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영 Aug 13. 2020

生과 死의 장렬한 파노라마

매미와 사막의 식물들

    


참나리꽃 위에서 부화하지는 않았을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매미소리가 지천이다. 책을 읽다가 멈추고 가만히 밖을 내다본다. 

보이지 않으면서 소리로 존재를 나타내니 매미는 음악이 아닌가, 

시멘트 바닥의 도시를 순식간에 농촌으로 만들어내는 마술사 같기도 하다. 

여름의 정점에 다가와서 여름의 정한에 방점을 찍고 있다. 

소리를 시각으로 볼 수 있다면 지금 매미의 소리는 여름 나무 이파리처럼 무성할 것이다. 

짝을 짓기 위해서 수매미는 울고 암매미는 소리통 대신 산란관을 지니고 있다.     

무한 긍정의 시각을 지닌 옛 선비들이 매미의 홈을 갓끈으로 인식 청렴하다고 보았다. 

발상의 전환이 얼핏 발랄한 듯 하나 결국은 좁다.   

사람의 곡식을 먹지 않아서ㅡ대신 나무 뿌리의 즙을 먹으니 나무 편에서는 해충일터ㅡ 염치를 안다고,

그늘에서 살면서 집을 짓지 않으니 검소하고, 게을러서 일수도 있잖은가,  

때가 되면 왔다가 사라지니 믿을 만하다고 여겼다는데 어디 매미만 그런가,

도시의 소음만큼 목청이 큰 말매미만 살아남았다.  

알에서 애벌레가 되고 애벌레는 땅속으로 들어가서 짧게는 3년 길게는 17년도 산다고 했다. 

그러니 매미는 참으로 오래 사는 곤충이다. 

성충으로 사는 시간이 길면 한 달여라 해서 매미의 생이 짧다고 말할 수는 없다. 

굼벵이로 사는 그 긴 세월은 삶이 아니겠는가,  

오히려 땅속에서 살아가는 삶이 저들에겐 참 의미의 평화로운 삶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땅속에서 나올 때부터 다른 동물들의 먹이가 된다. 그러나 매미도 무기가 있다. 

매미의 무기는 바로 매미 자신이다 

즉 매미의 數가 바로 무기가 되는 것이다. 

2004년 미국 어느 지역에서  며칠 밤사이에 등장한 매미의 수는 1조에 달했다고 한다. . 

그러니 아무리 숲에 사는 숱한 동물들이 먹고 또 먹어 치워도 매미는 씩씩하게 나무 위로 올라갔고 

성충이 됐고 짝을 지었고 알을 낳을 수 있었다. 

매미는 매미 자신을 위한 존재하기보다는 매미라는 종의 공동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매미가 똑같은 시각에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매미 개개의 생명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사랑하고 알을 낳기 위해 허락받은 시간은 겨우 한 달, 

그해 나무의 나이테 간격이 커졌다고 한다. 

즉 17년 주기의 매미가 등장하는 그 해 폭발적으로 나무가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나무의 진을 빨아먹는 애벌레가 그해 나무에는 없었기에,      

‘존재함’ 만으로도 눈물 나는 사막의 식물들도 있다. 



당신은 아시는가.

육지 전체의 넓이 중 삼 분의 일이 사막이라는 사실을,

그리하여 어두운 생각일지 모르지만  

인생의 넓이 중 적어도 삼분의 일 이상은 사막이 아닐까 추론을 해본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소유나 물질에 관한 이야기만은 절대 아니다. 

우주 비행사들이 귀환하는 중 저궤도에서 지구를 바라볼 때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는 

사람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막이라고 한다. 

이는 사람이 혹 사막 가운데 거할 때가 가장 가치 있는 시간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까,  

내가 본 유일한 사막은 모하비이다. 

오!그랑데(?)를 가기 위한 관문, 

버스를 타고 가는데 돌과 자갈들이 가득한 땅에 

허리춤에도 오지 않을 것 같은 관목들만 드문드문 솟아나 있는 사막. 

가도 가도 그 길은 도대체 끝이 없었다.

차츰 시간이 흐를수록 그 단순한 풍경이 주는 말할 수 없는 장대함이 

내 속에서 미묘한 에너지를 만들어가던 기억이 상기도 선연하다.

사막의 식물들은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한다. 

몸속에 수분을 일시에 많이 모아 들이거나 

저장된 수분을 앗기지 않게 하려고 바늘처럼 뾰족한 형태로 만들기, 가죽처럼 질겨지기, 

숨구멍의 수를 줄여 깊은 땅속으로 숨기, 두꺼운 털로 스스로를 보호하기, 

모래언덕에 사는 갈대는 그 뿌리가 수 미터에 달하기도 하며

사하라 사막에 살았던 아까시나무가 죽은 후 살펴보니 

그 뿌리가 35m나 되었다는 사실은 정말 눈물겹지 않은가,  

더불어 수많은 잔뿌리는 땅속을 샅샅이 탐색하는 면밀한 현미경이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사막지대에 사는 예리고의 장미는 

내내 작은 뭉치처럼 미이라 상태로 말려 있다가 

조그마한 습기라도 감지를 하게 되면

순식간에 넓게 잎을 펴서 생명을 만끽한다.

아프리카 사막에는 노미옥속이란 식물이 있는데 

이파리가 반질거리는 석회석과 같아 

냇가에서 주운 조약돌과 거의 구분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우기가 되면 그 조약돌에서 주황색의 커다란 꽃이 피어난다고 하니.... 

더더욱 놀라울 일은 아타카마 사막에는 뿌리 없는 식물도 있다고 한다.

공 모양이 되어 바람 부는 대로 여기저기를 굴러다니는 식물, 

이런 지극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생명들에게 어느 순간 비가 풍족하게 내린다. 

바싹 마른 땅속에서 30년 동안 잠자고 있던 씨앗들이 싹을 틔운다.

가지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모아서 꽃으로 피어난다.

그리고 습기가 있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양의 씨를 만들어 낸 다음

다시 죽음과도 같은 휴면상태로 들어간다.    

     

매미와 사막의 식물들,  

역사 속에서 인간의 삶 역시 매미처럼 취급돼 온 것은 비일비재하다. 

폭폭하게 살아가는 인생길이 사막이기도 하고 

우리는 사막의 뿌리 없는 식물일 수도 있다는 것, 

생명의 순환 고리 속에서 읽어지는 생과 사의 장렬한 파노라마

나나 당신, 지구 안의 작은 매미가 아닐까, 

혹은 현세의 삶이 땅속의 매미이며 내가 믿는 부활이 매미일수도 있다.      



작가의 이전글 에드워드 사이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