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영 Aug 27. 2020

태풍을 보며

2020 비바

                                        어제 해저물 무렵 걸을 때 저 구름이 바로 내 머리위에 있었다




태풍이 다가오는 것을 두렵게 바라다보았다. 

티비에서 보이는 태풍의 모습은 하얗고 부드러운, 마치 뭉쳐진 구름처럼 보인다. 

먼 우주에서 찍어서 그렇지 실제 태풍의 모습이 저렇지는 않을 것이다. 

셀 수도 없는 개미들, 저 검은 것들이 뭐지? 하다가 보면 개미인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먼 거리에서나 혹은 먼 시간 속에서 선명해진다. 

부모가 사라진 후 어느 순간 그분들이 내게 덧입혀준 사랑이 선명해지는 것처럼, 


먼거리의 형상과 실제는 전혀 다른 것이다.  

태풍 곁의 우리에게 태풍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태풍은 무섭게 존재한다. 

그 무엇이라도 날려버릴 듯이

네가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옳지 않다는 듯이 

거대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처럼 휘몰아쳐 온다. 두렵다.  

형체가 없지만 그러나 너무나 여실한 존재

자연이 주는 혜택 속에서 은총이 무엇인지 감사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다가

가끔 몰아닥치는 자연의 재해 속에서 우리는 속절없다. 무력하다. 

슬프게도 콩만큼 작아져서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러다가 상처를 남기고 무서운 존재가 사라지면 

속절없음. 역시 사라지고 우리는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에 매진한다. 

상처가 치유되면 상처도 사라지고 상처를 준 자연도 잊힌다.   

  

태풍의 눈은 내겐 언제나 외눈박이 퀴클롭스를 떠올리게 한다. 

오디세이가 그 섬에 다다라 당당한 모습으로 신의 이름을 빌려 우리에게 음식을 좀 주시오 할 때

퀴클롭스는 제우스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오디세이의 부하를 두 명 잡아 패대기쳐 저녁 식사로 대신 한다. 

오디세이의 총명은 자신의 이름을 노맨ㅡ 아무도 아닌 사람ㅡ 이라고 짓는 것에 있다. 

눈이 찔린 퀴클롭스는 동료들을 불러모으지만 

누가 너를 그랬어? 물을 때 노맨이라고 하니까, 아무도 아니면 제우스가 하셨네...하며 그들은 사라진다. 

머리를 써서 그를 죽일 수는 있을지라도

어떻게 노맨 이란 이름을 지어내 그 무서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노맨이란 단어가 주는 의미도 심장하다

어쩌면 오디세이는 그 이름을 지으면서 자신에 대한 성찰을 했을까,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러나 배를 타고 떠나면서 퀴클롭스에게 잘난 척을 하고파 하는 그를 보면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가령 태풍이 외눈박이 퀴클롭스라면

우리는 노맨이라는 아무도 아닌....사람이라는 것을 의식해야 되지 않을까,  


문득 인간들이 끊임없이 바벨탑을 쌓아간다면 

우주에서 태풍의 존재를 찍듯이 

어느 순간 영적인 존재들을 형상화해낼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대만에서는 음력 칠월을 귀신의 달로 정해서 물가에 가까이 가지 않는다는데 

염하인 칠월에 물가를 가지 마라니, 

하긴 물가를 많이 가서 사고를 당할것이고 그러니 조심하라는 말도 되겠다. 

하나님 이야기는 흥미롭지 않으면서 귀신 이야기는 재미있다. 

모든 투명한 것, 바른 것, 해야 할 것, 지켜야 할 것들에는 흥미가 없다.

흥미가 얼마나 가벼운 것인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태풍이 사라졌다. 

우리나라에 없으면 사라진거고?

그뿐 아니라 그냥 비 바람 약간 그리고 흐린 구름 등으로 변환되어 사라진다.

어디에 그 무서운 힘이 고여 있었을까, 

마치 무지한 젊음 막지한 젊음처럼 보이기도 한다. 태풍 


           빗줄기는 기기가 좋거나 기술이 좋을 때 잡힌다. 둘다 아닌데 어젯밤 저렇게 빗줄기가 잡혔다 

작가의 이전글 반장선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