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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May 05. 2021

양양 쌍호습지에서


어디서나 <습지>가 보이면 마음이 동해.. 

양양 오산리 선사유적지를 보러 갔는데 박물관은 오히려 패스하고 데크가 잘 놓인 습지를 걸었어. 

바람이 서늘한 날이었어. 

아무도 없는 긴 데크를 걷는 데 정말 참, 너무, 심하게 좋은 거야. 

왜? 습지만 보면 좋으니? 내가 내게 물었어. 

의외로 사소한 것도 이유를 물으면 생각해야 하고 

생각하다 보면 결국 의미와 가치 철학에까지 이르게 되는 경우가 많아.

철학이 머 별거냐고 생각이 그 단초고 삶을 생각하면 그게 철학인 거지,

그러니까 습지를 걸으며 철학을 한 거지 ㅎㅎ 


습지를 좋아하는 것은 그 안에 생명이 있어서일 거야.

저 안에 그득한 것들이 아늑하게 살수 있어서, 

우선 저 갈대들, 그리고 몇 그루 안되는 나무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뭄을 모르는 넉넉함 속에서 살아가는 무수한 것들이 얼마나 많겠어. 

그들이 습지라는 넉넉한 습기 속에서 넉넉하게 살아가니 마음이 좋은 거지.

그보다 공평함이 가득해서일까, 

다들 그마마하게 자리 잡고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보여.

내가 이리 편안하게 바라보게 되니 저들도 편안하지 않을까, 

크려고 자라려고 남과 다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그래서 습지는 자유를 그득 품고 있어, 

이렇게 그들을 바라보면 그 자유를 나눠주는 것처럼 여겨지고,


쌍호 습지는 습지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광활했어. 

우리 동네에 있는 안곡습지가 작은 둠벙이라면

쌍호 습지는 호수 같았어. 

아 연천에도 한옥 카페 있는 곳에 숨은 습지가 있었는데 

그곳은 자그마한 습지가 여기저기 나눠져 있었어.

그러고 보니 순천만 그 거대한 습지도 생각나고 아름다운 우포 습지는 아직도 못 가봤네. 

나와는 달리 박물관부터 들어간 남편이 나중에 그러더군.

이 습지에서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고기를 잡고 채취를 해서 먹고살았다고,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마음이 아득해지더군.

그 옛날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무엇인가를 따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고, 

그들은 생각하지도 않았던 미래 속의 어떤 사람인 내가 여기서 그들을 생각하네, 


바람 때문일 수도 있었을 거야,

바람은 나뭇잎만 흔들리게 하는 게 아니고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조차 흔들리게 하거든, 

모든 흔들리는 것은 참 아름다워. 

나무도 흔들릴 때가 가장 아름다운 것 같아.

뿌리까지 흔들리는 것 말고, 아주 살짝 조금씩 흔들리는 것, 

뿌리까지 흔들리면 너무 깊은 상처를 입거나 혹은 상처를 주고 말아, 

아름다운 것이 아무리 우리를 흔들리게 하더라도

그 아름다움이 상처가 된다면 그것은 이미 아름다움이 아니거든,

그러니 흔들리는 마음이여, 이것을 기억해야 해, 

사람의 도리도 있지만 아름다움의 도리도 있어. 

어쩔 수 없는 상처도 있겠지만 남에게 주는 상처를 두려워해야 해. 

그러니 그 사람 없는 넒은 습지를 홀로 걷는데, 

바람들이 새순에 의해 밀리고 있는 늙은 갈대를 흔들리게 하는데...


그런 공평도 있지. 

저 초록 새순도 아름답지만 습기 속에서 살면서도 습기 다 빠진 

금방 새로운 것들에 잠식되어 버릴 늙은 갈대의 연한 빛깔도 괜찮더라고, 

자연이 주는 자연스러움을 보며 우리는 자연스러움을 배워야 할 것 같아. 

그 자연스러움은 억지가 없거든, 

주름이나 쳐짐을 왜 사람들이 싫어할까,

젊음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구별되는 거지. 

구별만 하면 괜찮은데 차별을 하게 돼.

차별 속에서 욕망이 싹트는 거지, 

그러니까 늪지 속 생물들은 차별은커녕 구별도 않는 거지.

그래서 자연스러운 거고 그래서 아름다운 거고

그래, 위영, 구별도 말고 차별도 말자. 

나와 남, 혹은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런 유치한 것은 멀리 던져버리자.

그래도 안되면 이렇게 다시 자연을 보며 공부하자. 

무척 조심하면서 살아왔지만 ㅡ

요즈음 사람들에게는 웃길 정도의 소심과 전전긍긍 속에서ㅡ 

어느 땐 스스로도 그 삶이 참 답답하다고 여겨질 때도 있었지만ㅡ

쌍호 습지에서 문득 든 생각, 

그래 내가 서 있던 그 자리가 남에게 상처를 받으면 받았지 주는 자리가 아니어서.....

지금 이렇게 습지 속에서 편안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여행이 주는 너그러움 때문이었을까, 

내가 내게 너그러웠던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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