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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Apr 13. 2022

88살과 97살의 봄

울엄마


****

월요일 목요일은 울엄마 학교 가시는 날이다. 

허리는 할미꽃처럼 굽으시고 다리는 오자형으로 휠만큼 휘셔서 나보다 크시던 키 나보다 더 작아지셨지만 

그래도 벚꽃처럼 환한 웃음 지으시며 나가신다. 

주황빛 아주 밝은 쟈켓에 브로치를 다셨다. 

잘 않던 브로치를 엄마 하셔요 하니...

“아이고 이라고 이삔 것을 내가 달아야” 하시더니 옷을 바꿔 입으셔도 브로치는 잊지 않으신다. 

연분홍색 실크 스카프 목에 걸치시고 담휘가 버리려던 초록색 도톰한 면 후드쟈켓으로 

엄마 맘대로 만드신 이 세상 단 하나뿐인 가방 드셨다. 

“이것이 가벼웅께 제일 좋아야, 색깔도 쌕쌕하고.” 

가방 안에는 규서가 준 예쁜 천 필통에 골고루 펜도 넣으시고 노트와 일본어 책과 프린트 물이 들어있다. 

아주 성실한 학생 가방이다.

 전동 휠체어에 가방 걸고 능숙하게 운전하시며 덕양구 노인복지센터에 가신다. 

십리가 훌쩍 넘는 거리인데 여기저기 꽃구경하시며 

‘학교 종이 땡땡땡’ 종소리라도 들리듯 공부하러 가신다. 

겨울에는 추워서 좀 빠지셨는데 이즈음 봄이 되니 아주 즐겁게 오가신다. 

머리 곱게 빗으시고 분도 살짝 바르시고 손탄다고 장갑도 끼시고....

진달래 같은 연분홍색 모자도 꼭 쓰신다.

지난주엔 소녀처럼 발그레한 볼을 하신 채 돌아오시더니 말씀하셨다. 

“아야, 내가 오늘 생각해봉께 세상에 을마나 좋고 감사하거시냐. 

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내가 이라고 학교를 댕긴다니, 

느가부지가 나를 무시한 것도 다 학교 탓 아니겄냐. 

느가부지는 일본에서 공부를 많이 해각고 읍장까지 하신 분인디 

나는 겨우 언문이나 깨쳤으니 댈 수도 없이 무식한거제, 

학교 가보믄 모다 공부를 많이 한사람들 가터야. 

다들 멋쟁이고, 질문도 하고 근디 나는 질문은 절대 못하제, 

그냥 가만히 듣제, 

오늘 같은 반 으뜬사람이 글드라. 

나보고 일제때 공부를 엄청나게 많이 하셨나 보다고, 

그래 내가 그랬서야. 학교를 그라고 가고 싶었는디 울아부지가 못가게 해서 

학교 문턱도 못가고 야학에서 글자 배운 게 다라고, 

그 사람이 놀라드랑께....

왜 안그라것냐 나처럼 무식한 늙은이가 학교를 다니다니 

아마 내가 노인학교서 젤로 나이가 많을 거라고 글드라.” 

“맞어 엄마 그것 엄청 자랑스러운 일이여, 누가 엄마처럼 나이 드셔서 공부하러 다니시겠어요. 88살 학생 없을걸요. 

근데 선생님 설명을 이제 좀 아시겠어?”

 “삼 년 아니냐, 학교를 다닌 것이. 인자 문법이 머신지 째깐 알겄드란 말이다. 형용사 동사가 잘은 몰라도 쪼금은 알아,” 

“우와 울엄마 대단하시네”

“아이고 내가 니한테 와서 살 생각은 꿈에도 안했는디 

니가 해준 밥에 깨끗이 빤 옷에 따땃한 물로 날마다 목욕하고. 

거그다 내 좋아하는 학교까지 이라고 다니다 봉게....

오늘은 을마나 하나님께 감사한지... 

이 부족한거슬 이라고 사랑해주시다니, 

전동차 타고 옴시롱 내내 기도하고 왔다. 

전동차도 고맙고, 

니가 막내기도 해서 그랬제만 니를 참말로 느가부지랑 이뻬했제, 

니는 열 살이 넘어서도 품에 폭 앵겟당께, 

니 큰오빠는 세 살됭께 뻣뻣해서 안앵기등마. 

니 그라고 이뻬하고 젖미겨 키운 것, 인자 나한테 다 갚았다.”

‘이젠 불러도 대답 없는 엄마’ 

얼마 전에 엄마를 잃은 지인의 카톡에 떠 있던 말이다. 

오늘 엄마 불러서 대답할 이 계시니.....이 얼마나 그윽한 봄날인가.

***** 

올해로 울엄마 허순덕 권사님은 97살이 되셨다.

 88살 때처럼 학교를 다니시거나 먼데 외출은 못하시지만 

여전히 막내딸보다 좋으신 총기로 아침 일찍 일어나 기도하시고 핸드폰 유튜브로 새벽예배를 드리신다. 

무엇보다 내 글의 찐 팬이시다. 

“아야 니 글은 첨엔 잘모르겄다가도 두 번 세 번 읽으믄 알겄서야.”

엄마 88살에 하셨던 말씀을 복기했던 이 글을 읽으시면 뭐라 하실까? 

엄마 울엄마 허순덕 권사님 사랑해요! (교계신문 연재글)


<오늘 모이라고 한것은 다름이 아니라....

외로워서야>

외롭다는 데 왜 웃음이 나왔을까, 

사진은 전부 양주 장욱진 미술관 오늘 사진 

장욱진 드로잉전에서 수상한 젊은 작가의 작품들이 아주 신선하고 좋았다.

외로움도 그중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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