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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Nov 26. 2020

<안티고네>


예매했던 표ㅡ 안티고네와 내가 죽던날ㅡ를 주면서 안티고네 포스터를 주었다.

명필름아트만의 서비스.

나의 최애장소다.

고양시민은 이천 원 할인, 영화 값도 그래서 칠천 원이다.

한적한 주변과 시원스런 건물들, 

사실 건물색은, 노랑에 가까운 미색이라고나 할까, 

썩 마음에 들지 않아서 혼자 다른 색을 넣어보곤 하는데 그러면 그 색이 괜찮아진다.   

포스터를 받으면서 살짝 귀찮았는데 영화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져 화장실에 붙였다. 

나의 화장실은 나의 갤러리다.

예쁜 엽서 복사된 그림등...재작년 대만 미술관에서 받은 제법 커다란 포스터...등등 

아주 정말 정신없이 잡다하게 화장실 문이나 벽에 붙어있다.

우리 집은 벽이 없다. 온통 책꽂이들이 벽을 조그마한 틈도 없이 다 덮고 있다.

살림은 매우 미니멀하게 잘 하고 있는데

저 책들은 정말 문제다.

버리려고 책 제목을 읽다 보면 내 책은 버리기 싫고 남편 책은 버리고 싶다.

큰일이다.  

그런 내게도 붙이고 싶은 욕구가 있나보다. 

가끔 버리고 싶지 않은 것들이 생기면 무조건 화장실에 붙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화장실은 좀 정신이 없어도 괜찮은 구역이다. 

중요한 일을 보면서도 좀 멍한 상태니, 물론 책을 읽어도 되긴 하지만, 

여튼 멍 때리며 감상한다.               

토요일 주일만 하는 영화관이라 목요일쯤 영화표 시간이 온다.

누구랑 같이 가볼까 하다가

누가 영화를 네 시간이나 내리 봐, 싶어서 혼자 갔다.

사실 혼자가 좋다. 

혼자 영화를 보러 가면 몸무게가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동네를 조금만 벗어나면 자유로다. 자유롭다. 

혼자 운전할 때는 겁나 음악을 크게 튼다.

그래서 사람들이 야호 소리를 지르나 보다.

커다란 음악들 속에 어리는 자유.

표를 받고 일 층의 카페로 간다. 커피도 천원 할인해서 삼천 원,

심플한 카페, 역시 맘에 들고 커피 두 종류 중 언제나 학림을 마신다.

향기가 진하고 콩의 등급으로 치면 중상이다. 

일찍 와서 영화 시작 까지 사십여분 남았다. 

파우스트를 다시 읽었는데, 

예전에 읽은 것은 독서가 아니다.

파우스트는 완전 처음 본 책이다.   

내 생전 이렇게 주석을 찾아가면서 읽는 책은 첨이다. 

참 잼있다. 

메피스토텔레스가 너무나 잼있다. 

유머는 가득하고 거기다 인간적이고 

여성을 바라볼 때 취향이 남다르다. 

파우스트가 넋이 나간 헬레네는 메피의 취향이 아니다.

 그런 대목이 메피의 성향을 보여주고 괴테의 그 섬세함과 글의 구조를 느끼게 하니, 

 이 얼마나 재미나겠는가,   

근데 문제는 

줄을 치고 그 페이지를 넘어서면  느낌만 아련하고 문장들이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다시 줄친 부분을 카페에서 읽기 시작한다.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는가, 

시간이 있어 건강이 있어 책을 즐기는 마음이 있어 영화를 기다리는 이 시간

얼굴은 쳐져가고 주름은 늘어가며 눈꼬리가 쳐저셔 눈이 작아져도

이런 내적 즐거움이 있으니 혼자 즐거울 수 있더라.

남이 모르는 즐거움이 더 옴팍하니....좋더라.      

그리고 안티고네가 시작됐다. 

소포클래스의 비극대로 오빠 이름도 남자 친구(비극에서는 약혼자)이름도 다 같다.

캐나다로 옮겨온 난민이다. 

어딘지 모르지만 그들의 조국은 사람을 죽여서 천에 둘둘 말아 대문 앞에 버려둬도 되는 나라다,

안티고네의 부모는 그렇게 죽고 아들 둘 딸 둘과 늙은 할머니가 캐나다에서 살게 된다.

아무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오빠들은 갱단에 들어서게 되고

큰오빠는 죽고 작은 오빠는 잡혀서 추방되게 된다. 

영화 보는 내내 전개가 쉬 상상이 안되어서 매우 집중하게 되었고 영화 보는 즐거움이 컸다.

이러네 저러네 별 이야기를 해도 스토리는 영화에서 굳건한 주춧돌이자 기둥이다.

상상이 안되는 부분을 가격할 것, 

소포클래스의 비극이 지금까지도 회자 되는 것은

큰 것과 작은 것의 대립이기 때문이다.

나라와 가족, 

어쩌면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인 가족은 우리에게 그 어떤 것보다 크다. , 

도덕보다 사회의 어떤 법보다 우리를 눈물짓게 하는 것이 또 가정이기도 하다. 

자신의 미래를 던지며 오빠의 추방을 막기 위한 행동,

평범한 언니와 말도 잘 못하는 할머니, 총명하면서도 결단력있게 행동하는 안티고네,  

사랑이라는 닳은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원초적인 사람들이  

신선한 재료라면 그것들을 잘 버무려 맛깔나게 만든 영화다. 

흑인의 목을 누르던 미국의 형사가 오버랩 되고  

SNS 시대의 '연대'가 즐거운 유희처럼 펼쳐지며

안티고네의 울타리가 되어준다.  

현실을 떠나지 않는 결말이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으니 해피앤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안티고네의 뜻은 "꺾이지 않는""거슬러 걷는 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안티고네의 안티도 생각해본다. 

                

(내가 죽던 날은 

뭐 있어, 있다구, 정말이야 있다니까! 

손짓을 하도 열심히 해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가다가

여기야, 하고 보니 우리 집 마당 같은 느낌) 

 

                           아버지이자 오빠인 오이디푸스와 함께 테베를 떠나는 안티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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