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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May 11. 2021

오에 겐자부로 선생께

익사

올해 아흔두 살이신 순금이 이모는 무척 씩씩하십니다.

 지금도 버스 타고 여러 정거장을 거쳐 교회에 혼자 다니시죠.

 얼마 전 만났는데 하시는 말씀,

 “아야, 나는 집에서 말을 많이 해야,” “아니 누구랑요?” 

“테레비 속 사람들이랑 제일 많이 하고, 식탁 귀퉁이에 다치면 아이고 너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하고 

화장실에서 물 내리면서 아이고 고맙다. 더러운 것을 처리해 줘서.이라고 말을 하제.”

 명랑하신 성품도 보이지만 결국 외로움에 대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편지도 결국 우수 어린 혼잣말이네요. 

평생 글을 써오신 선생께서도 삶의 행간을 많이 보는 그 깊은 눈 때문에 수많은 결이 주는 외로움을 직시하게 되고

 그 외로움 때문에 글을 쓰시는 게 아닌가, 

여길 보시오, 이런 사람도 있다오, 손짓하는 일 아닌가,

 치매 걸리셨던 우리 외할머니 활짝 핀 자목련 잎 치마에 가득 따서 맛있게 드시면서 

이것 좀 드셔보시오, 참 맛있단 말이요. 손녀딸인 내게 청했던 일과 비슷한 일 아닌가, 

수영 후 젊은 여자에게 후들거리는 다리가 보일까 봐 두려워하는 노인이 

지적인 젊은 여성을 바라보는 진지하고 솔직한 내면은 당연히 글 속 주인공이 아니라 선생의 시선이죠. 

아내와 여동생, 나이 든 여자들의 삶에 대한 선생의 표현에서는 내 삶이 저절로 생각나던걸요. 

선생의 글은 주인공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마치 파도처럼 내 삶을 향하여 밀려와 나와 내 주변의 삶을 적십니다.

 사실 <익사>라는 선생의 소설은 선생의 많은 글이 그러하듯이 내밀한 회고록 같으면서도 선생의 치열한 역사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쓰는 것 같지만 아버지가 속해있는 사회를 바라보고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지만 시절을 함께 하던 여인들에 대한 정황을 보여줍니다. 

주인공 소설가 역시 선생처럼 장애인을 아들로 둔 아비로서 그들의 관계는 현실과 이상에 대한 괴리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파장으로 변환되죠.

 아버지를 찾아가는 여정처럼 보이는 글이나 실제로는 자신과 아들에 관한 이야기로도 읽힙니다. 

(선생의 아들 이름이 히카리=빛이라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우나이코라는 젊은 여인이 큰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한 사건을 ‘국가의 강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죠. 

팩트와 감정이 오롯이 담긴 한 단어.

 사회의 시스템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이렇게 단순한 단어로 집약시킬 수 있을까.

 소수자가 겪어내야 하는 상처에 대한 오랜 응시의 결과물이겠지요.

 공동체이자 기묘함이 살아있는 숲과 산속 집을 우나이코에게 양도하는 것은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지향점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사실 모든 예술을 공부하지 않고 이해하기란 어렵습니다. 

왜냐면 작가는 그 작품을 위해서 평생 생각하고 걸어온 자신만의 길 혹은 진리를 거기에 담았을 테니까, 

그것을 아주 가벼운 느낌만으로 알아챌 수 있다면 욕심이죠.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를 선장 삼아 생각의 바다로 떠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드문 경우지만 아주 짧은 순간 어디선가 멈추기도 해요. 

작가가 열어놓은 아주 특별한 세계ㅡ로의 진입이라고나 할까, 꿈처럼 깨나고 말지만요.

 소설 속에서 지적인 노인은 아주 매혹적입니다. 

소진되어가는 육체 속에서 결국 빛나거나 남는 것은 정신과 지성이겠지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일본의 정치인들은 선생의 책을 전혀 읽지 않을 거라는, 

근대일본, 피와 폭력으로 일삼던 과거의 일본과 인간에 대한 이리 깊은 성찰이 어려있는 선생의 글을 읽지 않아서 저리 무지한 거라는, 그러고 보니 저도 다음 대통령은 소설을 많이 읽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을 이해하지 않고서 어떻게 감히 정치를 할 수 있겠어요. 

며칠 전에도 책을 정리해서 엄청나게 큰 책꽂이 네 개를 비웠습니다. 

책을 버리는 행위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몇 년 전 선생의 글에서 읽은 노년의 정리로 책 버리기를 하는 선생 따라 하기였지요. 

선생께서도 책을 버리는데 나 같은 부박한 사람이야, 하면서요. 

순금 이모의 혼잣말처럼 선생은 나라는 사람을 전혀 알 리 없는데 

나는 선생을 아주아주 잘 아는 사람처럼 여기고 이리 수다를 늘어놓다니, 

글이 주는 색다른 화법과 자유겠지요. 

선생께서는 <익사>를 마지막 소설이라고 하셨지만 

보나 마나 선생께는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글이 샘물처럼 퐁퐁 솟아날 겁니다. 

선생의 글들을 다시 또 읽을 수 있기를 앙망합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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