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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May 09. 2022

소설가의 영화

홍상수



다운받아 놓은 노래들을 커다랗게 틀어놓고 

뻥 뚫린 자유로를 달려서 명필름 아트를 찾아가는 길, 

흐려도 좋고 맑아도 좋고 비가 오면 더 좋다. 

영화 보러 가는 길이 아닌 자유로움을 만끽하러 가는 길이라고나 할까, 

차 타는 시간부터가 내겐 화양연화다.


길에는 이팝나무 꽃들이 무리 지어 하얗게 피어나있다. 

절정의 꽃들은 아련한 슬픔을 는개처럼 내뿜기도 해서 설핏 는개에 젖기도 한다.


영화 두 개를 연속으로 봤다. 

예매해 놓은 티켓을 받아들고 한 층 위 카페에서 연유 라테를 마시면서 

모아놓은 책 구경을 한다. 

자투리 시간이기 때문에 읽어야 할 부담이 전혀 없는 온전한 책 구경,

시간이 좀 넉넉하면 화집 같은 것을 집중해서 보기도 한다. 



아쉬운 것은 명필름 옆쪽으로 빈 공터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 

아무 풀이나 주인인 듯이 솟아나 있는 모습이 당당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는데

세련된 건물 안에서 자연스러운 자투리땅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컸는데 

땅도 사람처럼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건강한 땅이 될 텐데

이렇게 온통 건물이 들어서면 땅은 어떻게 호흡을 할까,

그래도 우리나라에는 산이 많으니 

사람이 숨을 쉬려고 산을 오르듯 땅도 산 쪽으로 가서 호흡할지도 모른다.


홍상수감독의 ‘소설가의 영화’ 그리고 에릭 로메르의 ‘가을 이야기’를 보았다.

지난주에는 에릭 로메르의 ‘봄 이야기’를 보았고 ‘여름 이야기’는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봄 이야기’처럼 ‘가을 이야기’도 집중해서 보았지만 글로 쓰고 싶은 것은 ‘소설가의 영화’다.


흑백영화. 

시작되면서 드는 생각, 흑백의 고급함은 단순화에 있을까, 

색들 속의 결이 빚어내는 난삽한 나타남을 흑백은 감춤으로 우아해지는 것일까, 

영화로 집중하게 하는 미덕, 

혹 오래된 나무기둥이나 기와를 바라볼 때처럼 

아련한 옛 영화에 대한 기억의 발화때문인지도 모른다. 

줄거리는 홍상수 영화가 언제나 그렇듯 유별난 것은 없다.


아 그 <유별남 없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준희(소설가 이혜영분))는 아주 사소한 한 장면을 영화로 찍고 싶다고 한다.

길수(여배우 김민희분) 아주 좋아라 하면서 자신에게도 딱 그와 같은 경험이 있다고 그래서 좋다고 한다.

곁에 있던 시인은 

"아 그래도 뭔가 강렬한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고.....그래서 이야기는 이야기 같다고 하는 거야. 가령,” 

그러나 준희는 시인에게 그 이야기(생각)를 하지 말라고 한다. 

시인은 나와 같은 일반인이고

준희는 홍상수며 길수는 홍상수의 배우다.

살찐 후배에게 준희가 하는 말, 자연스럽다는 말에 좀 웃었다. 

그렇지 나이들어 살찌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 

전에는 읽어야할 책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자유스럽게 ‘땡기는 책’을 읽게 되더라는 

서점주인의 말도 공감했다. 

“그래, 그렇지,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어 그러니 다가오는 책을 읽으면 돼,”

요즈음 내가 그렇다.  


이번에 홍상수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 하나는 

그가 어색한 침묵을 어색하게, 아주 자연스럽게 잘 어색을 그리더라는 것, 

침묵이든지, 표정이든지, 기타 등등 상황이든지 뭐든 사용해서 

가감 없이 아니 오히려 도드라지게 어색을 잘 보여주더라는 것, 

그리고 그들의 자연스러운 어색함을 보고 생각하게 되더라는 것, 

어색함은 싫은 순간 중의 하나인데 그래서 거의 모든 사람이 맞어루리지 않는 말이나 

회피 혹은 시선 돌림으로 그 순간에서 도망치는데 

영화도 그렇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리고 나도 실제적으로 그 어색함을 직시한 적이 없는데


소설가가 그것을 직시하더라는 것,

그리고 그 어색함이 사실은 진실이라는 것, 

상대방에게 강한 질문을 함으로 상대방 조차 다시 그 어색함에 빠지게 하는 준희,

카리스마요? 그게 뭔데요? 

그러니까 사소하게 두루뭉술 쓰는 단어가 어색함을 피하기 위한 도구라면

준희는 다시 그 도구를 불러내서 어색한 상황을 시작한다는 것, 


“투자자가 대빵이죠.” 

“비싼 렌즈”

대빵과 비싼, 

준희의 소설로 영화를 만들다가 파투낸 감독은 

이 두 단어를 쓰는데 그 단어가 그를 한순간에 

유명해지고 돈을 벌기 위해서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던, 

감독을 천박하게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어느 감독이 돈을 싫어하며 유명을 멸시하며 

좋은 영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인가, 

상류층들은 근본적으로 넉넉한 상태에서 일을 하니 피땀 흘려 일하는 것 같지 않아서 

여유가 있어 고급해보이고 

가난한 흙수저들은 땀을 흘리며 일하니 그 땀이 천박한다는 도식은

나의 지나친 감도에 의한 오류일까,  


공원 화장실 앞에서 준희와 길수 그리고 영화를 공부한다는 길수의 조카가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잇다. 그리고 화장실 문에 달린 유리창은 계속 그런저런 장면들을 보여준다.

 지나치게 계산하지 않는 감독의 의도로 보아서는

우연일 수도 있는데 대화와 사유의 한 장면으로 읽혀 졌다. 

대화를 하고 잇으나 그 대화보다는 수시로 치고 들어오는 딴생각.

길수가 아이를 보러 간 사이 길수가 먹다 둔 비빔밥을 준희가 먹는다.

길수를 먹고(?)싶은 

감독의 어떤 의중을 나타낸 장면일까? 


영화 초반 수어를 배우는 장면은 

삶을 은유하는 인상적인 문장으로 더욱 아름다워졌다. 

배우 혼자 영화를 보는 장면과.

그 이전엔 두명의 영화비평가가 관람을 했던 과장없는 서사가 눈에 띄었고 

영화관 옥상위는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소설가의 영화가 상영될 때 흑백으로 나와 

어머 칼라로 하면 액센트가 되었을텐데...

이런 평범한 생각을 무시라도 하듯이 흑백이더니 

어느 순간 살짝 칼라로 바뀌었다.

길수의 미소....

사실 백치미를 한번도 느껴번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영화속 길수가 들꽃을 들고 웃는 장면.....을 보며

 아 저게 백치미구나. 나혼자 여기기로 했다. 


그런데

정말, 과연 , 이다지도 ,  이렇게,  

자연스러운 영화가 어디 또 있을까,

이래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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