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영 May 04. 2022

내방여행

횡성



유튜브로 브루투스를 연결해놓고 

연주회 실황을 자주 본다. 

특히 컴 앞에서 글을 쓰려고 할 때 

그날 그 시간 마음에 드는 음악을 찾느라

 한참을 보낸다. 

나만의 예식이라고나 할까, 

당연히 운전할 때 즐겨듣는 

팝이나 유행가는 아니다. 

좋아하는 잔나비 노래나 

이승윤이 부르는 'J에게' 

임재범의 '너를 위해'를 들을 수는 없다.

 한지에 먹물 스미듯 노래가 스며들어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만큼은 

음악과 거리가 있어야 한다. 

음악은 음악대로 자기 갈 길을 가고 

나는 나대로 내 할 일을 하는, 

한방에서 같이 있되 서로를 터치하지 않는 

공존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자주 음악으로 들어선다. 

글이 안될 때, 

음악이 클라이맥스로 향할 때 

그리고 오늘 아침처럼 선우 예권이 

알레그로 삼 악장을 연주하는데

 아무것도 바르지 않는 머리카락이 사방대로 나풀거리며 움직이고.... 

아이참 그 모습이 피아노 소리보다 더 예뻐서 한참을 넋 잃고 바라보았다. 

땀은 내겐 무척 더러운 것 중의 하나인데 선우예권의 땀은 하나도 더럽지 않다.



지난주에 횡성 숲체원을 산책했다. 

무장애길을 걸어가는데 그곳은 강원도라 봄이 조금 늦는 것인지 나무마다 이제 갓 새순이 올라오고 있었다. 

주욱죽 뻗은 기다란 나무들 사이로 연한 새순이 돋으면서 그들 모두가 형용키 어려운 합일의 색을 펼쳐냈다. 

물론 겨울 숲도 아름답다. 

이미 나는 겨울 숲의 아름다움을 사랑한다고 무수히 공언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봄의 숲, 

저 여린 순들과 꽃들이 

오래된 나무와 함께 합일하며 지어내는 

경이로운 색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으랴, 

실제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청마의 시가 떠올랐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는 것보다 행복하니라 /오늘도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가에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이 나이가 되어보라. 

젊을 때의 연애가 겨우 사람, 이성에 한한 것이라면 나이가 주는 여유는 수많은 존재에 대한 연애를 불러온다.

그러니 경이로운 숲의 색에서 내가 청마의 시와 그리움을 떠올린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청마의 시는 그리움에 대한 다른 표현이다. 

그리움은 그가 누구이든 중요하지 않다. 

그리움은 사랑보다 진하고 깊으며 우아하다. 

어쩌면 그리움은 삶을 가장 풍성하게 만드는 묘약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숲은 숲을 바라보고 있는 그 순간 이미 나를 자신의 포로로 만들면서 

바라보면서 그리워하게 만들더라는 것이다. 










숲체원에는 자그마한 개울을 끼고 비밀의 숲이 있었다.

 작은 것을 보지 못하는 눈은 그 개울로 들어가는 자연스러운 문을 지나쳐 가기에 십상이다. 

나는 작은 것들과 눈맞춤 하기에 바빠서 지인들과의 산책에서도 언제나 혼자 걷게 된다. 

그러니 혼자 발견하고 혼자 들어선 길이었다. 

크지 않지만 작은폭의 개울은 이 숲을 위한 생명의 시원을 담고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고요한 숲에서 들려오는 야트막한 개울물 소리 그

리고 가끔 우짖는 이름 모르는 새소리들은 적막과 고요의 진실한 모습을 깨닫게 해주었다. 

앉은 부처의 커다란 이파리는 마치 꽃의 주검을 커다란 모습으로 애도라도 하듯이 화려하고 거나한 자태로 여기저기 솟아나 있었다. 

세상에 내 생에 그렇게 많은 얼레지는 처음이었다. 

얼레지는 프리마돈나다. 

무대 위 프리마돈나는 처음 고개를 숙이며 팔도 앞으로 모으고 발가락을 세워 천천히 무대 위로 나서다가 

어느 순간 한껏 몸을 펼쳐 도약하지 않던가, 

얼레지도 그렇다. 

한껏 오므리고 있다가 프리마돈나처럼 어느 순간 활짝 온몸을 연다. 

여는 것만으로도 부족해 온몸을 뒤로 활짝 열어젖힌다.

 그래도 연분홍색 수줍음을 잃지 않은 채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다.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는 거니, 

아름다움은 경건함을 품고 있다. 

절대의 순수가 빚어낸 존재. 

처음 알현한 나도 개감채도 그랬다. 

수수한 이파리와 옅은 흰빛의 수수한 꽃의 자태는 저절로 ‘아 주님이 만드셨지요.’ 탄식을 내뱉게 했다. 

 샛노란 동의나물, 피나물 괭이눈 박새, 바람꽃 꽃진 자리, 

채 피지 않는 삿갓나물 등 흔하게 볼수 없는 야생화를 가득 품고 있는 비밀의 화원. 


이상하게 요즈음 음악을 듣다가 혹은 보다가 연주자들의 연주하는 모습이나 표정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마치 그들이 처음 본 야생화나 나무꽃이라도 되듯이 그렇게 자세히....

그러면 음악이 나에게 더 잘 스민다고나 할까, 

몸짓과 표정 손가락이 팔이 연주를 이해하는데 더 많은 음표를 인식하게 한다고나 할까, 

차이콥스키 피협 이 악장이 끝날 무렵 살짝 음이 느려지는데 선우예권이 지휘자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의 여행 그런대로 괜찮았죠. 당신도 아주 완벽히 잘해주셨어요. 마지막까지 잘해보자구요. 화이팅, 

어머 그 미소의 이야기를 나만 들은 걸까,


오월은 고해의 시간/사방에서 용서가 몽글거리며 솟아나고 있지 않은가/ 

저 수많은 봄꽃들과 새순은 나무의 몸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망각과 용서에서 피어난 것이네/

봄의 기운은 너그러워 날카로운 기억을 잠재우고 다독이네/ 

지난해 가을 수많은 잎과의 별리는 나무에겐 참으로 깊은 상처였네/

차가운 겨울바람에 맞서며 추위도 잊을 만큼 나무는 생각에 잠겼네/그

러나 봄바람은 나무의 사유를 잠재우고 나무의 사랑을 깨웠네/

꽃들과 새순의 부활은 /나무의 잊음에/나무의 용서에 /나무의 사랑에 기인되어 있다네/

마음보다 사랑이 이겼네(W.young)




작가의 이전글 수수꽃다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