은 딱 그 대목입니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성장한 욥의 아내는 어두운 방에 앉아서 자신의 살을 깨진 질그릇으로 긁고 있는 욥을 찾아와 말하죠.
아내의 눈초리는 차갑고 교만하며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욥의 눈빛은 절망에 가득 차 있습니다.
아, 당신마저도....
<회개하는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조르주 드 라투르는 특별히 막달라 마리아를 네 번이나 거의 같은 자세로 그렸습니다.
일곱 귀신이 들려 고난을 받다가 예수님에 의해 해방된 여인, 예수님을 섬기다가 고난의 현장에 있었던 여인,
예수님 장례를 위해 향유를 준비했고 그녀는 동틀 무렵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무덤이 빈 것을 발견하고 제자들에게 알립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맨 처음 그녀에게 나타납니다.
결국, 그녀는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습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아 그녀의 표정을 알 수는 없습니다.
그리지 않으므로 오히려 상상을 더 하게 합니다.
환한 촛불이 그녀를 밝히고 있지만, 실제 그녀의 시선은 어두운 벽을 향하고 있습니다.
화장대는 덧없는 인생을 상징하죠.
촛불은 이 작품에서 주인공이 되어 막달라 마리아뿐 아니라 해골까지 선명하게 비춰냅니다.
살풋 그려진 마리아의 그림자와 선명한 촛불의 그림자가 대비되는군요.
보이는 세상만 보지 말고 그 너머의 것을 응시하라는 사인일까요?
그녀는 방금 외출에서 돌아온 듯해요.
성장한 옷차림은 느슨해져 있고 몸에서 분리된 장신구들은 바닥에까지 흩어져
그녀의 마음 상태를 짐작하게 합니다. 대신 그녀는 해골을 자신의 무릎 위에 놓고 삶을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참회와 반성, 삶의 덧없음을 상기하고 있을 겁니다. 카라바조는 빛과 어둠의 대비를 즐기면서도 광원을 직접 나타내지 않았지만, 라투르는 촛불과 함께 거울 속 그림자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울은 대상을 비춰줄 뿐 아니라 성찰하게 하는 힘을 발휘합니다. 그는 빛과 어둠의 조화나 대비를 통해 대상에 입체감을 부여하는 방법인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의 대가였고 고양된 그만의 단채화법은 종교화에 적합했습니다. 명암의 대비 속에서 인간 내면을 선명하게 포착해 냈죠.
프랑스의 로렌 지방에서 빵집의 아들로 태어난 조루주 드 라 투르는 귀족의 딸과 혼인하여 공방을 차리고 도제를 고용해서 경제적인 부를 이루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자 파리로 가서 궁정 화가가 되어 루이 13세의 각별한 사랑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죽은 뒤 오랫동안 잊혔다가 20세기 초가 되어서야 재발견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상당한 자산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고리 대금업을 하거나 하인에게 도둑질을 시키는 등 민심을 잃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을 거로 추측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뿐 아니라 사기꾼이나 점쟁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풍속화도 매섭게 그려낸 사람이니 인품과 작품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의 사후 이야기도 炎夏 속에서 음미해볼 만합니다.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잠언 2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