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영 Jul 11. 2016

가끔은 괄호가

환상의 빛을  





나이가 들어갈수록 의식하게 된다.

기억에 대한 천착력이 조금씩 강해져 간다는 것을,

기억은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과거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기억이 사람의 본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태풍 지나간 뒤의 맑은 하늘처럼 가끔씩 출몰하더니 이즈음에는 꽤 자주 현현하더라는것,  

시간처럼 사라지거나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데 정말 시간은 사라지거나 흘러가버리기만 할까)

점차 축적되면서 그 에너지는 강해지고 

더불어 전혀 새로운 에너지를 창출하는 즉 정신의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마치 우뇌처럼 혹은 좌뇌처럼 머리뼈 가운데 떠억 자리하고 있을(?) 거라는 것, 

가령 아이들은 기억의 에너지가 작아서 아니 거의 없어서 

몸의 에너지로 충만하게 살아가지만

어느 순간부터 축적된 기억의 에너지가 사람을 이끌어가는 게 아닌가,

그 우선순위  선(금)으로 혹시 어른과 아이가 나뉘어지는게 아닌가,

 

기억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다.

누구나 기억을 상실하며 살아가지만 소실된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기억은 관계와 공유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시간에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하게 함께~   

(특별~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말라. 어느 순간부터 특별히는 아무런 특별히가 아니며 특별히 아닌 것이 아주 특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더라. 모든 소소한 것들의 모든 특별함!)  

이제 내게 <기억>은

어떤 이성에 대한 떨림보다 

더 섬세한 흔들림과  울림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나이가 기억에 대한 촉을 제공하는 공신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고레다 히로카즈는 우리나라에서 고감독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나는 확실하게 고감독의 팬이다.

개봉된 그의 영화는 거의 다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필모 그래프에 소개된 

보지 못한 영화까지 아~ 보고 싶다... 아 맛있겠다.라고 생각하며 입맛을 다시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난번 보았던 바닷가 마을의 다이어리는

어느 부분엔가....

감독의 스타일대로 어때야 한다는 의지에 짓눌린 클리셰가 좀 엿보여 아쉽긴 했다.    


<환상의 빛>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데뷔작!이라는 선전문구보다

그의 데뷔작이라는... 것에 더 마음이 끌렸다.

무려 20년 만에 우리나라에 개봉되는 고감독 첫 장편 데뷔작.

데뷔작은 마치 첫눈이 내린 숫눈길을 바라보는 것과 흡사한 일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우리 동네 좋은 동네인데  출판도시 끄트머리에 ‘명필름아트센터’가 문을 열었다.

끄트머리의 매력은 자연스러움에 있다. 

다듬어지지 않는 공간을 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로 길 곁에서는 웃자란 바랭이가 무성하고 쇠무릎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고 

억새는 자그마한 바람결에도 흔들리고 있었다.

아무도 심거나 거두지 않아도 저 홀로 피어나서 지는 것들이 주는 아름다움은 찬연하다.   

시작점이라선지 주차장은 무료였고 고양시민이라고 영화비 2천 원을 할인해주었고 

1층 카페 천 원 할인쿠폰도 함께 주었는데 

그러니 영화 속으로 퐁당~ 들어갈 준비는 완료된 셈. 

영화 보는 내내 가끔 마시던 커피의 향기는 좋았고 

무엇보다 참 오랜만에 혼자였다.  

  

가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여백을 어떻게 이해하시나,

빈 공간으로  생각이 들이찰 수 있는 곳으로만 여기던 여백이

이즈음 사방에서 보이곤 하는 나의 이 상태에 대해서도...   

 

하다못해 주인공.... 의  얼굴....

그러니까 젊은 아내가 남편이 일하는 곳에 찾아와 격자 유리창 앞에서 

얼굴을 이리저리 바꾸며... 온통 밝음 온통 환함 온통 명랑한 표정으로 

사랑한다는 표현을 한다.

먼저 발견한 동료가 남편에게 알려주고 남편은 그런 아내를 바라본다. 

가만히 무연히 말없이.....

사랑하는 아내를 사랑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남편...... 의 

얼굴에 그 표정에 무한 여백이 보이더라는 것, 

남편이 비가 올 것 같다며 돌아와 우산을 들고 다시 나선다.

아내는 그런 남편이 너무 좋아 그 짧은 순간에도 같이 따라와 배웅을 한다.

아내는 그런 남편의 등 뒤에서 온통 밝음 온통 환함 온통 명랑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

우산을 든 남편은 우산을 앞뒤로 흔들며 멀어지고

남편의 등이 보여주는 표현하기 어려운 스산함... 의 여백 

그날 아내는 잠든 아이와 함께 졸면서 남편을 기다라고 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

아내는 두 번 죽는다. 

남편의 죽음 앞에서... 그리고 그 죽음이 야기한 상황 앞에서...

“그냥 차를 향해 걸어오더래요.” 

그 말 가운데서도 무한 여백이 펼쳐졌다. 

이십 년 전이니까 이제  겨우 삼십 대 중반의 감독이 

어떻게 이리도 절절한 여백을 생경한 여백을 낯선 여백을 

지난한 생의 그림자들이나 드리울 수 있는 여백을 포착할 수 있을까,

영화의 미덕으로 친다면 출중하기조차 한 풍경의 여백도 깊고 아름다웠다.  

눈 덮인 기찻길을 지나  낯선 역에 내렸는데  

재혼할 남편이 나와 있어야 하는데 비어있다. 

빈 역사는 낯선 생활로 발을 떼는 유미코의 심경을 그대로 전달한다.

새로운 남편과 함께 찾아드는 새로운 곳.....

바닷가 마을은 어찌 그리도 음험하고 아름다운지....

파도소리 때문에 잠을 설치게 될 거라는 말 뒤에 

오히려 안도하는.... 유미코의 말없는 침묵이 이어지기도 한다. 

말없지만 속 깊은 시아버지와 새로 생긴 딸... 그리고 남편과의 잔잔한 일상이 펼쳐진다.

마치 유미코의 상처가 녹아가듯이 

아이들은 눈 녹아가는, 봄이 오는  들판에서 뛰놀고

모를 심기 위하여 모아놓은 논물에 비친 오뉘의 반영은

여전히 유미코에게 고여있는 상처를 예시해주었을까?.      

기억을 잊은 듯 

상처를 잊은 듯   

이제 금 다 나았을 거야.... 하며 그녀는 자신이 살았던 곳을  되돌아가 보는데.

여전히 상처와 기억은 그 자리에 그대로 존재해있다.

얼굴의 표정보다 옷의 색으로 유미코의 마음을 드러내는 고감독          

그녀의 옷은 다시 어두운 색으로 돌아간다.  

그는 대사로만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그의 풍경은... 어떤 지문보다 더 내밀한 심경을 표현해내며

어떤 조탁된 언어보다 더 풍부한 느낌을 전달해준다. 

고감독의 미장센은 화려하다 못해 구슬프다.  

마지막 바닷가 장례식 풍경은 전 장면을 스틸 컷으로 뽑아서 간직하고 싶을 만큼

정적이며 우아하고 고독하다. 

  

그가 그린 세상은 거대하지 않아서 위로가 되며

특별한 메시지가 없어서 오히려 사무치게 다가온다. 

소소한 이미지들은 

영화 속을 벗어나 내 삶 속의 시간까지 성큼 들어와 내 안을  풍성하게 한다. 

기억을  다루며 상처를 치유하고

상처를 이야기하며 삶을 성찰하게 한다.

세상 어디에 환상의 빛이 있겠는가? 

<빛>이라면 빛이 비치는 곳이라면 

환상 아닌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고감독의 환상 아닌 환상의 빛에 대한 리뷰를 쓰고 있으니 계속 홍상수 감독 생각이 난다. 젊은이와 연애를 하니 혹은 사랑을 하니 얼마나 즐겁고 생기 찰까. 환상적이겠다. 영화도 혹시 더 프리덤 해질 겠도 있겠네. 근데 프리덤은 체면을 근간으로 시작된 것 아닌가. 체면은 이제 아주 촌스러운 단어가 되어가는데 나는 누가 뭐래도 이 체면이 살아가는데 엄청 중요하다고 생각하네,  양심은 혹시 없어도 체면이 양심을  만들어주기도 하니까. 근데 이 체면을 까고 나면.... 뭐가 남을까... 그저 괄호 속 이야기니 예민하지 마시기를)




작가의 이전글 북한산계곡물귀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