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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Aug 23. 2016

팔월에 쓰는 편지

누리장나무꽃

오늘은 구름이 어여쁜 날이었소.. 

북한산성에서 의상봉 가는 길을 오르는데 나무 사이로 비치는 하늘...그리고 희디흰 뭉게구름,

그 밝은 블루와 하얀 구름이 빚어내는 그림이 여름.....아니 그보다는 초가을의 느낌이 선 듯 다가왔소. 

골을 걸을 때는 못 느끼다가도 자그마한 능선만 올라서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고.

선선한 바람에는 습기가 없었소. , 

팔월은 한번쯤 오르는 길을 멈추고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는 달이라고 오세영 시인이 썼던가.

팔월만이겠소. 산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자주 뒤를 돌아보게 되오..힘들어 쉬면서 .

오르는 길 막막하여 올라왔던 길 뒤돌아 볼 때가 허다하지.


산을 오르며 처서를 생각했소. 순간  마음에 작은 울림...같은 것, 금하나 연하게...가는. 

사는 건 그런 게 아닐까...몸과 정신에 금이 가는 것 말이오. 어릴 때는 온전했다가.... 

점점 하나씩... 아무도 모르게 생겨나는 금. 

상처든 슬픔이든, 혹은 과격한 탐닉이든....꽁꽁 얼었던 북한산 계곡물이 봄이 다가오면 햇살 바람, 시간...땅의 속삭임. 버들치라고 그 안에서 요동치지 않겠소. 그것들에 의해 금이 가고 또 가고.... 어느 순간 얼음은 물이 되어 버리오. 우리도 혹 그러지 않을까....가을 오면 금하나... 기억....들이 나타날 때 금하나....붉게 물든 단풍잎들 마다 가느다란 금을 지니고 있다면, 좋아하는 마음이라고 금 없을까.... 

산을 왜 혼자 가는가. 물었소? 오늘도 산에는 정말 무리지어 산을 오르는 사람들 투성이였소. 

산을 오르는지 말을 하기 위해 산엘 오는 건지 웃기 위해 산을 오는 사람도 있는 듯 하고 

그렇지 아마 다들 외로워서일게요. 그래서 외롭지 않기 위하여 저리 무리지어 오며 무리 속에 속하며 

무리와 함께 웃고 이야기 하며나는 외롭지 않아! 다짐하고있을게요. 그러나 정말 그럴까,

산엔 혼자가야 두리번거릴 수 있소.누군가와 같이 있다면 두리번거릴 시간이 없지. 걸으면서 이야기 들어야 하고 내 이야기도 가끔 해야 하기 때문에 두리번거릴 시간이 없다는 거요.두리번거리지 않는다면산을 갈 필요가 없는게요. 나무도 보고 풀도 보고 바람도 보고...하늘도 보고...그들과 만나는 것....

그들 이야기를 속속히 듣지는 못해도 적어도 그들과 함께 하며 나를 그들에게 보여주는것, 

어쩌면 여름 숲은 나무들이 가장 교만할 때이오. 일 년 중 온전히 자신만 생각하는 가장 이기적인 시간......나무의 가지외 잎이 맹위를 떨치는 시간, 그러니 꽃에 할애할 틈이 없는 게지. 오늘 보니 소나무 잣나무...노간주 나무... 잎 너부데데한 활엽수 옆에서 가느다란 침엽수들의 초록도 참으로 초록적이었소.곱더군. 고왔소소산 산 중턱 숲 가운데서 누리장 나무가 가끔 피어나 있었소. 팔월 하순의 숲속에서 유일하게. 요망을 떨고 있는 나무이지. 이분, 관목이라 아담한 체구에 잎싹은 넓어서 시원해 보이시고. 오동나무처럼 시원한 잎싹 때문에 취오동 나무/ 냄새나는 오동나무라는 뜻의/라 불리워지기도 하신다오. 이름은 ㅡ 생김새와는 달리 엄청 많으신데. 개똥나무, 노나무, 개나무, 구릿대나무, 누기개나무, 누룬나무, 구린내나무, 등등. 꽃이 피기 전까지는 눈에 잘 띄지도 않는데 여름이 될 때 까지 있는 듯 마는 듯 고요히 숲 한편에 은둔형 선비처럼 침잠해 계시는데,  넓은 잎싹은 조신해 보이시고,  꽃망울 까지도 수줍고 여린 듯, 연미색으로 옹기종기 피어나다가 조금쯤 그 끄트머리가 연분홍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다가,  이 선비님  갑자기 요화방초가 되오.  꽃잎이 벌어지기 시작하면.......음음, 꽃밭침은 화들짝 오. <미친년 널뛰데끼> 벌어지고 수술과 암술은 길다랗게 자라나 정신없이 헝클어지고. 너무 정신없어 원거리 샷이 더 좋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버린다고나 할까,  향기에 대해서는 피어나면서 돌변하는 꽃처럼 설왕설래라오. 향기가 구려서 누리장 나무란 이름이 붙었다며 냄새가 고약하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쁜 냄새를 없애주는 역할을 하는 향기라는 사람도 있어서  화장실 옆에 심어두면 좋은 나무라는 설도 있다오..  사실 누리장 나무 꽃은 꽃향기라고 하기에는 뭔가 미묘하긴 하오, 포괄적인 향기라고나 할까,, 사람들에게 좋은 느낌을 주는 꽃의 향기들이 홀로 존재하며 독존적인 성격이 강하다면 누리장 나무의 꽃향기는 같이 더불어 함께 하는 향기라고나 할까, 비린내 나는 생선가게 옆에 한 그루 피어나 있으면 생선냄새를 없애줄 듯, 화장실 옆에 서서 화장실 냄새를 대신 싸안아 줄 듯, 홀로 사는 노인집에 피어나면 늙은 체취를 가려줄듯한,  아주 너그러운 향기라고나 할까, 누리장나무 꽃은 어쩌면 한 여름 숲에서 유일하게 피어나는 꽃인지도 모르오. 아니 아주 자그마한 며느리 밥풀꽃이야....이제 막 피어오르기도 하지만 말이오. 두리번거리지 않으면 누리장 나무도 만날 수 없소. 설령 마주친다 하더라도 아 안녕.... 하며 그냥 스쳐 지나가겠지.  


이 나이 되니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소. 그 언젠가는 내 곁의 사람들 전부들에게  개기거나 때부려도 될 사람들이었는데 이젠 그 빛을 갚아야만 하는 시간인게요. 아직 아이들도 그렇고  늙으신 엄마...그리고 나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비롯된 만남속의 많은 사람들,,,,모두가 한결같이 나의 부드러움을 원하곤 하오. 누군가를 케어한다는 것은 오직 하나 부드러움으로 대한다는 것이오.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사람들에겐 에너지.....의 양이 있지 않을까. 가령 부드러움이란 에너지도 한 오킬로정도.... 라면 만나는 사람이 많으면 그 오킬로그램 금방 소진되고 마오. 그래서 가족들에게는 뻣뻣해질 수 있겠지.  어디선가 그 부드러움을,,,,,훔쳐서라도 충전시켜야 하오. 누리장나무가 내게  그녀. 혹은 그가 지닌 부드러움을 나눠준다는 게요. 아주 자그마한 좀 꿩의 다리도 그렇고 아주 커다란.... 잘생긴 소나무를 만나면 나는 그의 몸을 꼭 만져보곤 하오. 단단하지. 마치 바위 같애  여윈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어. 그럴 때 마음이 열리오. 열린 마음으로 소나무가 들어오고....딱딱했던 마음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하지. 바야흐로 충전의 시간.ㅡ


계절이 어떤 몸짓으로 다가오고 떠나는지,

어디에 은둔해 있다가 슬며시 그 옷자락을 내비치는지 

그들이 오고가는 길목에 서면 

밤하늘 별빛이 아니더라도 

삶의 秘意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소. (處暑尺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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