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아니 무엇을 갈망하는걸까,
먼데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하는것 같기도 하다.
저 작품속에서 두손을 모은다면.....오히려 모으지 않는 손이 더 간절하다.
모든 간절함에서는 상투성이 없다.
연보랏빛 심플한 의상은 꾸미지 않는 우아함, 스트레챠투라다.
그녀는 모든 여성들에게 혹은 사람들에게 아주 단순한 옷과 색을 입힌다.
더할수 없이 우아하다.
식물 역시 단순 간결하다.
그래서 그녀의 존재에 힘을 더해준다.
조금 우습긴 하지만 작품속 소녀처럼 손을 만들어보았다.
오른손을 쇄골 위에 얹는것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늙은 탓이다.
저 눈빛은 하나만 딱 바라본다.
그려야할 대상.
깊은 생각에 잠긴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올 남김없이 단정하게 묶은 머리도 그녀의 눈빛에 힘을 더한다.
옷의 주름도 섬세하고 그 주름 사이의 빛, 색들도 더할수 없이 세미하지만 옅고 순하다.
자신의 앉은 키보다 더 큰 캔버스도 단순하다.
작은 얼굴과 길고 가느다란 목이 전형적인 미인이다.
목에 비해 굵어보이는 팔과 손은 그녀의 눈빛보다 더 강하다.
이 작품의 가장 강렬한부분은 손과 저 가느다란 붓이다.
마치 마지막 구두점을 여무지게 찍듯이
그녀는 선명하게 팔과 붓에 방점을 찍는다.
선명한 색상의 세필은 그림의 마지막을 완성할것이다.
섬세하고 우아하지만 잡히지 않는 모습으로,
몬세라트 구디올 ㅡ카탈루니아 출신의 여성화가 Montserrat Gudiol (Barcelona, 1933~2015)
아마 그녀 자신일것이다.
캔버스 앞에 앉을 때 마다 저렇게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단촐한 차림으로
마치 기도하듯이 붓을 들고 자신이 그려야 할 맨버스에 창조해낼 대상을 생각하거나 바라볼것이다.
한참 보면 생각보다는 <멍때리는> 눈빛 같기도 하다. 그래야 차오르겠지.
고통 외로움 슬픔이 그득하다.
함께 있어도 외롭고 사랑해도 슬프다.
그러니 허무할수 밖에
그러니 그래서 그래도 살아야 한다.
살아내야만 한다.
우리는 이 맘몬이즘 시대에 알아야 한다.
돈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슬픔과 고독이 사람을 사람답게 한다는 것을,
슬픔과 고독이 만들어내는 진지함으로
이 생이라는 슬픈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는 것을,
조금 앞선 사람의 커다란 고통이
뒷 사람들에게 힘이 된다는 것을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산다는 것을,
함께 해도 외롭고 혼자 있어도 슬프다.
삶은 고통의 향연이다.
사랑할수록 더욱 그러하다.
사랑에 지친 여인일까,
삶이라는 거친 파도에 빠져 갈 바를 모르는 모습이다.
어찌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소리 없는 통곡을 하고 있다.
마치 한나처럼....
그리고 한나의 남편 엘가나처럼 사람들은 그녀의 주위로 다가오지만
그들 역시 자신의 삶 속에서 여력 없는 모습이다.
누가 누구를 위로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한 여자의 고통, 내밀한 슬픔을 기억하며 처음 스케치를 했을것이고
고개를 약간 숙이고 손을 가슴에 올린 그녀의 모습을 그린 뒤
자신의 슬픔속에 존재하는 타인들을 불러 왔을 것이다.
슬픔 고통 외로움들이 사람들을 빛나게 한다 그런데도 그들 얼굴에는 후광이 있고 등에서는 아우라가 빛난다.
고통과 슬픔, 외로움이 그들 속에 가득할수록 그들은 빛난다.
우수와 서러움, 신산이 있어 더욱 그들은 빛난다.
그리하여 사라질 것처럼 흐릿함 속에 서있지만 분명하게 존재한다.
그녀는 어둠속에 거의 잠겨있다.
세상을 향하여 눈조차 감았다.
창밖은 눈부신 시간이다.
꽃이 피어나는 시간 같기도 하다.
겨울 같은 어둠과 고통 속에 있던 그녀는 무슨 소리인가를 들었다.
그녀는 창가 쪽으로 왔다.
분홍 세상, 환함이 주는 슬픔을 그녀는 이미 맛보았다.
그래서 그녀는 차라리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 손을 가슴에 얹으며 그 환함을 기억해낸다.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이는 것들이 무수하게 많다는 것을 그녀는 안다.
카탈루냐의 그림 애호가들은 그녀의 작품을 선호했다.
정부 관리에게로 보낼 그림이었을까?
카탈루냐 사람들은 지금도 카탈루냐는 스페인이 아니다며 독립을 외친다고 한다.
창틀에 살짝 보이는 카탈루냐 문양이 선명하다. 앞핀에서 저절로 미소가 나온다.
저 색은, 빛은, 신비롭다.
Gudiol은 중세 미술품을 복원하는 집에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미술적인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그래서 그녀는 회반죽과 나무판에 여러 겹으로 색을 입히는 고전 회화기법을 사용했다.
그녀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작품을 시작하고
무의식적으로 그림이 되어지고 다시 또 그림이 그림을 불러온다고....했다.
여인의 선명한 발 하나가 주는 단호함과 조화로움.(발이 두 개 나와 있다면....)
색속으로 슬며시 사라지는 형체가 주는 아련함,
그러니 흐릿함은 어떤 선명함보다 더욱 선명하다.
음악과 미술이 어우러지는 예술적이고 자유로운 환경속에서 자라난 그녀는
평생 영원한 아름다움을 추구했으며 영적이면서 내적 깊이를 지닌 그녀만의 독특한 경지를 만들어냈다.
아이는 웃고 있지는 않지만 그 표정은 생기발랄하며 호기심이 가득하다.
금방이라도 가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엄마 품을 빠져 나갈 것 같다.
엄마는 자신에게 혹은 그 누구에게 단호한 어조로 말하는것 같다.
나는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이 아이를 훌륭하게 잘 키울거예요.
실제 그녀는 이혼하고 여섯 아이를 혼자 키우노라 아주 열심히 작품활동을 했다고 한다.
무엇을 더하고 덜할 수 있을까,
그녀의 작품을 보며 그 단순함 속에 배인 수많은 결들이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 여인은 말하고
한 여인은 듣고 있다.
그러나 둘 다 자신의 생만을 생각하고 있다.
우리 모두 처럼 . 피카소의 청색시대를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눈빛도 보이지 않는데
어딘지도 알수 없는데
저들의 헤어짐이 내 가슴을 아리게 한다.
고색창연한 몬세라트 수도원에 있는 지극히 현대적인 그녀의 작품
베네딕토 성인 탄생 1500주년 기념으로 몬세라트 수도원이 몬세라트 구디올에게게 의뢰했다.
베네딕트 修士복을 입은 아들을 모델로 했다고 하는데
여성인지 남성인지 성이 모호해 보이는 작품이 오히려 성인의 깊은 영성을 나타내주고 있다
양손으로 잡은 노란 책은 베네딕토회 규범책 (Rule of Saint Benedict)오래된 수도원에 걸려있을 구디올의 작품이 정말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