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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Oct 05. 2021

아름다운 책이 내게로 왔다

창의 숨결, 시간의 울림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고 있는데도 영 잠이 오지 않아 결국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이 오지 않으면 일어나면 되지. 

이 생각을 자주 잊고 그저 잠이 들려고 한참 애를 쓰곤 한다. 

스탠드를 켜고 낮은 베게 위에 얹기도 하는 작은 곰돌이를 불빛 앞으로 밀어놓고 책을 기대어 세운다. 

<창의 숨결 시간의 울림>

사위는 고요하고 책 속의 글들은 어릴 때 평상에서 바라본 별처럼 반짝인다. 

갑자기 총명함이 다가왔는지 글이 잘 읽힌다. 

글이 잘 읽힌다는 것은 글이 내 마음을 훔치는 것이다. 

나는 사라지고 대신 글이 내 안에 사는 것,

고드름과 하늘색 창이 마음을 훔치러 온 도둑이라고 작가는 쓰고 있는데 

나의 실제 도둑은 고드름과 창일까, 

아니면 작가의 시선일까,. 

‘배추밭으로 펄펄 내리는 흰 눈은 고요에 닿아 기도가 된다’

이런 문장 역시 진짜 그윽한 도둑 아닌가,

격자 문양의 문을 보며 몬드리안을 연상해내는 그 창조적인 시선이라니,

실제로 작가의 사진 속 

시골 할머니 창은 몬드리안의 작품을 품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더한 생의 깊이를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표현하지 않는 표현이 표현된 표현보다 더 생을 함축하고 있을 테니까, 

빛이 가득한 창에서 창의 환영을 바라보며

그 창이 사라져가는 여인의 생애가 남긴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작가의 시선은 또 얼마나 경이로운가, 

풍경을 해석하는 태도는 사람의 결을 나타내준다. 

깊이 보는 사람은 깊이 있는 삶을 사는 것이고 옅게 보는 사람은 옅을 수밖에 없다. 

순함은 깊이고 아름다움 역시 깊이다. 

실제 할머니의 창을 찍은 작가의 사진은 적막하면서도 곱다. 

빛을 품고 있으면서도 난하지 않고 그저 안온하게 빛을 받아들이고 내보내며 

그 자리에 그렇게 오랜 시간을 무연히 있었으리. 

창인데 정말 창이다. 

아주 긴시간 창을 찾아다닌 작가가 창을 만난 것이다. 

할머니의 창이지만 어쩌면 할머니조차 모르던 창을 작가가 발견한 것이다.


그는 아우라지에서 산을 품은 창을 만나고 새삼 은유로서의 창을 생각한다.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훔쳐보는 설렘을 알게 하는 창, 

그 창에 산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산은 자라난다.

작가는 아마 조금씩 무릎을 굽혔을 것이다.

자라나는 산을 보기 위하여. 

작가는 창의 순례를 마음의 순례라고 생각하며 창을 찾아 떠난다. 

그러면서 시간의 순리에 동화되어 간다고 쓰고 있다. 

창이 없으면 대신 꽃을 보았고 그러다보니 새소리도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을 느낀다고 했다. 

창평의 새는 여류명창의 소리처럼 다가오면서도 설움도 느껴졌다고, 

겨울날 셔터 소리와 봄날 사진기의 소리도 다른다고 했다. 

모란꽃잎 몇 개를 따서 잉게보르크 바하만(이상하게 이 시인의 이름은 언제나 나를 이십대로 데려가는 주술과 함께 있다) 의 

시집 갈피에 넣어두니 

시에서 향이 올랐다. 

유예된 시간이란 시의 페이지 

참으로  시적인 삶을 살아가는 분이다. 

예순의 박완서 선생의 얼굴에서 청초함을 읽어내는 작가, 

순금의 시간을 읽어내는 시선, 

밝은 눈에 밝은 귀 그 모든 것을 조합해내는 밝은 마음,


섬의

길은,

길의

섬이다.

안에

섬이 

있다. 

제주도의 초록 창문이 있는 집과 세한도가 그려진 완당의 거처 사이에서

난 섬이되기를 꿈꾼다

작가는 수많은 창을 만나서 그 창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다. 

마치 큰 창조만을 하시고 작은 것들은 우리에게 알아서 찾으라는 

창조주의 특별한 밀명을 받은 것처럼 

그러니그는 창의 숨결을 찾아 떠나는 그러면서 시간의 울림을 듣는 순례자이다. 

내 글에도 가끔 등장하는 연천화가 윤금숙에 대한 진중하고 깊은 글이 무게 있게 실려있다.

나는 그집에 작가보다  훨씬 더 많이 갔을텐데도 

그 글 앞에서 한번도 안간 사람이 되어 글을 읽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했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다.

화가의 창문 아래 걸려있는 작품을 자주 보면서도

아 참 좋네.....할 뿐인데 

작가는 하이데거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나무에 대한 작가만의 철학과 에세이를 펼친다. 

파울클레와 쥘 쉬페르비엘의 시(이 시인의 이름은 처음임)와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 학당과 플라톤의 저서 <티마이오스>의 에이도스....

그리고 건성으로 보았던 아주 작은 그림에서도 해맑고 깨끗한 마음의 나무를 바라본다.

뜨락의 작약이 작가를 부르는 말 

<나를 바라봐 건달>

아, 나도 가끔 나를 진심,  건달로 생각하는데......

윤금숙 챕터에 살짝 표시를 해놓은 것을 보고 미소가 지어졌다. 

책표지에 적은 작가의 글

예지 깊은 가을빛이 별보다 맑게 내 곁에서 빛나길 기원하는......

이런 유심을 지닌,    

나처럼 무심한 사람은 도무지 흉내 내기도 어려운 분이 건달이시면

나는 무엇이 될꼬,  

(책읽고 글쓰다 보니  새벽 네시가 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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