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수아 레이놀즈
코로나 19 팬더믹 상황은 지리멸렬하게 여겼던 사소한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해주었다.
식사 한번 하시죠. 차 한잔해요. 가 이리 어려운 일이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텔레비전에서 군중들이 모여 떼창을 부르는 화면들이 아득한 옛날 일인 듯싶다.
그러나 불행한 일 가운데서도 섭리를 찾는 믿음의 안목이 우리에게는 있지 않던가,
사람들은 거의가 다 강하고자 해서 힘을 기르고 권력을 쟁취하며 부를 소유하려 하지만
크리스챤은 그것들이 풀꽃 하나가 입은 영광만도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는 데에 그 힘이 있다.
코비드19라는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세계를 제패하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연약함을 깨닫는 시간, 그래서 삶과 죽음을 성찰하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맘모니즘이 살짝 스톱하는 계기가 되었을 듯도 싶다.
바벨탑을 지으며 의기양양하던 니므롯 왕의 원대한 계획을 하나님께서는 먼지처럼 흩으셨다.
조금 더 깊게 바라보면 자신의 이름을 내고자 했던 사람의 교만을 심판하신 것이다.
교만은 하나님께도 악이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악이다.
겸손은 삶의 중요한 스킬이며 어쩌면 평생을 두고 추구해야 할 삶의 목표이기도 하다.
많으면 많을수록 겸손해야 하고
설령 지닌 것이 없다 할지라도 더욱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겸손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나치게 풍성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자칫하면 이 사소한 부요함이 니므롯 왕의 바벨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시간이 되길,
기도는 겸손의 지극한 모습이다.
내 아이들과 교인들을 위해 나라를 위해 오늘도 무사히....기도하는데 이 그림이 생각났다.
어릴 때 버스를 타면 거의 모든 버스 운전사 앞자리마다
어여쁜 서양 소녀가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액자가 걸려 있었다.
그때만 해도 운전이 낯선 것이면서 위험하다는 생각을 모든 사람이 할 때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기도하는 아이,
마치 자신들의 아이라도 되듯이,
그 아이가 진심으로 자신을 위해 기도하듯이 액자를 붙이고 다녔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소녀는 소년이다.
조슈아 레이놀즈의 <어린 사무엘>
레이놀즈는 18세기 영국 미술계를 이끈 최고의 초상화가이자 교육자였다.
1768년, 영국 왕립미술학교가 설립됐을 때부터 초대원장을 맡았던 레이놀즈는
화가로서는 드물게 조지 3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 받는다.
고전적인 걸작을 모사하며 작품의 길로 들어선 레이놀즈는 초상화를 많이 그렸는데
우아하고 품격있게 그려진 그의 작품은 지금 봐도 지나치게 미화되지 않았을까,
의구심을 자아내는 작품들이 있다.
불행히도 한쪽 눈의 시력을 잃게 되었고 다른 눈도 시력이 나빠져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지만 무려 24년간 왕림미술학교의 원장직을 수행했고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장례식은 치러졌다.
사무엘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뜻이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마음이 슬픈 여인 하나는 비통한 마음으로 오랜 시간 기도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슬픈 여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얻게 된 아들이 사무엘이다.
젖을 뗀 후에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서 주셨으매 여호와께 드린다며 어린 사무엘을 성전에 바친다.
사무엘을 바친후 드리는 한나의 기도는 강하고 아름다우며 매우 지적이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무섭기도 하다.
성전에서 자라던 사무엘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들렸다.
엘리에게로 달려가는 사무엘, 세 번째서야 엘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한 것을 알고 그에게 말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이 작품은 바로 그 찰라이다.
편안한 잠옷을 입고 성전에서 자다가 자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는 사무엘!
이게 무슨 일이지? 내게 하나님이 말씀을 하신다니.....
무릎은 저절로 굽혀져 있고 살짝 보이는 발가락은 경직된 채 들려있다.
입술은 조금 벌려져 있고 꼭 맞잡은 두 손은 경건한 기도의 자세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사무엘의 눈을 보라.
사무엘은 너무나 놀랍고 경이로워서 커다란 눈을 더욱 크게 뜨고 있다.
듣겠습니다.
보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어리지만 주를 향한 담대한 결단이 보이는 눈이다.
평생 주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예언자로서의 사무엘의 결기가 보이는 눈빛이다.
어두움 가운데서 어둠을 가르는 거룩한 광명이 비치고 있다.
빛으로 말씀으로 표현되신 주님이 사무엘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어린 사무엘은 지금 말씀을 경청하고 있다.
한 해가 코로나로 시작되어 코로나로 저물어 가고 있다.
끝과 시작을 준비하는 이 고달픈 시절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어린 사무엘>이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지 않은가, (교계신문 연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