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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Nov 18. 2020

제주, 면형의 집



아, 저기네, 

가끔 찾아가는 곳을 나무로 먼저 알아보곤 한다. 

면형의 집도 그랬다. 

서귀포시 서흥동 골목을 돌아 어딘가..... 하며 주춤주춤 차를 몰다가 

아 저기네, 

커다란 나무가 있었고 여기야 하며 차를 주차 했다. 

아침이라선지 사람들 몇이 나무 아래 서 있었다. 녹낭구.

키두 키지만 가지 하나가 앞으로 솟아나와서 휘었는데 

천방지축 중2처럼 지 맘대로 어미품을 벗어나 자라나다가

아, 이게 아니지 하며 하늘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창의력 있는 아이의 단단한 머릿속처럼 실하기 그지없다. 


왜, 오래 산, 그래서 커다란 나무 앞에 서면 이리 좋은가, 

사랑하는 이여~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가, 

므훗한가, 기쁜가, 즐거운가, 설레는가,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생기는가,

숭고다. 

나는 나무에 대한 내 마음을 한단어로 표현하라면 숭고 밖에 없다. 

물론 세상에 커다랗고 아름답고 섬세해서 혹하게 하는 것들은 무수히 많다. 

아주 작은 제비꽃, 그들도 살아남기 위하여 자가수정을 하는 폐쇄화,

자연의 풍경도 아름다운 건물도 광활한 하늘도 별은 어떤가....

너무 무한한 시간은 잡히질 않아서 요원하다.

그러나 나무는 면형의 집 녹나무는 이백여 년 자라났다. 

그러니까, 에밀타케 신부가 1902년 제주에 있었으니 그를 바라봤을 게 아닌가, 

그런 관계가 나무가 지닌 매혹의 하나이다. 

무엇이든 바라보면서 같이 살아내는 것, 

침묵 속에 그들을 들어내는 것, 

에밀 타케 신부가 그 오래전 이곳에 와서 자신이 즐겨 마시던 

커피와 빵냄새를 얼마나 그리워 했을것인가,

우리가 외국 가서 하루만 지나도 그리운 김치와 밥들처럼,

더군다나 그는 식물학자였다. 

왕벚나무가 우리나라가 본토이고 제주도 땅에 온주밀감을 들여와 

밀감으로 제주도 땅을 먹여 살릴 수 있었던 사람, 

그 온주밀감의 효시가 작년에 전사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나무로 만든 홍로의 맥

우리 동네도 죽음으로 안국습지를 지켜낸 목련나무가 있다.

그 나무를 솟대로 만들었는데 태풍에 스러지고,


첫 느낌은 그저 그랬다. 

그런데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은 그 녹낭구 아래의 작은 연못이 비춰내고 있는 여러 각도의 반영이

크지도 작지도 않는 정원의 나무들이 

유별나게 낮은 돌담과 이웃들의 모습이 

그 이웃 돌담들에 그려진 벽화 그림과 이해인의 시들이

난타나는 자기집이라는 듯 번성해있고

그리고 정원 한가운데 나무ㅡ 구골목서가 자리하고 있었고 

세상에 꽃이 한가득 피어나 있었다. 

그 아래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의자 두 개,

그 의자에 앉았는데 그 향기가 어떠했을까, 

내 마음은 어떠 했을까?

나도 내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향기 아래서 꽃 아래서 정처없는 마음을,

모든 아름다움은 정처없는 것과 통하는건가,


면형은 낯설어서 검색해봤다.

국수면과 형태 형인데 밀떡이 성체로 바뀐 후에도 그 모양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겉모양을 이르는 말.


나무에 결박해 놓은 시계를 보며 생각했다. 

처음에는 버리기 아까운 마음,

혹은 장난스러운 시도,

시간을 포획?

포획이 되겠니?시간에 대한 생각이라도 하렴,  


                                 이 거대한 구골목서의 향기 아래서 美치는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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