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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Nov 07. 2020

마틴 에덴

 


영화를 왜 보는가? 

사람마다 이유가 다르겠지만 내겐 ‘새로움’과의 만남이 가장 크다.

낯선 풍경과 낯선 사람과 .  

낯선 역사도 있고 낯선 풍물등 낯선 관계들은 매우 흥미롭다 

내가 알지 못하는 무수한 것들이 거기 존재해 있다.

두시간 여.... 나는 나를 잊고 영화 속으로 들어간다.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조연이 되기도 하며

가끔은 그곳 풍경 속에서 거닐기도 한다.     

어제 아침 영화관엘 가면서 새삼 동네 가로수들의 아름다움에 놀랐다.

깊은 가을이 거기 나무들 ㅡ벚나무 은행나무 회화나무 플라타너스 그리고 가끔 대왕참나무들ㅡ

사이로 포옥 내려와 있었다. 

마치 집에 돌아와서야 발견하게 되는 파랑새처럼

많지 않은 종류지만 그들이 빚어내는 가을의 향연은 찬란했다.

생각해보면 새롭지 않은 시간이 어디 있으랴,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변하고 있고 나 역시 그들과 함께 변하고 있다.

그러니 나는 매 순간 새로움 속에 있는 것이다.

굳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풍경이나 현대 예술이 아니더라도,    

일산에서 가장 새 영화관일 것이다. 벨라시타는,  

의자도 좋고 영화관 입구의 분위기도 좋다. 

친한 벗은 이미 와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늙어만 가는 우리 부부의 작은 모토 중의 하나는

‘혼자서도 잘 놀고 둘이서도 잘 놀자’이다. 

영화 역시 혼자도 좋지만 둘도 좋다.    

마틴 에덴, 

스토리가 있어서 즐길 준비를 했는데 스토리는 오히려 곁다리이고

영화의 문법이 난해했다. 

오래전 노래니까 구성지다고 표현해볼까, 그런 노래들이 가끔 흘러나오는데

시간도 좀 오래전으로 타자기 소리가 반복되는데

화면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서 자주 자리를 고쳐 앉았다.     

저 장면은 뭐지? 흠... 무슨 의미지? 

아 혹시 흑백 화면은 

주인공 작가의 머릿속 상상 혹은 과거로 글의 소재인가? 

아니면 주인공이 지금 쓰고 있는 글을 저리 나타내는 건가? 

과거의 화면을 가져온 것은 이 감독이 타큐감독이라서 저리 사용하는겐가?  

저 다리 저는 아이의 걷는 모습은?

(어느 평론가는 이 대목을 구체적인 년표가 부재한 상태에서 

이름 없는 이미지들을 불러왔다고 썼다. 역시 평론가들이란)

혹시 이 영화는 개인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사회에 대한 담론을 품고 있는 건가?

사회주의는,

나는 요즈음 우리나라를 보면서 약간의 사회주의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고 있는데

극단적으로 치솟는 빈부격차를 해소할 방법은 사회주의가 답이 아닐까? 라고도 생각하는데 

사실 주인공과 로스는 사회주의를 하면 여전히 그 안에서 새로운 조합원 몇이

더 간교하게 노동자의 몫을 차지할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선지 주인공과 주인공을 처음 알아봐 준 로스는 끝없이 개인을 이야기하는데....     

<그리하여 세상은 나보다 강하다 그 힘에 맞서 내가 가진 건 나 자신 뿐이지만 다수에 짓눌리지 않는 한 나 역시 하나의 힘이며 내 글의 힘으로 세상에 맞설 수 있는 한 내 힘은 가공할만하다>

영화의 첫머리에서 테이프를 누르고 마틴이 담배연기와  함께 녹음을 한다.

생각해보니 이 짧은 문장 속에 영화의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그는 정말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생을 꾸려왔다.

그것도 금방 배울 수 있는 몸으로 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스 철학이 왕성한 이유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노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예 덕분에 오직 사유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따라서 문화와 지식에서 나오는 수입 일부는 노예와 하인에게 돌아가야 한다>

고 마틴은 외친다. 

이런 아름다운 개인에 대한 숭배라니,

공동체에 대한 선명한 인식이라니,    

영화적인 복선 하나는 

감독은 이런 복선을 우습게 여기는지 거의 없었는데 

로스가 성경책 속에 총을 넣어놓고 

아 성경책? 하며 마틴이 보려고 하자 못 만지게 하는 대목, 그 총으로 로스는 자살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리도 사랑했던 여인이 돌아오면 오직 그 감정에 취해서 사랑에 젖을 텐데, 

내가 성공하지 않았으면 네가 돌아 올까? 하며 

다시 고독의 길로 나서던 마틴,

하긴 그가 얻은 수많은 재물도 그의 삶을 안락하게 만들어주지 못했다.    

이 영화의 아름다움을 굳이 찾으라면, 

감독은 아름다움 같은 것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어 보이지만, 

마틴의 글을 향한 꿈은 등롱이고 

글을 향해 가는 길에 있는 흙처럼 존재하던 인내와 절망이다.     

낮설게 하기에 성공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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