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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Feb 12. 2022

누릴수있는것을누리면 행복해진다

과천 미술관








이른 점심을 먹고 편한 신발을 장착 집을 나선다. 

아주 잠깐, 친구나 지인과 함께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혼자가 주는 자유를 택하기로 한다. 

걷기에 좋은 가벼운 패딩에 자그마한 크로스백을 걸친다. 

두 손이 자유로우니 저절로 경쾌한 걸음, 허리를 죽 펴고 배에 힘을 주고 눈은 정면 15도?는 아니다. 

눈은 두리번두리번, 익숙한 길가 가로수나 남의 집 정원의 나무들을 보며 어디 봄 오나 눈으로 찾는다. 

늘푸른나무도 이때쯤이면 겨울 색이 내려앉아 하이 초록, 하면 좀 무안할 것 같다. 

딱 겨울이 지겨울 무렵, 

이문세가 노래한 옛사랑에서 사랑도 지겨울 때가 있다고 김영훈은 썼다. 

얼마나 생각을 많이 하면 지겨울 것인가, 

그러니 깊은 겨울의 지겨움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 겨울이 있어 봄이 더 아름다울 테고, 꽃은 겨울을 지나야 피어나기에, 

꽃에서 꽃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나는 과정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철이 이제야 들었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탄다. 

젊은이들이 몇몇 서 있는데도 경로석은 비어있다.

 앗싸, 경로석에 앉아도 될 나이가 된 게 앗싸 할 일인가 싶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앉는다. 

핸드폰을 꺼내 리브로피아 어플을 열고 모바일 전자책으로 들어가 어제 빌려둔 밀의 자유론을 읽는다. 

세 번째다. 생각하면서 읽어야 할 글은 지하철에서는 맞지 않는다. 

잠시 창밖으로 눈을 주다 MMCA 어플을 열고  최욱경의 ‘앨리스의 고양이’를 들여다본다. 

이번 주에 끝나는 전시라 오늘 벼르고 나선 것이다. 

대공원역에서 4번 출구로 나가서 기다리니 오래지 않아 하얗고 멋진 대형 버스가 바로 내 앞에 선다.

 타는 사람은 세 명.

 어린이 대공원을 지나고 숲길을 지난 후에 바로 현대 미술관 지척에 선다. 

차를 가지고 오는 것보다 훨씬 더 편하다. 

곳곳에 조각 작품들이 아름다운 나무처럼 서 있는 미술관 마당에 서니 이리 좋을 수가, 

미세먼지가 많은 날이었지만 우리 동네보다 남쪽 이라선지 바람 속에서 살짝 봄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조나단 브로프스키의 ‘노래하는 사람’이 아픈지 입은 벌리는데 기묘한 음색의 노래가 들리지 않는다. 

베르나르 브네의 ‘세 개의 비결정적 선’을 지나오다가 그 선 안으로 이우환의 ‘사방으로’가 옴팍 들어선 모습이 잡힌다. 

아, 이런 장면은 찍어줘야 해. 찰칵,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에게 하이, 노랑 호박! 인사를 하고 미술관 안으로 들어선다. 

그제야? 

아니 나는 이미 집을 나설 때부터, 어쩌면 전시회에 가야지 마음먹을 때부터 이미 미술관에 입장한 것이다. 

마치 그 생각을 증명이라도 해주듯이 공간 속에서 시간을 경험하게 하는 

올라퍼 엘리아슨의 ‘시간증폭기’가 나타난다. 

먼 시간 저쪽에서 해류를 따라 아이슬란드 해변으로 밀려온 나무를 절단해 

그 위에 홈을 파서 열한 개의 돌과 한 개의 유리구슬을 위치 –12달을 의미- 시켜 

시간의 흐름과 현재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작품. 

물론 내가 알아챈 것은 아니다. 

미술관의 작품 어플에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현대 미술은 단언컨대 텍스트화되어 설명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 

해석이나 느낌보다 우선한 것이 작가의 의도이다. 

해석은 그다음이다. 

보고 싶은 최욱경의 그림을 흠뻑 보았다. 

그림뿐 아니라 그녀가 글에도 관심이 있어 시집을 냈고 그 시집도 진열되어 있어서 시도 몇 편 읽었다. 

‘한때에/나의 이름은/낯설은 얼굴들 중에서/말을 잊어버린 ‘벙어리 아이’였습니다./타향에서 이별이 가져다주는/기약 없을 해후의/슬픔을 맛 본 채/성난 짐승들의 동물원에서/무지개꿈 쫓다가/‘길 잃은 아이’였습니다.’(최욱경의 시 ‘나의 이름은’)

추상적인 그녀의 그림에서 자주 프랜시스 베이컨을 떠올렸다. 비명을, 고독을, 

삭혀지지 않는 고통을 물질화한 프랜시스 베이컨처럼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들려오거나 보았던 모든 것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형상화했다. 

다리가 아파서 시계를 보니 세 시간이 훌쩍 넘어 있었다. 

백남준의 거대 작품 다다익선 옆으로 가면 미술관의 유일한 카페가 나온다. 

커피 한 잔과 함께 미술관 정원을 음미하고 다리도 쉬었다. 

그 어느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한들 

이리 깊이 생각하고 느끼고 음미할 수 있을것인가, 

충만한 시간을 누리는 방법중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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