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
아들 회사에서 호텔을 잡아줘서
여름 여행을 다녀왔다. 부산
내 여행지론 중의 하나가 무엇이든 정점일 때 안간다는 것인데....,
축제 때도 피하고 바캉스 철도 피한다.
주말이나 휴일도 피하고 한여름도 한겨울도 내 스스로 계획을 세우지는 않는다.
누군가들과 함께라면 몰라도.
소심한 여행가지만
어떻든 공짜 호텔 숙박권이 생겼으니 팔월 둘째 주에 부산으로
KTX를 타고 뚜벅이 여행을 떠났다.
부산역 앞에서 부산에 오면 먹어야 한다는 돼지국밥을 검색해서 갔더니 줄이 길다.
바로 그 옆의 한가한 집으로 들어갔다.
홍보 탓일까, 우연히 입소문이 나게 된것일까,
나는 그런 것이 궁금하다.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대목들.
마지막 날 돌아오는 길에 저녁으로 먹었는데 돼지국밥이 돼지국밥이지.....
국밥이란 단어에는 묘하게 가난과 서민과 非깔끔이 서려 있다.
나는 가난한 서민이지만
비위도 약하고 청결에 대해 예민하고 눈초리가 날카롭다.
더러움에 대한 상상력이 풍부해서 쓸데없이 피곤할 때가 많다.
그래도 나는 국밥을 좋아한다. 국물요리를,
첫날은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부산 박물관에서 내렸다.
조선시대 목기류 전시를 하고 있었다.
그릇이나 도자기는 관심이 좀 없어서 여기저기 다니며
옛그림을 찾아서 보았다.
체험관이 있어서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과 한참 말을 했다.
그녀는 서울 국립 박물관 이야기를 했다.
오 나의 최애장소예요. 전시가 바꿀 때 마다 가보는 곳이죠.
나는 턱도 없이 자랑스레,
사실이긴 하지만 말을 했고
그녀는 그런 나를 부러워했다.
서울 치중 문화에 대해서도
이제는 큐레이터 역량이 아주아주 중요하다는 이야기에 서로 동감을 표하기도 했다.
정원에 배롱나무가 근사하게 피어나 있었다.
나무는 더위를 타지 않는걸까? 배롱나무가 참 시원해 보였다.
생각보다 송도와 해운대가 멀었다.
택시를 탈까 하다가 돈이 아까워서 다시 버스를 탔다.
버스만 타면 천국이다. 시원하기가.
그리고 택시보다 훨씬 더 느긋하고 커다랗게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다.
아 택시를 안 타길 얼마나 잘했는가,
송도 메리어트는 지은지 오래되지 않아서 깔끔했고 바닷가 뷰가 좋았다.
생각해보니 시티투어버스가 또 다른 속박을 요구하더라.
시간을 맞춰야 했고 그러자니 마음이 급해지고 느긋함이 없었다.
둘째 날은 버스를 검색해서 그냥 일반 버스를 탔다.
네이버 지도가 얼마나 좋은지....
그리고 오후에는
부산시립 미술관.
좋았다.
특히 이우환의 공간이,
돌과 철판의 이야기가, .
그러게,
이제는 돌이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
혼자 라서 쓸쓸한 사람등
바다위에 길을 만들어서서
송도 구름 산책로라고 했다.
밤새 내 그 길위에 조명이 켜있엇는데
전기가 아까웠다.
세째 날은 숙소가 있던 송도의 케이블카를 타봤다.
우리나라 최초의 케일블카가 설치 된곳이 바로 송도였다.
바다 위를 지나가는 케이블카는 ,
동섬을 잇는 송도용궁구름다리를 걸을 수 있었다.
호텔 방에서도 케이블카가 보였고 용궁 길이 보였다.
우리나라 처음으로 케이블카가 시작된 곳이 송도였다.
방에서 바다가 바로 보였다.
젊었을 때 통영 마리나 리조트던가,
그곳에서도 바로 창문 아래가 바다였다.
그 때는 그런갑다......
젊을 때는 그런 갑다 하고 . 심상하게 지나치는 것들이 태반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사소한 것들도 잘 멈추게 한다.
그리고 이모저모를 살피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생각해보면 의외로 나이 든 시간이 차질 수도 있는 것이다
창문을 조금 열어놓으니 파도 소리도 제법 철썩인다.
이른 아침인데도 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벌써 물에 들어가 놀고 있다.
물가를 걷는 사람도 모래사장을 뛰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나처럼 풍경이 되지 못하고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가 그분을 보았다. 방이 11층이니 사람들의 크기는 내 손가락 정도일까
그래도 신기한 것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어른인지 아이인지 다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처음 발을 떼는 아이들도 빨리 걷지는 못한다 그러나 아주 성급하고 생기찬 에너지가 있어 느림과는 다르다.
그분은 그분은 지팡이를 집고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 위아래가 어두운 무채색 옷을 입었다.
고개를 숙이고 지팡이를 짚은 모습이 달빛 화가 존 엣킨스 그림쇼의 니어링 홈에 나오는 할아버지였다.
환한 달빛이 내는 길을 아주 작은 손주와 함게 걷는 그림.
아이는 하늘의 달을보며 뭐라고 하는지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고
그 아이의 보호자는 할아버지인데도 오히려 아이에게 기대는 것 같은 늙고 외로운 모습,
건강한 사람이라면 몇 발자국 되는 거리를 오랜 시간 걸었다.
그리고 다시 걸어서 아이들 수영장 주변의 의자 위로 돌아왔다. 온 몸의 에너지를 다해서 걷는 걸음.
걸음이 아니라 마치 모래 위에 자신의 존재를 새기는 것 같았다.
그렇다. 누군가는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으로도 곡진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
여전히 햇살은 작열하며 여름의 핏대를 세우지만
여름 자신도 다가오는 가을의 침묵도 알고 있다. 사라지는 여름의 향기를,
모든 정점이 쇠락의 조짐을 풍성하게 품고 있다는 것은 삶의 어느 한 부분을 예시해주는 데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