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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Mar 22. 2022

대홍수 후의 아침

윌리엄 터너

 대홍수 후의 아침, 창세기를 쓰는 모세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1775–1851), 1843년 전시

                                         테이트미술관 소장. 터너 유증 재산의 일부로 1856년 국유화>


 


바다와 강이 만나 염분의 농도가 다양해서 여러 생물이 살 수 있는 곳을 기수역이라고 하는데 

바로 우리 동네 장항습지가 그곳이다.

몇 년 전 군인들이 호위(?)하는 가운데 습지 탐방을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그곳에서 말똥게와 버드나무

(미국에서 건너와 미루나무라고도 불린다)가 열심히 사랑하고 있었다. 

버드나무 잎이 떨어지면 밀물, 사리 때에 들이찬 물에 젖어 말랑말랑해지는데 

그 잎들을 말똥게가 먹고 버드나무는 말똥게 배설물로 영양을 섭취한다는 것, 

그래선지 장항습지는 국내 최대의 버드나무 군락지이다. 

나이 때문일 것이다.

 슬프게도 이제 사람에게서 떨림을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대신 자연의 모습이나 예술에서 가슴이 와랑거린다.

어제 일몰 무렵 구산동을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버드나무 숲이 살짝 변해 있었다. 

앙상했던 가지들에 움이 솟아선지 우듬지 주변이 형언키 어려운 모습으로 부드러워지고 

누르스름한 색이 아우라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 속으로 옅은 어둠이 물빛처럼 스며들고 있었는데.... 아, 심쿵했다.

 현묘한 순간의 빛, 딱 그 순간이 빚어낸 색의 향연, 그래 ‘빛이 있으라!’ 하셨지. 


빛이라는 주제로 북서울 미술관에서 테이트 미술관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괴테는 색에 관해 깊이 탐구했는데 그는 색이 물리적 생리적 화학적 특성 외에도

감성과 도덕성, 색의 언어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 놀라운 이론은 인상주의와 추상미술을 선도해 내는 길라잡이가 되었다. 

특히 빛의 화가로 불리는 윌리엄 터너는 괴테의 색채 이론에 경도되었고 

그의 이론에 입각한 작

 ‘음’ 혹은 차가운 색깔의 '그림자와 어둠'에서 인류를 멸망시킨 성경 속 장면을 묘사했다.

대홍수 후의 아침, 창세기를 쓰는 모세’라는 작품에서는

 ‘양’, 즉 (빨강 및 노랑 계열의) 따뜻한 색깔을 사용했다. 

터너는 빛과 색만으로 지구를 나타내는 듯한, 

혹은 지구의 대기, 혹은 태양 빛이 비치는 둥금 속에서 빛과 어두움만으로 홍수를 표현해냈다. 

물인지 하늘인지 알 수 없는 옅은 블루가 살짝 드리워져 있을 뿐이고 오히려 세상은 빛으로 가득하다. 

하단의 어두움은 환한 빛이 불러온 그림자일 뿐이다. 

아라랏산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 주변의 사람들은 빛의 광채 속에

 오히려 주님을 찬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두 작품이 북서울 미술관에 걸려 있다.

 심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많은 작품을 남기며 ‘영국의 국민 화가’로 불리는

터너의 첫 전시장은 아버지가 경영하는 이발소였다.


정신분열증 증세가 있던 터너의 어머니는 터너가 어릴 때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소년 터너의 그림을 이발소에 걸어놓고 팔았다. 

어려운 환경 탓에 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웠고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천재적인 실력으로 26살에 아카데미 정회원이 되고 영국 왕립미술아카데미 교수가 되었다. 

그가 연구한 원근법과 빛의 명암, 반사효과 표현 등 수업을 위해 준비했던

드로잉 작품도 전시회에 있었다.


윌리암 터너를 실제 주인공으로 한 ‘미스터 터너’라는 영화를 보면 터너는 매우 고독한 사람이었다. 

수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찬사를 받을 때도 그의 표정은 권태롭고 외로워 보였다. 

노을 지는 언덕에 서서 그림을 그릴 때나 자연 속에 홀로 있을 때 

오히려 터너의 모습은 가장 평온해 보였다.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자주 방랑을 떠났던 터너, 

여행을 가서 그린 수백 권의 스케치북은 그의 작품의 원천이었다.

 보이는 것만을 그린다는 모토가 있던 터너, 

파도와 폭풍이 한 덩어리로 뒤섞인 ‘눈보라’는 

실제 터너가 배의 돛대에 자신의 몸을 묶고 바다에 나가 직접 폭풍우를 체험한 뒤의 그림이다.

현대판 오디세이다. 

터너가 남긴 빼어난 작품과 흠 많은 인간성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터너는 일평생 자연을 묘사하는 데 탐닉했지만, 

후기로 갈수록 대상의 세부 묘사에 주의를 기울이는 대신 빛과 색의 효과를 포착하는 것에 집중했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정교한 풍경화를 그리는 대신

새로움에 대한 예술적인 도전으로 빛과 색채에 대해 깊은 연구를 했고

 후기 작품에 해당하는 ‘대홍수 후의 아침, 창세기를 쓰는 모세'는 

터너의영감에 찬 진술이라고 할 수 있다. 

빛과 공기는 주위를 환기할 뿐 아니라 감정적인 교류를 일으킨다.

 홍수 후 자연의 대기가 일으키는 빛의 소용돌이는 작가의 영성을 담은, 

새로운 역사에 대한 아름다운 서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세는 그 소용돌이 가운데 어디쯤서 필을 들고 창세기를 기록하고 있다. 


동시대 예술 평론가 존 러스킨(1819~1900)은

‘터너의 그림은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알려준다’고 극찬했다.

 릴케의 말 “나는 터너의 작품과 내면의 대화를 나누는 것을 멈춘 적이 없다” 

혹자는 실제 터너를 최초의 현대 예술가라고 칭하기도 한다. 

영국 최고 권위의 미술상인 터너상은 조지프 말리드 윌리엄 터너의 이름을 딴 상이다. 


여담이지만 북서울 숲 전시회에 가면 터너 외에도 

윌리엄 블레이크, 존 컨스터블, 아니쉬 카푸어, 울라퍼 엘리아슨, 제임스 터렐과 바실리 칸딘스키등 

빛나는 작품을 대할 수 있다.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인 함메르쇠이의 

‘실내, 바닥에 햇빛’(1906)을 보는 순간 마음속에 요동치는 희열은

 적어도 몇 달 동안 나를 생기 차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 작품과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필립 파레노의 카펫,

 창문을 뚫고 들어온 빛이 바닥에 만들어 낸 격자무늬 그림자를 나타낸 작품,

 ‘저녁 6시’ 위를 걷기 위해 한 번 더 갈 것이다.  (교계신문 연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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