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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ul 21. 2016

백두산

고구려 유적지

약간 가파른 언덕..오르막길을 조금 올랐는데 어느 순간  내 앞에 푸르른 천지가 나타났다.

그 짙은 푸름이라니.. 그 흔들림 없는 정적이라니...

아마도 물체에 신령함이 있다면 정말 천지는 신령 그 자체였다.  

호흡이 정지되는 숭고의 극점.....

한병철은 <아름다움의 구원>에서 기억은 미의 정수라고 했다. 

‘기억’의 ‘있었음’이 미의 본질.  

“미는 순간적인 광휘가 아니라 나중에야 나타나는 고요한 빛이다. 이런 신중함 덕분에 미는 품위를 지니게 된다. 사물들은 우회로를 거쳐 사후에야 비로소 그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그 향기로운 정수를 드러낸다.  미는 재회로서, 재인식으로서 일어난다. 천천히 스며드는 아름다움이 가장 고상한 종류의 미다.” (존재의 아름다움 110p) 

이글을 읽으며 천지 생각이 났는데  

‘천지를 기억’해보면 심히 맞는 말이다. 

기억속의 천지는 어쩌면 실재의 내가 만났던 천지보다 더 성장해 있을지도 모른다.

나무로 친다면 무성한 가지와 이파리 가득 돋아난 오란비 시간의 나무.  

내 삶의 곤고한 그늘과 어둑신한 그림자들과 연합하여  더욱 아름다운 존재.

하늘을 품은 그 푸름, 그 블루를 생각해보면  ...

그랑블루의 바다...속 

이브클라인... 형체를 제거함으로 색의 공간을 창조한 그의 어두운 블루.....

블루에 탐닉한 수많은 작가들 아마도  천지의 물빛을 보고난 이후일거야. 

단언컨대, 그 무슨 연결되지 않는 논리인고,     


십육 년 만에 다시 가는 백두산 길

직선 길은 갈 수 없어 다른 나라로 돌아가니 짧은 비행시간임에도 여전히 멀다. 

대련에서 내려 버스가 달리기 시작했다. 

한도 없을 것 같은 만주 벌판에 옥수수가 자라나고 있었다. 

이상하게 옥수수는 여름이 오롯하게  배어있는 식물이다.  

짙푸른 초록 아닌 식물이 어디 있으며  휘늘어진 가지 아닌 식물 별로 있으랴먄 

유별나게 옥수수는 여름의 정서를 담뿍 담고 있다. 

꽃이 피어나고 열매 맺기 시작하면 옥수수 알갱이 여물어가듯 여름도 여물어 가기 시작한다.  

‘우리는 옥수수투어라고 해요.’

가이드의 말이 인상적이다. 얼마나 옥수수가 많으면.....

태항산 가는 길에서도 예닐곱 시간을 차를 타는데 

산자락 없는 넓은 평야에 한도 없이 밀이 심어져 있었다.

그럼 그곳은 밀투어겠네.

워낙 식물에 대한 환상이 많아선지 옥수수나 밀이 들어간 투어가 부드럽고 고소하다.       


지루한 영화를 즐겨보듯이

지루한 장면...도 좋다. 옥수수 밭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니니까, 

더 자라고 덜 자라고 성기고 덜 성기고 옥수수의 배경이 된 하늘은 얼마나 또 변화무쌍한가.      

잘하면 남들처럼 

천지와 함께 두메양귀비를 알현, 천지와 함께  한컷!이란 꿈이 있기는 했다.

옥수수투어를 하며 단동에서 내렸고 다음날은 압록 강변을 배로 지나갔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중국과 북한....

그 참 우리나라 사람인데 어찌 이렇게 신기하다는 듯 무섭게(?) 바라보아야만 할까, 

중국 쪽과는 달리 강어귀에 가로수 나무조차 한그루 변변하게 없는 모습, 

붉은 흙을 들어내는 산의 능선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여전히 만주벌판의 하나인 <환인>

고구려 시대 우리나라의 영토였을 <환인>에서는 오녀산성 곁에 세워진 박물관을 관람했다.

오녀산성은 고구려 초기 수도였던 흘승골성 또는 졸본성이라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는 곳으로

정상은 넓고 평평하며 수많은 사람이 먹어도 되는 샘이 있다고 한다.

멀리서도 상당히 높아 보이는 특이한 구조의 산성이었는데 오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어디 객들의 여건이 그러한가.

그래도 나는 그 언저리쯤이라도 데려가줄 줄 알았더니 아이고 참 박물관.....견학으로 끝이었다. 

패키지여행의 한계인데... 

그게 꼭 패키지여행의 한계만이 아니라 여행의 한계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세 번째 날 새벽 세시에 기상 아침으로  도시락이 주어졌다.

유럽여행에서 이른 새벽 도시락을 받았는데....  

네 시간을  달려 서파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백두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가는 길이 서파...라선지 기억속 길보다 자작나무가 적은 듯 했다. 

대신 숲속에서 무수하게 많은 흰 꽃들이 보이곤 했다.

개다래나무였다. 

울창한 숲속에서 나뭇잎아래 피어나는 나뭇잎과 별로 다르지 않는 연두색 꽃은 슬프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으니 슬퍼서...슬픔이 초록색 이파리를 하얗게 변화시킨 것이다. 

꽃 대신 꽃인 것 처럼  호객행위를 하는 이파리들....이라고 해서 마냥 좋기만 할까,

무성한  여름 숲에서 핀 꽃아닌 꽃 개다래 잎은 

그래서 여름의 한을 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아주 가까이에 피어있는 꽃들도 만병초 비슷하네......할 뿐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내게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면 색다른 식물을 만나는 일이다. 

1442개의 계단을 오르면서 기도했다. 

제가 천지에 다다랐을 때 안개를 걷어주셔서 꼭꼭 두메양귀비 보게 해주세요, 

그래도 설마, 내가 가면 구름이 개이겠지 안개가 사라지겠지. ㅋㅋ  

공의로우신 그분께서 이런 삿된 기도를 들어주실 리 만무하시다. 

천지는 지척도 허용치 않는 완강한 안개 제국이었다. 

낯선 나라였다. 셔터 누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천지방향을 바라보다가 거기 분명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천지가 자연스레 천국으로 연상되어졌다. 

미망의 그늘이 한 겹 젖혀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마음이 갑자기 유쾌해졌다.  


천지를 내려와 지안으로 향했다. 지안은 고구려 문화의 발상지이자 유리왕 시대 수도였던 곳으로 고구려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비가 조금씩  내렸다. 

커다란 무덤이 보였다. 우리나라 능처럼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자태는 품위 있고 늠름했다. 

무덤으로 들어가기 전 무덤안의 그림과 설명 되어있는 자그마한 박물관을 지나 

무덤 옆을 지나서 무덤 안으로  들어섰다.   

고구려~~~ 입속으로 한번 중얼거려 보았는데 품 넓은 아버지....처럼

친밀감이 느껴졌다.   

‘귀족의 무덤’이라고 명명된 고구려의 무덤 안 그림은  세기 전에 그렸을 그림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이 아름다웠다. 돌에 새겨진 색들은 아직도 선명했고 좌청룡 우백호와 고구려의 생활상을 나타내주고 있는 그림들은 거침없이 강하면서 그 선들은 자유로워 보였다.

그 옛날 이런 돌을 옮겨 무덤을 짓기란 얼마나 어려웠을까, 

저 아름다운 채색화는 무덤을 짓기 전 그린 것일까?

무덤을 지은 후 그린 것일까,

저 색들은 무엇에서 얻어 돌 위에서 저리 긴 세월을  견뎌 온 것일까,      

사진으로만 보던 광개토왕비의 위용도 감개무량했다. 

그 아득한 시절에 이런 커다란 돌에 글을 새기다니… 

알아볼수 없게 소실된 글자들은 오히려 역사와 시간의 흔적처럼 여겨져  가슴 저렸다. 

그제야 감이 왔는데 우리가 밟고 있는 땅들이 고구려 시절에는 다 우리의 영토였던 곳이었다.

그렇구나. 이 땅이 이곳이 우리나라의 영토였다는 거지.

우리 민족이 우리의 할아버지들이 우리 나라의...

그 우리가 그 우리의 웅혼한 기상이 느껴지며 어깨가 펴지는 것 같기도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짓고 있는 건물 앞에 세워진 팻말 ‘고구려28대왕 박람관’을 보았다. 

천지 오르는 셔틀버스 안에는 거의 모두가 우리나라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 안내 한번 없이 줄곧 중국어로만 안내하던 중국이 

기이하게도 장수왕 박물관 팻말은 매우 친절하게 한국어로 적어 놓았다.

 “고구려는 조기중국 북방의 소수정권입니다.”라고 시작된 

이 팻말의 내용인즉슨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민족정권이며 중앙정부(당나라)와의 내전을 통해 완전히 멸망했고 고구려의 멸망은 필연적인 역사의 순리라는 이야기가 문맥조차 맞지 않는 어설픈 한국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발해와 삼국시대의 역사를 완전히 중국 역사의 일부분으로 가져간다.

매스컴에서만 대하던 중국의 동북공정을 실제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이것은 역사의 왜곡 정도가 아니라 역사를 도둑질하는 짓 아닌가. 

우리나라의 역사를, 우리 민족을. 우리나라를, 

중국 소수민족으로 삼아 버리겠다는 

이런 인간 말종의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한다는 말인가.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부단한 대화라고 갈파했던 카아의 이론은 

중국이란 나라에겐 꿈속에서나 나옴직한 서설이란 말인가.  

세상의 부조리를 개탄하고 약자의 편에 서던 사마천의 나라가 맞는가.

사마천의 사기를 배우며 자라나는 후세가 맞는가? 

정직과 사실의 근간위에서 세워진다는 어린아이들도 아는 기본적인

역사에 대한 양식조차 결여된  나라.... 

거짓의 기반위에 시작한 중국의 탐욕스러움을 직시하게 된...시간이었다.  


이즈음 읽은 

‘사피엔스’에서  유발하라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름이 잼있다) 

전쟁이 생기지 않는 중대한 이유 세 가지를 말했다. 

그 첫째는 전쟁의 대가가 극적으로 커짐,

그래서 그는 노벨평화상을 원자폭탄을 개발한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그의 동료들에게 주어야 한다고 ㅎ 

두 번째는 전쟁의  이익이 작다는 것, 

오늘날 부는 주로 인적자본과 조직의 노하우로 구성되기 때문에 

오히려 평화는 훌륭한 배당 이익을 낳는다는 것,  (이런 표현이 또 귀엽다) 

세 번째 요인은  엘리트가 세계를 지배하는 역사상 최초의 시대......

이 세 가지 요인 사이에 되먹임 고리가 존재하는데.....

국제적 연결망이 치밀해지며 핵무기는 평화주의를 육성하고.....    

매우 공감하면서 읽었는데 문득 양심은커녕 체면도 없는 중국을 보니 

그 무엇보다 

나라 사이에  그 관계망에  <체면>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체면은 허례허식이 아니라 어쩌면 욕심을 절제할 최소한도의 도리 같은 것, 아닐까,    

난데없이 애국자가 된 여행.

       

천지아래 금강대협곡에서 만나 붉은 인가목

그리고 안개속에 숨어있는 만병초들과 이른아침 중국땅 어느 강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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