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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Aug 10. 2016

기억흔적<記憶痕跡,memory trace>

蟲女

경험한 내용의 여운으로 남아 있는 

기억흔적 [記憶痕跡, memory trace] 이 있다. 

이 친구는 시간과 함께 희미해질 뿐만 아니라 내용이 변하기도 한다고 한다. 

가령, 원경험(原經驗)의 두드러진 특징이 강조되거나 

균형이 없던 것이 균형을 잡게 되는가 하면, 

처음에 무엇과 닮았다고 생각하면서 기억하면 

그것과 비슷해지기도 하고 

비슷한 흔적끼리는 서로 간섭(干涉)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가만,

이 친구, 

마치 살아 숨쉬는 물체 같지 않은가, 

변하고 소멸되며 합체되는, 


아버지와 영화를 보러 다닌 것은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때였다. 

일찍 퇴근해 들어오시는 날이면 아버지는 식사를 하신 후 

영화보러 가자며 내 손을 잡으셨다. 

어둑어둑한 길을 걸어

‘보성극장’ 아니면 ‘세일극장’에를 가곤 했다.

그 때 보성에는 영화관이라고는그 두 개만 있었다.

아니 그 조그마한 읍내에 두 개나? 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사십여 년이 훨씬 넘는 시간의 저편을 바라다 보면

아버지와 손잡고 걸어가는 길에는 

언제나 심한 더위도 심한 추위도 없는

선선한 바람과 기분 좋은 저녁의 상쾌함이 가득하다. 

밤 기억이라 하면 엄마와의 밤 예배도 있다.

영화관은 가까웠지만 예배당은 멀었다. 

엄마랑 예배당 오가는 길에는 더운 여름과 모기도 많고

아주 춥고 바람불던 혹독한 눈길도 있다. 

무엇보다 예배 후 집에 돌아갈 때 

곤한 잠에서 깨어나야 했던 아주 싫은 기분이 기억되어 있는데 반해 

아버지와의 외출에는 그런 경험이 없으니  아마도 매우 열심히 혹은 즐기며 영화를 본 듯하다. 


그러던 언젠가 아버지와 엄마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된다. 

“인자 영이 데리고 극장에 그만가사 쓸랑갑네.”

“왜라,”

“머 조금 이상한 대목이 나오믄 저것이 좀 다르드란 말시.” 

아부지가 말씀하신 이상한 대목이라면 포옹이나 키스..... 

그러나 내 기억에 그런 대목은 분명 없는데도 

아부지 말씀에 대한 상상된 경험 인지 탓일까, 

여자와 남자의 이상한(?) 대목이 나오면 내가 하품을 하든지 어색해 했든지....등

아부지가 알아채신 성에 대한 인식의 포즈가 기억 속에 있는 듯 하기도 하다.


꼭 성에 대한 개념은 아니지만,

아니지, 성에 대한 관심의 빙증은 될 것 같다.

엄마와 함께 본 여성 국극단의 한 장면,

여성 국극단은 여성들이 남장을 하고 창으로 대화를 하는 지금 식으로 표현하다면 

일종의 뮤지컬이다. 

무대는 둘로 나뉘어져 있고 

한쪽은 엷은 망사 같은 천으로 둘러진 방이 만들어져 있다.

장군 비슷한 남자가 그 방에서 나오고 여자는 망사 휘늘어진 방에서 흐느껴 울고 있다. 

방을 나오던 남자가 바지를 추켜올리며 입었다. 

그 때 내 생각, .

왜 화장실도 아닌데 바지를 저렇게 벗었다가 입는 것일까,

그 생각이 아주 오래 갔던 것이다.

아주 서서히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내 스스로 그 해답을 알아챌 때 까지.

알아 챈 뒤에도

사실 지금도 이상하게 그 기억은 무지 선명하다.

과장된 화장과 머리 풀어헤친 여인의 흐느낌,

그리고 그 남자, 


 내게는 그 때 그 무렵 

아버지와 함께 보았다고 여긴 

영화의 한 장면이 아주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알록달록한 사탕이 화면에 가득 차 넘치고

그 색색의 빛은 아주 길다랗게 확장되어 넘치면서 화면을 가득 채운다. 

아마도 거꾸로 된 화면일수도 있다. 

여성의 얼굴이 색색의 사탕빛 속에서 아득히 보이고......

물론 줄거리도 모르고 배우도 모르는 영화다.

그런데 그 영화 제목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혹시 <충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내 기억 속에 함께 있더라는 이야기다.

분명히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가 보면

영화의 장면과

영화의 제목은 다른 시간 속에서 연결되어 있는것이 틀림없는데,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마침 코파에서 김기영 감독의 영화를 상영한다기에 

가서 확인을 해야지. 했는데 놓치고 말았고 교육방송에서 하는 ‘충녀’를 보았다. .

그리고 충녀의 후반부에서 

나는 내 기억속의 장면과 조우하게 된다. 

기억흔적은 확장되었는가,

길다랗고 선명한 색색의 사탕빛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 장면은 분명히 내가 어릴 때 본 

그리고 나의 뇌 속 세포 단백질 어느 부분 속에 자리하고 있던 그 장면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서 파생되었다.

알고보니 ‘충녀’는 1972년도에 만들어진 영화이다.

내가 아버지와 영화를 보러 다닌 것은 초등학교를 다닌 

1965년부터 68 혹은 69년 그 사이이다.

1972년이면 내가 고등학교 일학년 때이다.

그리고 <충녀>는 사십여 년이 흐른 지금 시점으로 봐도 19금으로 손색이 없는 영화이다. 

당연히 고등학교 일학년인 내가 

더군다나 전혀 까지지(?^^*)않았던 내가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다는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일까,

그때는 년소자입장 불가라는 단어를 썼는데 지금처럼

금지선이 명확하지 않아서 친구들과 몰래 가서 본 것일까?

아니면,

몇 번 정도, 

아부지를 잘 아는 기도 아저씨ㅡ영화관 앞에서 표검사를 하는 사람ㅡ 가 그냥 영화관으로 슬쩍 넣어 주었을까,

충녀는 윤여정이 열연한 영화다.

잘생긴 남궁원이 나오고 본처인 전게현은 지금봐도 굉장한 미인인듯, 

명자(윤여정)는 어머니를 비롯해 외할머니까지 첩의 신세였던 집안에서 태어난다. 

오빠와 남동생의 학비와 생계를 위해 호스티스가 된 명자는 

마담(박정자)의 주선으로 김동식(남궁원)을 소개받고, 순결을 빼앗긴 후 첩이 된다.

새집에서 명자는 이상한 일들을 계속 겪게 된다. 

냉장고 안에서 갓난 아기가 나오는가 하면, 

이사 첫날 동식의 딸(김주미)이 선물한 쥐가 엄청나게 번식해서 나타나고, 

아기가 쥐를 잡아먹거나 하수구로 들어가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더니, 

사실 지금 스토리라고 보아도 굉장히 특이하고 괴이하다.

물론 이 줄거리는 새로 본 영화에서 알게 된 것이지 기억속에 남아 있던것은 전혀 아니다.

내 기억속의 장면과도 많이 다른

사탕을 길게길게 비추이던

색색의 빛깔들,

당연히 

내 기억속의 장면이 더욱 아름답다. 


점점 기억의 부피는 커질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기억만으로 조성된 새로운 내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기억이 삶 자체일수는 없을텐데...


충녀는 내겐 확실히 기억흔적 [記憶痕跡, memory trac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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