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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un 06. 2022

여기저기 기웃기웃

대구에서





아들 집을 리조트 삼아서 대구 주변 도시를 기웃거리는 여행을 닷새 동안 했다. 

가는 길에 옥천 수생식물 학습원엘 들렀다. 

입구에서 정성 들이고 돈 들여서 심어놓은 입구의 자잘한 꽃들에 실망했다. 

이런 짓은 안 해도 되는데..... 도심 길가에도 가득한데..... 

그렇지만 천혜의 지형이었다.  

충주 호수의 반도. 

독특한 검은 돌이 크게 자리해서 특이한 정경을 지어내고 물은 그곳 땅을 둥글게 감싸고 흘렀다. 

물 건너의 아름다운 정경들조차 이곳의 풍경화가 되었다. 

데크를 놓고 나무를 기르고....힘들었겠네. 

가파른 절벽에 피어난 꽃 이름이 기억이 나질 않아서 애를 태우다가 

결국 네 번째 만났을 때서야 생각이 났다. 

<백선> 오, 생각이 나다니 제법인데? 나를 칭찬해주었다.


아들네 집에 집을 풀어놓고 이른 저녁을 간단히 먹은 뒤 

바로 이웃해 있는 불로동 고분 터로 산책을 나갔다. 

오래된 무덤이 주는 정한이 경주의 거대한 능들과는 다르다.  

동글동글한 모습을 지닌 크고 작은 무덤들이 270여기나 있다. 

재미있고 포근한 느낌으로 안녕하시오? 안부를 묻고 싶은 자태들이다. 

4~5세기경 삼국시대 때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 틈에 사람들이 무덤을 만들었는지 

고분이 아닌, 무덤 파가라는 팻말이 서 있었다. 

오래된 무덤과 새 무덤들이 지어내는 유머처럼 여겨졌다. 

해가 저물어가며 하늘이 분홍빛으로 물들어갔다.  


        

아침 저녁은 아들과 함께 집밥을 해 먹고, 낮에는 여행지에서 가성비 높은 맛집을 찾는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아주아주 소박한 여행이다. 

너무 멀게 다니면 피곤하니까 한 방향을 잡고 두 시간 이내의 거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많은 곳을 가려는 욕심도 내지 않는다. 

찾아간 곳이 마음에 들면 그곳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생각에 미치지 못하면 훌쩍 다른 곳으로 떠난다. 

가는 길 자체가 이미 여행이다.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길에는 우리 차 뿐이다. 

속도를 푹 낮춰서 거의 걷는 것처럼 풍경을 보며 느리게 다닌다. 

그러다가 뒤에 차가 나타나면 앞서가라며 깜빡이를 넣고 길가에 살짝 멈추어 선다.

하늘을 가리고 산을 가리며 바람조차 흐르지 못하게 하는 아파트가 없으니

세상은 그 자체로 이미 온통 고요하고 그윽한 여행지다. 

신록을 지나 녹음으로 들어가는 경계, 화양연화다.  

합천 쪽으로 방향을 잡고 떠난다.

작약이 가득 피었다는 합천의 핫한 들. 핫들, 

작약은 한약재로 요긴하게 쓰이는 식물이다. 넓은 들에 색색의 작약들이 가득하다.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꽃 피워내는 재주가 많은 듯, 작약의 세상이다. 

무리 지어 한도 없이 피어난 꽃들은 어여쁜 게 아니라 신기하다. 

꽃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꽃들의 덩치에 감탄하게 된다.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지닌 부를 바라보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오래 머물지 않는다. 

여행지 검색을 할 때 나무 검색은 필수다. 

묘산면 화양리 소나무.....소나무로 라는 이름도 있어 길이 편하려나 했더니 마지막에는 아니다.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생각하게 했다. 

그러다가 나무가 보였다. 저기다. 멋진 나무들은 멀리서 보아도 그 위용이 남다르다. 

넓은 들판에 홀로 서 있는데 오메~세상에! 유구 무언이다. 

장쾌하다. 우아하다. 거대하다. 아름답다. 그리고 여전히 싱싱하다. 

수피조차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어느 누가 이런 몸피를 조각해낼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가지를 자태를..... 

잘생긴 나무 한그루는 어떤 거대한 풍경 못지않다는 게 내 지론이다. 

내 인생의 나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폐해도 있었다.

너무나 근사한 나무를 알현 후 웬만한 나무들이 그저 시시하게 여겨지더라는 것, 

경산의 반곡지 그 기괴한 느낌의 버드나무들도

우포늪 버드나무 숲에서도 아, 오, 괜찮네, 멋지네, 감탄하긴 하는데

그 감탄 속에 묘산면 화양리 소나무가 슬며시 끼어들어 심드렁한 기가 어리더라는 것,    



 






해인사 소리길을 지나갔다.

여전히 절 주변 모두가 절 것이라는 듯, 

절은 상기도 먼데,  

국립공원 표지 조금 지나서 매표소가 있었는데 마치 고속도로 톨게이트 같았다. 

주차료와 입장료를 받고 있었는데 정말 웃긴 것은  

대한민국 공식 시니어 나이 65를 지우고 

70으로 고쳐서 70살까지 돈을 받더라는 것,

돈독 오른 절의 모습이 참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서 

세상에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터를 박고 수행을 하며 사는 이들도 이럴진대 

속세의 우리가 무엇을 배우리. 끌끌 혀를 차게 되더라. 

수려한 나무와 숲속에 담겨 있는  절을 여기저기 둘러보고 

다시 내려오는 길이었다. 

정자가 보이는 듯 하고 소나무가 보이는데 촉이 왔다. 

마침 얼마 지나지 않아 차를 세울만한 곳이 있었다. 

다시 뒤돌아서 걸어오는데 그곳이 소리길 부분이고 홍류동 계곡이며 

고운 최치원이 시를 짓던 농산정이었다.

신라의 골품제 굴레에 갇혀 자신의 포부를 펼치지 못한 고운은 

그의 아호 고운처럼 전국을 고독한 구름처럼 떠돌다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이 농산정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홀연히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의 최치원.


착각은 농산정의 농자에서 시작되었다.  

농 籠 籠山 같이 간 분께서 아, 농아 농자네.....

나는 농아 농과 상자 농을 구별할 실력이 없는 사람이므로 당연히 듣지 못할 농으로 여기고 

그 말에서 나의 상상력이 발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농산정의 농산籠山을 농산聾山으로 읽으니 

산이 나를 우리를 농아로 만든다.

세상의 시비에 흔들리지 않도록 

그의 크고 아름다운 소리가 세상의 것을 들리지 않게 한다. 

농산의 주체가 산이라면 그 역시 세상의 소리를 듣지 않고 혹은 자신의 소리만 들으면서 살기에

저렇게 당당하게 긴 세월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참으로 멋진 단어가 아닌가, 

듣지 못하는 산이라니,

들리지 못하게 하는 산이라니, 

자연에 대한 놀라운 은유가 숨어있고 더불어 삶을 논하기에 더없이 좋은 단어다.      

“첩첩이 쌓인 바위 계곡을 굽이치며 온 산을 뒤흔드는 물소리에 

지척에서도 사람들의 말을 분간하기 어렵다. 

항시 어지러운 시비가 두려워 흐르는 물길로 산을 완전히 에워싸고 있노라.” 

 狂奔疊石吼重巒(광분첩석후중만) 人語難分咫尺間(인어난분지척간) 

常恐是非聲到耳(상공시비성도이) 故敎流水盡籠山(고교유수진농산)  

집에 와서 글을 쓰려고 농산정시를 검색해보니 농아 농이 아닌 

상자 농, 장롱 롱으로 에워싸다 라는 뜻,

그러니 전혀 다른 단어로 상상 속 사유를 했던 것이다.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을것인가,     

대구미술관 대구 섬유 박물관 경산숲과 경산 반곡지 우포늪 하루,

내 인생에서 줄어가는 하루하루였지만 화양연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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