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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Mar 25. 2022

길 위에서

 여행? 여행!



울라퍼 엘리아슨의 <우주 먼지 입자> 



조금 걸었더니 대나무 숲길이 나온다. 

그리 길지는 않지만 가느다란 대나무들이 서로 함께 하며 아늑한 풍광을 내뿜고 있다. 

길 곁으로는 직소폭포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편안해 보이는 자그마한 돌팍 위에 앉아 한참 물소리를 들었다.

 문득 물소리도 사람의 얼굴처럼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여린 물줄기들은 이미 저마다의 소리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물방울들이 만날 때 자신만의 소리는 또 달라질 것이고 

그 수많은 결이 물길을 걸으며 다른 사물과 합일하여 내는 소리들, 

그러니 얼마나 수많은 소리가 생겨날 것인가, 

우주가 침묵하듯이 헤아릴 수 없는 소리를 지녀서 저리 무심하게 흘러가는 것인가, 

사실 헤아릴 수 있는 것들이 세상에, 혹은 삶에 얼마나 있으랴, 

그저 아는 것처럼 이해하는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갈 뿐이다. 


여행을 가도 날씨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흐리면 흐린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비 내리는 날은 더 할 수 없이 좋다.

‘잃어버린 시간’에서 마르셀 푸르스트가 그러질 않았던가,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지니는 것에 있다’고, 

이제 감히 말해보자면 적어도 나는 새로운 눈을 지니려고 애쓰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풍경은 저기 他者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시선만의, 내 안의, 나만의, 작품이라고, 

그대와 나의 관계라고, 


만경평야와 김제평야를 의미하는 새만금방조제 길은 놀라울 만큼 길었고 끝없는 직선의 연속이었다.

바다를 막은, 그래서 양쪽에 바다를 두고 달리는 일은 매우 신선했다. 

직선은 효율의 사령탑이다.

자연은 정반대로 효율과는 전혀 상관없이 거의가 다 곡선이다.

나뭇가지들도 직선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저 나름대로 휨의 세상이다.

지구가 둥근 선으로 되어 있듯이

세상의 모든 나라와 강, 그리고 바다와 섬들은 다들 둥근 선 안에 있다. 

그러니 곡선과 직선은 참으로 의미심장해서

마치 경제와 철학이거나 혹은 아름다움과 예술처럼 같아 보이나 전혀 다른 길이다. 

그러니까 움푹 패이고 다시 튀어 나오는,

강이 흘러와서 바다로 스며드는 강물의 길을 

혹은 강물을 맞이하러 내륙 속으로 깊이 다가오는 바닷길을 메워서 땅을 만드는 일은 

사실 조악한 일이기도 하다. 


고군산 군도의 시작 야미도에 들어섰을 때 안개가 먼저 다가왔다. 

섬의 공간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대신 안개는 섬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어주었다. 

으슴푸레한 육지와 바다의 결이 맞닿은 듯 하나가 되어갔고 지평선과 하늘 역시 구별되지 않았다. 

무녀도 신시도 선유도를 천천히 지나면서 구부러진 섬의 길을 헤매고 다녔다. 

목적 없이 어슬렁거리며 걸었다. 

길은 사실 목적이 아니라 어떤 과정의 것이다. 

결말이나 목표가 아닌 그 어디쯤, 

그러니 여행의 목표는 결국 과정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여행은 눈을 더하는 일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 나 아닌 타인을 바라보는 눈, 

가끔은 내가 내가 아닌 타인이 되기도 하는 시점,

바람을 느끼고 계절을 품으며 삶을 해석하는 눈이 더해지는 일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이런 눈이 꼭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행위가 있어야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즈음 밤이 깊을 때 가끔 도서관을 간다. 

책을 반납하거나 빌리기 위해서도 가지만 밤이 주는 고요속에서 걷는 일이  좋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적막을 이겨내는 추위가 승해서 못하던 일을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때부터 시작한 일이다. 

육교 하나를 건너면 정발산 옆으로 도서관 가는 길이 펼쳐진다. 

환한 공원길보다는 조금 어둑하다. 

밤이면 거의 사람이 없어서 어둠이 주는 적막에 적막을 더하는 길,

거기 어디쯤 서있는 목련나무를 올려다 본다.

따스한 햇살로 포식을 했는지 살이 통통 올라 마치 백일된 아이 젖살 오른것처럼 사랑스럽다. 

살짝 북쪽으로 향한 봉오리 끝은 금방이라도 하얀 꽃잎이 솟아나려는 듯 *요이 땡! 하고 있다. 


깊은 밤이면 도서관은 거의 비어있다. 

빈의자가 많은 도서관은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과 비슷한 풍경이다. 

환한 실내와 대비되는 어두운 거리, 

사람들은 함께 또는 홀로, 혹은 자신의 일을 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허락된 것은 외로움이다.

무심한 밤은 환한 도서관까지 들이차는데....... 

동네에서 하는 밤의 여행도 묵직하다. 


                                           *시작의 전라도 사투리 


쿠사마 야요이의 <지나가는 거울>속에서


                              의정부로 이사가고 싶게 만들던 의정부 음악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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