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
유대의 성경주석 해설서인 미드라시(midrash)에 소개된 글로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는 다윗의 반지 이야기가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반지에 적힌 문장.
다윗 왕은 반지세공사에게 요구했다
‘내가 슬프고 괴롭고 고통스러울 때 이겨 나갈 힘을 주고,
기쁘고 즐거울 때 교만하지 않을 말을 새기도록 하라’
세공사는 지혜로운 솔로몬 왕자에게 찾아가 글귀를 묻는다.
여기서 그 유명한 문장이 생겨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
기쁨도 슬픔도 영광과 고통도 머물지 않는다는 뜻,
젊음이 지나 노년이 되고 노년도 금방 지날 것이라는…….
삶의 지혜도 숨어 있지만 인간의 한계와 무엇보다 소멸에 대한 인식이 깊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 12장)”
성경에 선명하게 어리석은 자로 명시된 부자는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지 못하고 현재만 느끼는 사람이다.
시간의 흐름과 시간의 끝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 성경 말씀을 단초로 그린 렘브란트의 작품 <어리석은 부자>에도 놀라운 은유가 숨어 있다.
그는 촛불을 책상 위에 두는 것도 부족해 아예 왼손으로 촛대를 들고 있다.
촛불을 눈앞으로 가져와 자신이 보고 싶은 것! 만 바라본다.
손에든 동전이 금화인지 은화인지 혹은 가짜인지 진짜인지를 살피고 있다.
그의 욕망에 따라 빛조차……. 오직 동전만 향하고 그의 팔은 빛을 가려서 주변은 더욱 어두워진다.
욕망이 강할수록 그늘도 짙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모자, 겹으로 된 레이스 깃이 달린 굵은 수가 놓인 옷이
그가 부자라는 것을 선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들로 가릴 수 없는 이마 위의 주름과 입 주위가 움푹하게 꺼진 모습은
그가 상당히 늙었다는 것을 짐작게 한다.
책상 위에는 여러 개의 동전이 어지러이 널려 있으며 보석이나 금이 당겼을 두툼한 주머니도 바로 곁에 있다.
펼쳐진 종이와 두껍게 철해진 장부들은 돈을 빌려준 사람들에 대한 기록일 것이다.
아래쪽 두꺼운 책들은 평생을 모아온 재산 장부다.
어둠 속에 벽장문이 보인다.
아마도 저 책상 위에 꺼내어진 수많은 서류철과 돈, 은금 보화들을 보관했던 곳이겠지.
그런데 자세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둠 속 벽장, 열려있는 그 문이 어둡고 음험한 동굴처럼 보인다.
무엇이든 들어오기만 하면 순식간에 낚아채버리는 괴물이 살고 있을 것 같은,
어둠 속에 열린 문은 갑자기 커지면서 부자를 수욱 빨아드릴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공정함과 심판을 의미하는 천칭이 어수선한 책상 위에 살짝 놓여 있다.
굳이 도상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천칭은 계산을 의미한다.
사람 사이에서뿐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도.
촛불은 마치 그의 남은 생을 의미하듯 조금 남아 있다.
저 촛불이 조금 높은 등롱 위에라도 자리하고 있다면 그가 처한 세상은 조금 더 밝을 텐데...
신기하게도 이 노인은 렘브란트가 자신의 아버지를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
이 부자가 어리석은 것은 부자라서가 아니다.
자신의 미래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지점 때문에 어리석은 것이다.
돈을 숭배하는 사람은 돈을 모으면서 자신이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 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 계속될 거라는,
‘믿음 아닌 믿음’을 지니고 있으므로 어리석은 것이다.
죽음, 종말 혹은 삶의 끝에 대한 일말의 사유도 없이 언제까지 이 상태가 지속하리라는,
오직 현재만을 바라보는 그 시선 때문에 그는 어리석은 것이다.
어리석은 부자가 기록된 성경을 보면 <내가>my가 네 번이나 나온다.
킹제임스번역에는 My가 무려 일곱 번이 나온다고 한다.
자신만을 생각할 때 사람은 어리석어진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렘브란트는 이십 대 중반 암스테르담에 오면서 삽시간에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당연히 많은 돈도 함께 따라왔다. 부자가 된 것이다.
그는 집을 사고 사치품을 사들였다.
그러나 그 영화가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그는 사치와 방탕으로 인생을 보냈는데 그가 남긴 소유라고는 붓 몇 자루였다고 한다.
눈부시게 젊은 청년시절의 그림이 그의 노년을 살짝 보여주고 있다는 삶의 아이러니라니,
언젠가 교회학교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만나면 무슨 질문을 할 것인가 물었더니
상당히 많은 수의 아이가 자신은 언제 죽을 것인가!를 묻고 싶다고 했다.
그것 알아서 뭐 할건데...라는 질문에는 선명하게 대답하지 못하면서 그냥 궁금하다고 했다.
여러 가지 해석을 해볼 수 있었지만
의외로 어린아이들이 어른보다 죽음에 대한 인식을 오히려 더 직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지혜가 보이지 않는 것, 들리지 않는 것들에 대한 센서라면,
아이들은 맑고 투명한 영혼으로 오히려 어른들보다 죽음에 대해 선명한 촉을 지닌 게 아닌가,
어둠 속에 존재한다고 하여, 지금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죽음은 존재하지 않을까.
우리가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 환하게 살아간다고 하여 죽음은 다가오지 않을까,
나만의 소소한 철학이지만 삶의 시작과 끝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훌륭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윗의 반지에 기록된 한 문장도 날카로운 예술이요.
렘브란트의 작품 어리석은 부자 역시 훌륭한 예술이다.
전도서 7장 14절에도 기록되어 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교계신문 연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