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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ul 08. 2022

헤어질 결심


영화를 보는 동안 자주 웃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이십대였을 것이다.

옆자리의 나이든 여인이 영화를 보면서 쿡쿡 자주 웃었다.

매우 거슬렸다. 그래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거겠지.

그런데 내가 헤어질 결심을 보면서 그랬다.

유머가 아닌데도 사소한 부분이 자주 웃겼다.

그때 그 나이든 여인도 그래서였을까,

젊음의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삶의 어느 부분이 보여서?

가령 조사실의 비싼 초밥

카드를 주며 싼 거 먹으라고 후배에게 말하던 해준이

조사하던 서래를 위해 초밥을 시키고 후배는 우와 저것 처리 돼요? 말한다.

초밥을 먹기 위해 책상을 정리하고

다 먹고 나서 다시 책상을 정리하는 모습이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일목요연해 보였다.

서래와 해준의 합을 보여주던 장면.

아마 박찬욱 감독은 그 장면에서 그들의 마음을, 사랑을, 혹은 내밀한 서로에 대한 배려를

담지 않았을까?



어떤 은일한 눈빛 보다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는 일상의 태도에서

그들의 감정을 잡아내는 디테일이 살아있는 영화였다.

굳이 표현해보자면

적나라한 고백은 천박해.

그런 고백 후의 진행상황은 뻔하거든,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

언제 같이 잠을 잘까,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랑이 포르노화 되어지는게 아닐까,




헤어질 결심은 헤어질 결심을 했다는 것인가, 앞으로 할거라는건가,

아니면 절대 그런 결심 따위는 안하겠다는 것인가,

절묘한 제목이다.

고백하지 않는 사랑,

대신 그들은 일상어로 묻는다.

한국에서는 결혼하면 사랑하기를 멈춥니까?

삶으로 이어지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란 것을 헤어질 결심은 보여주고 있었다.

매순간 해어질 결심을 하고

매순간 헤어질 결심을 버리는 영화

그 모든 것 위에

탕웨이가 있었다.


한국어가 서툰, 미묘한 억양의, 그리고 건조한 번역어들, 그 모든 것들이

산그리메와 안개처럼 , 잘지은 오래된 저택의 지붕 처럼 서로 레이어드 되면서 영화를 기품있게 만들어준다. 

영화를 보면서 자주 웃었는데

생각해보니 서래의 웃는 얼굴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해준은서래의 알리바이를 다시 서래에게 돌려준다.

깊은 바다 속으로 던져버리라고,

어떤 사랑의 고백보다 더 강한,

자신이 붕괴되는 것을 알면서도 실천하던

해준의 사랑 고백이었다



굳이 나눠보자면 두 챕터의 영화라고 할수도 있는데

서래는 두 번째 남편과 이포, 안개가득한 도시,

무진을 연상케 하던 이포로 해준을 보기 위하여 이사한다.

그리고 해준의 사랑고백으로 해준을 위협하려던 그를 기묘한 방법으로 죽인다.

그러니까 이영화는 해준과 서래의 붕괴 이야기라고 할수 도 있다.

같이 옷벗고 잠자지 않아도 충만한 사랑,

그런 사랑으로 인한 붕괴.


마지막 장면

서래를 부르며 파도 위에서 헤매고 뒤뚱거리던 해준의 모습이

상투적이면서 과하지 않나를 생각했는데

그 파도를 생각해보니 아니었다.

파도는 천천히 느린 듯 다가와 서래를 삼킨다.

그리고 해준은 그 서래를 심킨 파도 위에서 서래를 찾는다.

파도는 더욱 세차지고 검푸르러지고.....

감독은 아마 그 파도로

서래없는 해준의 인생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느끼고 볼만한 거기다 소소한 스토리의 연결이 놀라운 재미까지 놀라운 수작.

글을 쓰려면 한번 더 봐도 좋겠다. 싶은 마음이 있지만 나중에 ....티비로 봐야지

아 그 이야기도 있네. .

몇년 전 영상자료원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작품들을 기획 상영한 적이 있었다.

부지런히 다니면서 제법 봤는데

그 때 어느 영화에선지 영화를 보고 일어서는 박찬욱 감독을 봤다.

오, 감독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구나 생각 하다가

감독만큼 영화 많이 본 사람이 어딨을까, 생각했던 기억.


<아가씨>와는 엄청 다른 영화, 아 그 영화도 물론 나름의 매력이 있었지만

늘씬하고 예쁜 젊은 여자의 몸이 좋은 영화를 가렸다면

<헤어질 결심>은 탕웨이의 손가락만으로 사랑을 이야기 할수 있는

그래서 사랑이 전면에 부각되는 영화였다.

요즈음처럼 부박한 시대에는 잘 보이지 않는 드문 러브스토리.

리얼리티한 영화라

거기 멜로를 넣어도 말랑거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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