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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Feb 26. 2022

소설小說과 콘솔레이션consolation

문학상



2022년 현대 문학상과 이상문학상을 읽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같은 해에 문학상을 받은 책을 도서관에서 빌리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책이 지겨워지기 전 문학상 받은 책을 많이 산 이유이기도 하다. 

햇수가 지나가니 연도가 선명하게 찍혀선지 다른 책보다 더 낡아가고 

어쩌다 슬쩍 들춰보면 글도 방향도 문체도 내용도 실제 늙은이처럼 여겨지곤 했다. 

책도 우유처럼 날짜를 봐야하나...

그리고 점점 소설에 대한 관심도 엷어져서 문학상 책을 

그렇게 열심히 챙겨보지 않게 되었다.

멋진 소설을 쓴다한들, 

거대하고 근사한 장편소설을 쓴다 한들, 

당연히 쓰지도 못하겠지만, 

혹시 쓴다한들 그게 뭐 그리 큰 의미가 있을까, 싶은 것이다. 

신포도 이야기는 아니지만 신포도 이야기로 여겨도 무방하다.

사실 신포도일것이다. 

그렇다고 글을 혹은 글 같은, 다른 사람의 삶을 무시하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나이가 이쯤이 되니 저절로 그렇게 거리가 생기더라는 말,

주름 골골이 생겨 그 사이로 흐르는 게 많듯이 

미련도 그 사이로 흘러가더라는 것, 


도서관에 가면 참새방앗간처럼 새 책 코너를 둘러 보는데 

저번에 갈 때는 이상문학상이 이번에 갈 때는 현대문학상이 있었다.

이승우작가가 이상문학상을 받았는데

아직까지 이냥반이 이 상을 안 받았나? 하다가

시끄럽게 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주느니 오랫동안 침착하게 글을 발표하고 교수고 중견작가이니

사회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무난한 선택을 한 듯 싶었다. 


<마음의 부력>이란 소설에서도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썼던 <사랑이 한일>처럼

성경속 에서와 야곱이야기를 

다른 각도에서 살펴본다. 

타고난 성향이 아니라 환경에서 비롯되었을 거라는 것, 

에서가 밖을 떠돌게 된 것은 어쩌면 어머니 리브가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 

사랑받는 야곱이라 해서 그 마음이 편했을까, 

에서같은 형과 야곱같은 자신을 둔 어머니는  

생생한 마음으로는 도무지 겪어내기 어려운 형의 죽음뒤에 

결국 치매처럼 보이는 정신줄 놓음으로 연결되는데

가끔 치매가 고통에 대한 내적 처방이 아닐까,

남는 사람들에게는 갑자기한 별리에 대한 내성을 만들어주는 시간이 아닐까, 

사위어 가는 모습이 인생을 잊고 편안하게 가라는 사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75년생 정소현이 쓴 현대 문학상 대상 <그 때 그 마음>도 재밌게 읽었다.

내게는 주인공 혜성의 삶이 낯설었다. 

좋은 직장을 다니다가 구도자적인 심정으로 박스를 줍는 사람이 되는데 

그 대목이 나처럼 지극히 평범한 사람에겐 이해할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다가 어린 시절 자신이 살았던 집을 그린 그림을 만나고 

잠자라는(변신의 주인공보다 나는 잠지라는 단어가 더 생각난다) 작가의 블로그를 찾아내고

그가 쓴 첫사랑이 자신일거라는 생각을 하며 결국 작가와의 대화까지 찾아 나선다.

잠자는 여성이었고....


나는 글을 읽으며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마음의 부력>도 <그 때 그마음>도 끝이 시원찮았다. 

아니 이끌어오는 힘이 대단했으면 그 끝도 뭔가 빵 터져줘야 하는데 

마치 볼태기가 터져라 불어대다가 동여매지 않아 한순간 풀려버리는 고무풍선 같았다. 


아 원래 모든 끝은 그럴지도 모르겠다.  

무슨 별다른, 대단한, 거대한, 

과정보다 더 사로잡는 결말이 끝이 있을건가, 

글도 삶인데 

삶의 곡조는 다양하다 할지라도 

끝은 죽음처럼 단순한 것이라서,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주변 사람에게 말한다.

'참다운 철학자는 늘 죽는 일에 마음을 쓰고, 

따라서 모든 사람 가운데 죽음을 가장 덜 무서워하는 자일세.'

죽음을 덜 무서워한다고 용감하게 이야기 할수는 없지만 

죽음을 항시 아니 자주,  생각하며 사니까 

내 사유의 끝은 거의가 죽음으로 끝나니까 나는 반쯤의 철학자.(철학자 아닌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해) 


사진은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  건물이 주는 느낌이  고요하고  적막했다.  

그래서 더이상 세련될 수 없이 세련된 공간

콘솔레이션 홀,  하늘가는 길,

모든 공간이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기념하고 있었는데

그 기념이 새로운 열림을 지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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