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유의 임종
까미유의 임종 Camille Monet On Her Deatbad 1879년 90x68cm. 오르셰미술관
마음으로부터-또다시 마음으로 가리라’
단순하면서도 시적 함의를 가득 품고 있는 이 문장은 52살의 베토벤이 장엄미사를 작곡하고
1부 키리에의 악보 위에 적은 글입니다.
장엄미사는 작은 소리의 합창으로 시작되어 테너, 소프라노 알토 솔로로 이어지는데
소리에서 소리가 나오는.....여러 소리에서 혼자 살아남다가 다시 여러 소리가 함께 합니다.
키리에가 이어지며 마음이 살아나고 다시 마음이 이어지며 키리에가 이어집니다.
음악만 그럴까요?
미술도 사실은 마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설령 가장 그럴듯하게 보이는 풍경화라 할지라도 풍경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어서
어느 한순간일지라도 완벽히 재현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러니 결국 모든 작품은 작가의 마음을 표현하는 거죠.
나는 25살 까미유는 18살 십 대 소녀였어요.
그녀를 모델로 한 <초록 드레스의 여인>을 며칠 만에 완성해 사람들의 호평을 받았죠.
그녀는 화폭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미어드는 듯 했고
나는 그런 그녀를 받아 적듯이 그렸어요.
<정원의 여인들>은 세 명의 여인들이 나오지만, 모델은 까미유 그녀 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가만히 앉아있어도 아름다웠고 숲을 향해 걸어가는 뒷모습도 내 마음을 앗아갔죠.
누군가와 대화하는 그녀의 옆모습은 그녀가 나의 뮤즈라는 것을 새삼 각인시켜 주었어요.
나중에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꽃을 든 남자는 나고 그녀는 꽃을 받아 든 뒤 깊은 생각에 잠겼고
어두운 숲속으로 달리듯 들어갔죠.
머지않은 미래에 다가오는 죽음을 영접하듯이 말이죠.
그런 우리의 사랑을 아버지께서는 용납하지 않으시더군요.
그녀가 천한 모델 출신이라면서요. 결국, 우리에 대한 지원도 끊으셨죠.
나도 용기가 없어서 그녀와의 교제를 아버지에게 숨기기도 했지만 쟝이 태어났고
쟝이 태어난 후에 그녀와 결혼식을 했어요.
<투루빌의 바닷가에서>는 신혼여행지에서 그린 작품이죠.
그녀는 어디에서나 나의 모델이 되어 줬어요.
생각해보면 <일본 여인(기모노를 입은 카미유)>도 가슴 아픈 작품이네요.
그녀는 그때부터 건강이 썩 좋질 못했는지
일본 부채와 기모노를 입고 서 있는 모습이 창백하고 힘들어 보였어요.
가난 때문에 치욕스러운ㅡ헐값에 작품을 파는ㅡ 시간들이 이어지기도 했지만
그녀를 모델로 하는 작품활동은 거침없이 이어졌죠.
어느 때 부턴지 그녀와의 산책길에 쟝이 동행했고 나는 그런 모자를 자주 그리곤 했어요.
<산책>은 정말 아름다운 그림이죠.
누군가의 부름에 의해 살짝 고개를 돌리는 까미유,
바람은 그런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흩날리며 그녀의 얼굴을 감싸 안았어요.
나를 불렀어요? 왜요?
파라솔 아래 그녀 얼굴은 약간의 그늘과 함께 푸르른 하늘과 두둥실 떠가는 흰구름을 품고 있었죠.
그런 그녀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아파서 누워있는 그녀 곁에서 자행되던 일들을 굳이 기록하지 않겠습니다.
그녀가 그런 관계를 몰라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으거예요.
새로운 연인을 집에 들인 것도, 그녀가 아픈 그녀를 간호해주는 것도,
그런데도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죠. 그녀가 불평이라도 좀 했으면 마음이 편했을 텐데....
그녀가 아픈 후로 나는 별로 사람을 그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생라자르역을 집중해서 그리기 시작했죠.
어느 날 그녀의 방에 들어섰어요. 아침 햇살이 투명하게 그녀를 비추고 있었어요.
그녀가 쟝을 데리고 산책할 때처럼 햇살은 그녀를 환히 비추고 있었어요.
똑같은 빛인데 언덕 위 그녀가 생명을 보여줬다면 방안의 그녀를 눈부시게 비추고 있는 빛은
그녀의 죽음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어요.
나는 클레망소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내게 너무나 소중했던 여인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고, 이제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그 순간 나는 너무나 놀라고 말았습니다. 시시각각 짙어지는 색채의 변화를 본능적으로 추적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언제나처럼 나는 그녀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죽어가고 있었지만, 그녀는 이제 서른두 살입니다.
그 눈부신 젊음 속에서 죽음을 향하고 있는 까미유는 흰 모포에 쌓여,
마치 그 천속으로 스미듯 그렇게 사위어 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아직 살아있었지만 이미 다른 세상으로 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저 투명한 햇살이 색을 드러내듯 그녀의 죽음을 드러내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에밀졸라는 <작품>이란 글에서 주인공 화가 클로드가 죽어버린 아들을 다섯 시간여 그려 낸 장면을 썼습니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난 후 슬며시 미소를 짓는 클로드.
혹시 내가 그린 <까미유의 임종>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게 아닐까,
죽어있는, 이미 시체로 화한 아들을 그려 내는 그 독특한 소재에 정신없이 빠져 있는 화가를
당신은 그저 냉혹한 사람이라고 치부해버리고 말건가요.
나는 친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가엾은 아내는 오랫동안 병으로 괴로워하다가 오늘 아침 열 시 반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외톨이가 된 나를 남겨놓고, 불쌍한 아이들을 남겨놓고. 그저 비탄에 빠져 있을 뿐입니다."
까미유를 그린 작품은 56점입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한참 뒤에 수양딸을 그녀와 거의 같은 포즈로 세워놓고 작품을 했는데 이상하게 얼굴을 그릴 수 없더군요. 까미유에 대한 기억 때문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살아갈수록 선명해지기보다는 흐릿해져 갑니다.
제 그림의 주제도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가 되어가죠.
점점 색과 빛만 남고 흐릿해져 가거든요.
나는 한 주제로 많은 작품을 하곤 했습니다.
루앙 대성당을 수도 없이 그렸고 건초더미에 와닿는 아침과 일몰을 그리고 눈 위의 빛을 그려댔죠.
나중에는 수련에 빠져서 살았습니다.
그림은 나를 살아있게 하는 존재 자체였습니다.
특히 빛과 색은 아무리 바라보고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존재로
색이 빛인지 빛이 색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색은 종일 나를 집착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그리고 고통스럽게 만들곤 했습니다.
침대 위 그녀가 세상을 하직할 시간을 향하여 걸어갈 때
나는 그녀의 마지막 생명을 그렸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빛을 보고
그 빛이 그녀를 비추는 색을 느꼈습니다.
나는 그녀의 생명을 채록하듯
내 마음을 다해 그녀를 그렸습니다.
*모네의 편지 형식으로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