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현대 미술관 앞에서 배롱나무를 보았다.
넓고 우아한 모습으로 가지를 펼친 잘생긴 나무다.
문득 궁금해졌다. 궁이라는 터에 잘 태어난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손길로 잘 자라난 것일까,
이파리가 무수히 지고 있는데 그 사이에서 피어난 꽃 두어 송이가 각별하다.
1920년 생 박래현 전시회다.
엄마보다 겨우 다섯 살 윈데 56살에 세상을 떠났다. 나보다 훨씬 젊은 나이다.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얼마나 많은 작품을 세상에 남겼을까, 아깝다.
가끔 죽음 앞에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추구하는 善인 공평이 뿌리 없는 나무란 것을 알게 된다.
어떤 사람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 아쉽고
엄마는 큰오빠 떠나신 뒤 생명이 긴 것을 얼마나 한탄하셨던가,
이젠 ‘금방’ ‘스윽’이 없는 시대다.
어디서든 머뭇거리며 열을 재야 하고 큐알 코드를 내밀어야 한다.
사람 곁에 가까이 다가서서도 안 된다.
그러잖아도 조용한 미술관에서 고즈넉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이 다 좋거나 모두 다 나쁘지만은 않다.
박래현은 1920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부유한 대지주의 장녀로 태어나 군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전주 공립 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 여자고등사범학교에 진학한 뒤 미술에 대한 꿈을 키웠다.
1939년 도쿄로 건너가 이듬해 여자미술전문학교 사범과 일본화에 입학했다. 그리고 4학년 재학 중에 조선 미술 전람회에서 총독 상을 받는다.
<단장>
그 작품인 <단장>이 전시회 입구에 걸려 있다.
간결한 묘사 속에서 힘이 느껴진다. 글
도 자신이 없을 때 너스레가 만발한다.
단순한 구도는 자신감이다.
빨강색의 경대와 검은색 옷의 대비, 물아를 대비시키며 스미듯 표현된 몸에 비해 눈빛은 선명하다.
그 눈빛이 박래현 자신의 삶을 또렷하게 바라보고 가겠다는 결기로도 읽힌다.
그러면서도 섬세한 묘사를 놓치지 않는다.
화장솔과 손목과 팔뚝 사이로 내비치는 흰색의 레이스 그리고 뒤에서 살짝 엿보이는 연두색의 허리끈,
이미 박래현의 기본기가 탄탄하게 내재 되어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박래현은 이 시상식을 위해 귀국했다가 김기창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삼 년 뒤 이들은 결혼한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청각 장애인 화가와 재원인 일본 유학생 부잣집 딸과의 결혼이 평탄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은 드라마처럼 빤한 이야기다.
사랑도 강렬했을 것이고 그보다는 박래현의 단단한 마음이 맺은 결실이었을 것이다. 망설이는 김기창에게 화가로 살게만 해준다면....프로포즈를 먼저 했다는 설도 있다.
<봄C>
실제로 '봄C'는 부부가 합작을 한 작품인데 연보랏빛 등나무 꽃이 봄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새들이 나무 사이로 날아온다.
등나무 둥치는 힘차고 강렬하다.
사람들은 얼핏 새를 박래현이 나무둥치를 김기창이 그렸을 것으로 오인하나 그 반대다.
만일 여인만의 나라가 온다면...이란 앙케트에 박래현은 꿈속의 일이겠지만 이란 단서를 달아서 답을 한다.
지금까지 해오던 가사를 위탁하고 싶다고,
<아침 6시쯤 일어나 기저귀 빨기, 밥 짓기, 청소하기,
아침 식사가 끝나면 이것저것 치우고 닭의 치다꺼리, 아기 보기,
정오면 점심 먹고 손이 오면 몇 시간 허비하고 저녁 먹고 곤해서 좀 쉬는 동안에 잠이 들면 자,
그러면 본업인 그림은 언제 그리나>
1948년 결혼과 생활이란 잡지에 박래현이 쓴 글이다.
그녀의 본업이란 단어에 오래 마음이 갔다.
그는 가정과 예술의 완전한 양립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했던 토로했지만
1956년 넷째 딸을 낳은 해에 ‘대한 미협전’에서 <이른 아침>으로 ‘대한민국 미술전’에서 <노점>으로 각각 대통령상을 받았다.
1948년부터 1971년까지 12회의 부부전을 개최하였고 중진 동양화가들과 백양회를 결성하여 동양화단을 이끌었다.
1961년에는 첫 해외여행을 64-65년도에는 뉴욕에서 부부전시회를 개최하고 이어서 세계여행을 하게 된다.
브라질, 멕시코등 남미의 여러 나라를 방문하며 새로운 문화에 눈을 뜨게 된다. 동양화의 추상을 넘어서서 판화 도자기와 테피리스 까지 그녀의 영역은 확장되어 갔다.
그의 <이른 아침> 속 여인들은 이른 아침부터 팔아야 할 물건을 이고 장으로 나선다.
그들의 눈빛은 결연하다 못해 사나워 보이고 그녀들이 걸어야 할 길이 만만하지 않아선지 표정은 단호하다.
함지박에 손을 대지 않고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의 삶은 단련되어 있다.
빈손은 없다. 새댁은 아이를 업고 있고 한 손으로는 조금 큰아이를 붙잡고 있다.
업힌 아이는 하늘을 보며 버둥거리고 그의 형은 어미의 손에 끌리듯 따라온다.
가장 나이든 여인네의 함지박에는 분홍 꽃이 몇 가지 담겨 있는데 그 휘어진 모양이 박래현의 삶처럼 보였다.
분홍 꽃가지는 아름다우나 슬프고 결의에 차 있으나 고독하다.
그림의 색상은 담박하고 선은 간결하면서도 섬세하다.
아비뇽의 처녀들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박래현의 작품은 오직 박래현의 것이다. 직접 작품을 대한다는 것은 스피커로 듣는 음악과 콘서트장의 차이 이상이다.
<노점>
그의 <노점>을 보면서 경이로움이라는 블랙홀속으로 빠져 갔다.
팔과 목 어깨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여인네들의 입성은 세련되어서 마치 현대 유럽의 어느 골목 같다.
키는 크고 가늘며 목은 길다.
리어카에서 무엇인가를 팔고 있는 여인은 아예 꿈을 꾸듯 팔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다.
검은 살결과 흰 눈썹과 입술이라니,
맨 앞의 여인 허리춤에 살짝 걸려 있는 커다란 돈지갑,
사실을 벗어나 있는 팔과 손목, 손들이 주는 깊은 리얼리티가 찬란하다.
그녀들 중 어느 누구도 안락한 건물을 향해 있지 않다.
그녀들은 건물을 벗어났고 길 위에 있었고 그래서 그녀들은 자유롭다.
그들이 지금 팔고 있는 것은 자그마한 수다와 꿈, 책임과 함께 기다림이 아닌가,
결국 그들이 파는 것은 우리가 사야 할 생인 것이다.
육십 살도 훨씬 넘은 작품 앞에서 문득 든 생각,
나는 사라지고 바스러져도 그대는 더욱 싱싱해질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매번 그대 앞에서 다시 놀랄 것이다.
나무가 매해 새로운 청년이 되듯 그대는 순간마다 사람들 앞에서 봄처럼 새로워 질것이다.
그대의 이름은 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