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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Nov 04. 2020

편지

안반데기에서 쓴

풍경 속에서 그대가 생각났다 하더라도 그 즉시 그 자리에서 편지를 쓸 수는 없습니다. 

밤이 깊어서야 편지는 쓸 수 있는거죠.  

그래서 편지는 마음속 웃물 같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일렁이던 것들이 서서히 가라앉은 후 생기는 맑은 물요.     

안반데기를 아시는지요?

화전민이 고루포기 산의 능선을 개간한 곳이 안반데기의 시작이었는데 

강원도의 안반은 약간 우묵한 느낌이 있어서 이곳 지형을 안반데기라고 불렀다는군요. 

구불거리는 산길을 한참 오르고 나면 갑자기 넓은 땅이 펼쳐지면서

마치 어느 순간에 허공에서 내려앉듯이 빈공간이 나타나는데,

하늘로 가득찬 공간이라고 해야할까,  

광활해선지 순간, 공간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여겨지더군요.  

바람이 하 거침없이 오가서 마치 하늘도 바람처럼 보이던 곳, 

고랭지 배추가 다 뽑혀버린 땅은 황무해서 벌써 쓸쓸한 겨울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무정한 풍경이었죠. 

어쩌면 저 그늘 한 줌 없는 하늘 아래서 비탈진 땅에 균형을 잡노라 더욱 힘들었을 

농부들의 진땀을 품고 있다가 이제야 내뿜고 있을지도...... 

거대한 풍력 발전기들이 돌면서 내는 날카롭고 음산한 소리가

안반데기를 더욱 무정하게 만들어주고 있었어요.    

어제 묵었던 호텔은 입구에 숲이 없어서, 아니 시골 땅에 호텔을 지으면서 어떻게 이리 지었을까,

생각했는데 호텔 뒤로 괘나 큰 양을 키우는 목장 숲이 있더군요. 

산책 삼아 올라갔더니 완전 방목은 아니지만 

자유로워 보이던 염소와 알파카 그리고 양들이 놀고 있었어요. 

알파카 우리 앞에는 알파카가 침을 뱉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적혀 있더군요.

저절로 웃음이 나왔어요. 

니들이 침을 뱉는다는 말이지, 니들의 침에도 멸시의 뜻이 있는 거니?

그러다가 보게 됐어요. 

사육사가 아주 작은 양 새끼를 데리고 오는 것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몸짓으로 어미가 뒤뚱거리며 사육사, 아니 자기 새끼를 따라오고 있었어요.

산모와 아기들만 있는 장소가 따로 있더군요.

양 어미처럼  나도 졸래졸래 따라갔어요.

부드러운 풀밭에 새끼를 누이니 어미가 새끼를 핥기 시작하더군요.

얼굴이 깨끗해지고 귀가 살아나고 양 새끼가 막 너무너무 예뻐지는 거예요.

그러다가 새끼 양 주변을 발로 몇 번씩 차는 거예요. 

사육사가 그러더군요. 

어서 일어나라는 사인이라고,

세상에....

그 때마다 새끼도 반응을 하는 거예요.

비칠거리며 일어나려고 애를 쓰다가 다시 쓰러지고 

어미는 핥아주다 다시 또 차고 새끼는 또 일어나려고 애를 쓰고

엄마는 사랑으로 핥어주며 격려하면서 일어나, 어서 일어나야해,  말하고

새끼는 그 어미의 뜻에 따라 일어나려다가 엄마 아직은 안돼, 하면서 쓰러지고 

어미는 그래 힘들지 하며 다시 핥기 시작하고 

스무번 설흔 번이나 했을까요?

결국 새끼는 자신의 두 발로 섰습니다. 

그들의 그 말 없는 행위 들이 얼마나 위대해 보이던지.....

어린 양 예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왜 양으로 비유했는지......그 뜻을 확연히 알 수 있었습니다.        

늦가을의 투명한 햇살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에 가본 강릉 시내의 인상이 다르더군요. 

바닷가 쪽으로 드문드문 솟아 있는 희디흰 건물들이 

생뚱맞기보다는 조화로워 보이고 청결해 보였습니다. 

동해바닷가에 있는 그것도 북쪽으로 치우쳐 있는 한적한 동네가 

시골이라기보다는 그리스의 산토리니섬처럼 그만의 색을 지닌 아담한 휴양도시처럼 멋져 보였어요. 

바닷가 카페에서 바라본 짙푸르고 맑은 동해물은 조금 세찬 바람에 

희디흰 포말을 몰고 와서- 사라지고 다시 또 몰고 오더니 사라지고....

그렇죠, 

저절로 유한한 인생살이의 한 단면을 생각게 하더니

그러면서도 반복되며 사라지는 모습에 덧없는 삶이 연상되기도 햇습니다. .                 

안반데기, 

어미양과 양의 새끼,

흰포말을 빚어내는 푸르른 바닷가.   

풍경은 대단한 힘을 가진 존재입니다. 

마음을 극한으로 몰기도, 

서정적으로 만들어서 헤매게 하기도 하죠. 

기억의 갈피를 헤집거나 오래전 잊었다고 생각했던 상처를 들춰내기도 하지요. 

풍경 속에서 세상을 떠난 그대가 생각났습니다. 

그대의 안부를 묻습니다. 

잘 계시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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