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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May 29. 2022

여백

나만의 여행

언제부턴지 나만의 여행 지론이 생겼다. 

세상 모든 ‘것’과 ‘일’ ‘상황’을 여행으로 환치시키는 것, 

논리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저절로 그리되어버리는 습속이 되었다.  



바로 길 건너 정발산은 너무나 익숙한 길이지만 시절과 때, 

그리고 풍경을 바라보는 나의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의 풍경이 나타난다.  

벚꽃 피어난 길과 귀룽나무 피어나는 길을 어찌 같다 할 수 있으랴.  

조금만 샛길로 들어서면 거기 전혀 보지 못한 낯선 정경이 펼쳐진다.   

눈 밝은 모네가 빛 때문에 옷을 바꿔 입으면서까지 수없이 그리던 생라자르역이나 

세잔이 날마다 화구를 매고 가서 대하던 생빅트와르 산이 내겐 바로 정발산인 것이다.

비록 그들처럼 명화를 창조해내지 못하더라도 그러면 또 어떤가, 

나처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되어서 그들을 예찬할 이도 필요한 것을,   



가령 토요일 아침 이십 분 정도 걸려서 영화를 보러 명필름 아트를 찾아가는 길,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자유로를 달리면 

두려움을 주는 장엄한 자연의 풍경 앞에 서는 것이 아닐지라도 매우 매우 괜찮다. 

일탈이요. 범속을 떠났으며 그래서 자유다. 

어제 토요일 

‘영화는 밤에 자는 낮잠과 같다’라는 시 귀절을 제목으로 

출판도시 인문학당이 명필름에서 있었다. 

단편영화 세 편을 보고 박준 시인이 짤막한 강연을 하는 프로그램.

<이름들><전학생><겹겹이 여름>이라는 영화

이름도 처음 들어봤고 주인공들도 바로 우리 이웃집 사람들 같은, 

그러나 詩人, 그리고 詩를 매개로 한 참 문학적이면서 참 소시민적인 영화였다.

어디서 저렇게 진실하고 소소하며 그러나 아름다운 사람들을 내가 만날 수 있겠는가,

내가 직접 그들을 만난것보다 더 섬세하게 그들이 알아지고 느껴졌다.  

박준 시인의 시집을 읽어보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가끔 보게 되는 그의 시집일지 시어가 너무도 감성적이라

나이라는 굳은살이 가득 박힌 내겐 연약한 어린애처럼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가 말한 두 문장을 대비시키며  

<가을이다> <풍요로운 가을이다>

즉 묘사가 주는 한계를 이야기할 때 쏙 마음에 들었다. 

묘사는 여백을 지우는 단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 



얼마 전 어떤 만남에서 나에 대해 좋지 않게 말하는 사람의 말을 전해 들었다. 

내게 보인 그 사람의 태도와는 매우 괴리된 이야기라서 처음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지만 

역지사지라는 미로를 통해 생각하다 보니 ‘나라도 그럴 수 있겠네’ 삭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지점에서 사람들 사이의 신선한 구석을 발견하게 되더라는 것, 

이 또한 매우 색다른 여행 아닌가, 



책은 이미 내겐 이즈음 유행하는 실감 영상이다. 

내가 알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知의 여정이자 비경祕境의 여정이다.

요즈음 스탕달의 ‘적과 흙’을 다시 읽고 있는데 젊은 시절 독서와는 확연하게 달리 

줄리앙 소렐의 연애 이야기가 재미난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잘 보여서일까,   



여행홀릭 심리학자 제이미 커츠가 가 쓴 ‘행복한 여행자로 사는 법’에서 

스테이케이션 staycation이 나온다.  

몸은 집에 머물지만 정신은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활동성을 가미해야 하는 여행이지만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구체적인 활동을 하지 않아도 

나는 이미 스테이케이션을 날마다 잘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삶을 여정으로 바꿔 읽게 되면 거기 놀라울 만한 객관화가 생긴다. 

객관화는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여백이다. 

여백은 작품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특히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도 존재한다. 

나와 당신 사이의 여백은 

우리에게 여유를 혹시 아름다움을 부여해 주지 않을까, 


사진은 전부 강화 교동도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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