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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Aug 20. 2016

여수 순천 보성 장흥 강진 해남

어슬렁어슬렁


팔월의 남도는 배롱나무 천지였다.

물론 의도적인 식수이긴 하지만.

나무는 순식간에 사람의 계획 같은 것 거침없이 벗어나버린다.   

처음에는 사람에게 순응하듯 얌전하게 싹이 나고 잎이 돋고 자라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무는  마치 저절로 생겨난 것처럼 

아무의 도움도 필요 없다는 듯 당당하고 아름다워진다.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움이고

자연스러움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그래서 가장 높은 급의 우아함이다. 

특별히 배롱나무는, 

그의 선들은, 굽이굽이 자연스럽다. 

가지의 선들마다 더듬이가 있어 절묘한 선의 위치를 포착하듯 

살짝살짝 굽어가며 길을 이루어간다.

나무의 가지는 나무의 길이다.  

그러니까 나무는 수많은 길을 담고 있는 길들의 서사리.

위로 자라나기보다는 옆으로 걷기를  즐거워하는 겸손한 나무.  

이즈음에는 중부 이북에서도 자라나긴 하지만 원래 백일홍은 아랫녘 나무이다.

수피를 보면 매끈한 것이 마치 맨살처럼 여겨지기도 하니 그래선가..추위에 약하다.

이름도 다양한 배롱나무. 

백일홍...그냥 백일홍과 구별하기 위해서 부르는 목백일홍

꽃이 백일 동안 피어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설마 백일이나 피어날까, 지는 꽃은 지더라도 다시 새로운 꽃 피어나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자미화라고도 한다. 수피가 붉어서 자미일 수도 있고 

양귀비가 살았던 성이 자미성인데 그 성에 가득해서 자미화라는 설이 있다.

잎은 자미 엽 뿌리는 자미근...

속설로는 간지럼나무라고도 부른다. 

정말 간지럼 타니?

가끔 간지럼을 시켜보면 나무의 우듬지가 조금 흔들리는 듯도 한다. 

바람 때문이라고? 여겨도 할 수는 없고....

간지럼나무의 제주도 이름도 어여쁘다. ‘저금 타는 낭’ 

여름은 꽃이 귀한 시간이다. 

성하에 피어나 초가을까지 석 달여를 피어있으니 

참으로 꽃의 양이 풍성한 나무이다. 

벼가 팰 때 피어나고 익을 때까지 피어있는 꽃,


ㅇㅜㄴ









남도의 길은 진분홍 빛깔의 배롱나무로 인해 庭園化 되었다.

화사한 눈부심은 여름의 정적,  

머무르게 하는, 

가만히 옷자락 잡아끌어 뒤돌아보게 하는 남도의 꽃


  



남도의 산야는 무심하다.

야트막한 산자락들은 부드럽고 안온하다. 

겨우 뒷동산..뒷동네 

거기 사람들을 품음만으로 만족하다는 듯 동네 뒤에 마치 정겨운 초가집처럼 자리하고 있다. 

논두렁길에는 콩이 자라나고 있고

콩보다 더  수많은 풀들이 수도 없이 자라나 

땅을 덮으며 오히려 땅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벼는 스스로 자신의 배를 가르고 드문드문 패기 시작한다.

상처 없는 열매 어디 있으랴.

어미를 먹고 자라는 거미새끼나 

배를 가르고 나오는 벼나 결국은 한길이다.  

한적한 길에 서서 가만히 패는 벼를 바라보았다. 

아직 형상 없는 저 모습 어디에 쌀알이 되는 에너지

그리하여 겁도 없이 사람의 먹이가 되는 힘이 숨어 있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보이는 모든 것마다 생명이다.

도시의 존재들이 거대한 건물부터 시작해서 부딪히는 거의 모든 사물들이

죽어있는 것이라면 남도의 들판은 생명의 향연이었다. 

작거나 크거나 풀이거나 나무거나 먹을 수 있는 식물이거나 무용하거나     

그들은 저마다 생명이었다.

생명의 찬가ㅡ 

어릴 때 늦잠을 자서 교회에 지각을 할 때 조그마한 산길을 걸어 교회 가까운데 다다르면 

찬송가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아는 노래인데도 숲을 지나 나무를 휘감아 다가와선지

어린 마음에도 천국의 소리가 저럴까...생각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데ㅡ

녹색의 향연이 지어내는 생명의 찬가와 기억속의 찬송가를 나란히 세웠더니 

그 조화로움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   

보성 제암산 휴양림에서 이른 아침 데크를 걷기 시작했다.

맑고 서늘한 공기....나뭇잎 소리가 바스락거리며 다가왔다.  

가을이 가장 일찍 찾아든 곳이 산일 터이니...

그렇지 가을은 가장 먼저 소리로 다가오는구나. 

습기를 말리는 건조한 음색

무념무상 숲이나 나무나 풀을 바라보며 생각 없이 걷다보니 한 시간이 훌쩍 넘어있었다.    


강진 주작산...

주작산은 전라도 산이 항용 그러하듯  높은 산은 아니데

야트막산 산자락 위로 바위들이 주욱 덮여 마치 그 형상이 봉황이 날개를 펴는 것과 같다하여 

주작산이라고 한다. 

휴양림위로 길이 주욱 나있길래 

‘우리 임도를 한번 달려봅시다“

내가 제안을 했고 형부는

 “임도야 나의 취미 생활이제”.

그래서 해저물녘 임도를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길은 다듬어져 있었지만 좁고 협착하여 무수한 나뭇가지가 차를 쓰다듬었다.

누군가가

 “근데 이 길에서 내려오는 차와 만나면 어떻게 하지?”

형부왈

“그라믄 서로 엥기라 보고 서 있어야제.”

‘엥기라’ 아 그 단어 도대체 얼마나 오랜만에 들었는지

그러니까 엥기라는 노려보다는 뜻인데 그날 우리 가족의 유행어가 됐다.

눈만 마주쳐도 “엥기라 보지마랑께,” 

너무 깊이 들어가는 듯 해서 날은 어두워지고 살짝 무서운 느낌도 들었는데 

결국 주작산 일출봉이 나타났다. 

산 아래로는 강진만의 다도해가 그릴 수 없이 아름다운 자태로 나타났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작산의 암봉 능선이 손에 닿을 듯 펼쳐졌다.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순해진 주황빛 햇살은 그의 손길이 닿는 모든 것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햇다.

산의 능선이라 바람은 시원하게 불어왔고 

우리 모두는 그 아름다운 광경에 놀랐다.

정말 사람의 손길이나 발길이 별로 닿지 않아 

달아지지 않는 순후한 풍경을 그대로 들어내고 있었다. 

별로 말이없는 아들래미도 숨을 훅 들이키는가 싶더니.... 아 멋지네~

한마디 했다.

세상에~ 

풍경이 마음속으로 가라앉은 시간.... 더군다나 일몰의 시간이었다. 

관광이 아닌 여행 

여행이 아닌 고요함으로 진입

자연만이 줄 수 있는 경이로움에 빠졋던 순간이었다.       





ㅇㅜㄴㅅㅜㅍㅕㅇㅇㅜ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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