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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Aug 26. 2022

맨발로 걷다

주전골


한계령에 있는 오색 그린야드에서 일박 이일 모임이 있었다. 

이번에는 내 차로 움직였기에 가고 싶은 길로 갔다. 

시간은 고속도로보다 한시간 반 정도 더 걸리지만 한가하고 느긋한 국도와 지방도를 이용한 길.

그것도 북쪽 나라 가까이.

그니까 어딜 목적으로 삼는 여행이 아니라 가는 길 자체가 여행이다. 

탐욕스러운 여행일 수도 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여행으로 채우고 싶은 욕심이 그득하니까, 

길 위에서 잠시 잠시 쉰다. 

가령 화천의 연꽃단지,

사람 하나 없는 넓고 넓은 연꽃 정원에 우리밖에 없다. 

그리고 그 주변에 벚꽃이 주욱 양쪽으로 심어져 있는 꽤나 긴 길이 있는데

우리 봄에 오자, 

봄에 오면 참 좋겠다.

서로들 말한다. 

이룰 수 있는 약속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그러나 그 순간을 미래와 연결시켜 충일하게 만드는 그런 기대에 찬 대화다. 

철 지난 연꽃밭은 가을을 품고 있다. 

올해 초 가뭄을 보여주듯 군데군데 빈곳이 동그라미 버즘처럼 있었고, 

어느 곳에는 키도 엄청나게 크고 아주 굵게 자란 연꽃이 피어나고 있었는데,

같이 사는 한 단지 내에서도 버젓하게 다른 이 불공평함이라니,

자연의 불공평함이, 

자연을 스승으로 보는 나 같은 이에게는 

당연히 우리 삶에 기대어서 바라보게 되고 

불공평함이 아닌 섭리라면, 

그 불공평함으로 보이는 것들이 공평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기실 이런 사유는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합리화라는 비겁한 성정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도 그러하니 

우리네 인간사의 불공평함은 정말 공평함일 수도 있지 않을까, 

더불어 이런 사유는 비교에 지친 이들에게 쉼을 허락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비교는 삶을 허비하는,

소모적인 양태를 지닌 몹쓸 소비재이다.

여행은 그리고 자연은 그것들을 버리는데에 도움을 주는 시간이다.

지난해 언젠가는 이 길을 남편과 둘이서만 지나왔다. 

그래서 더 온전히 풍경을 바라볼수 잇엇는데

역시 동행이 있다는 것은 풍경에 몰입하게 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또 좋은 점도 있고

연천 지나 포천으로 살짝 왔다가 화천으로 그리고 다시 양구로 갔다가 한계령을 지나 오색으로 간다. 

한계령은 서늘했다. 

차에서 내내 에어컨을 켜고 달리는데도 한계령은 서늘했다. 

고도의 차이기도 하겠지만 저 깊은 숲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깊은 숲과 깊은 산은 다 서늘할까,

어두움 때문에? 고독해서? 

이런 논리는 썩 맞거나 검증되지도 않는 것들인데

어쩐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숲과 나무 풀들은 

다 깊으며 

깊음 가운데 존재하며 

그들은 그래서 존재의 성찰을 하고 

그래서 서늘하며 

그래서 고독하리라는 것, 

그리고 그 곁에 나는 나를 세워놓고 있다. 

나는 천성이 긍정적이고 비교적 명랑하여 썩 그리 고독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왠지 자꾸 고독이 나의 근간이라도 되듯이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문학이 왜 어두움 속에서 그늘 속에서 고독속에서 태어나는가, 

그래서 글줄(글을 쓰는 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이 맞다)이라도 쓰고 있는 지금

내 시선이 그렇다는 것인가? 

저녁을 먹고 온천을 했는데

오색탄산온천, 우리 숙소가 오색그린야드호텔이었다. 

호텔이라기보다는 앤틱한 숲속의 산장 느낌이 나는,

그런데 이제 번쩍번쩍한 화려한 새것들보다는 그렇게 늙수그레한 건물이 편하다. 

물론 그 반대인 곳에서는 또 오, 아,ㅡ 역시! 감탄을 내뱉긴 하겠지만, 

자를 때가 되었는데 하던 조금 자란 손톱이 아주 새까맣게 변했다. 

마치 밤새네 고구마 순이나 토란 줄기를 깐 엄지 검지 손톱처럼

열 개의 손톱이 다 까맣게 변했다. 

신기하도다. 

그러니까 내 손톱이 그 물의 어떤 성분을 흠뻑 빨아드렸거나 

나의 어떤 부분과 그들이 만난 화학작용 때문일 것이다. 

다음날 다른 방에서 잔 남편에게 손톱을 내보이며 그랬다. 

나 어제 밤새 내 고구마 줄기 깠어.. 

뭥미? 하는 표정이 잼있어서 몇 사람에게 똑 같은 짓을 했다.


아침을 먹고 주전골 산책을 했다. 

무슨 산길을 걸겠나, 생각하며 운동화를 안가져 갔는데 다들 걷자는 것. 

아주 편한 샌달이지만 굽이 좀 있어서 

혹시라도 삐끗 할 까 싶어서, 

그리고 남들도 그러더라, 해서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안할짓거리인데

왜냐면 가끔 정발산에서도 맨발로 걷는 이들을 보며

약간 기이하군, 

아니면 늙으니까 저런거야 건강을 생각해서 

그 두부류에는 끼지 않고 싶었는데 주전골에서 그것들을 버린 것이다. 

숲속에서 그리고 숲의 풍경과 계곡의 물소리 때문에 기분이 업된 탓일게다. 

약간 흥분하니 그렇게 신발을 벗어 던질수가 있었던게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매끈한 돌길과 데크길 그리고 가끔 나타나는 온전한 산길등이 의외로 걸을만 했다. 

그리고 맨발은 상당히 안전했고 미끄러지지도 않았다.

용소폭포 까지 맨발로 거뜬하게 오르고 맨발 사진도 찍었다. ㅋㅋ 

내 맨발은 엄청 하얗긴 했지만, 

그렇다. 그러면서 나는 할머니가 되어가는 것이다.

할머니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어떻게 보여도 상관없다는

그러나 당당함 보다는 체념이 더 강한, 소외다.

슬픈 소외지만 그 슬픔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렇다고 전부 다 100%가 그렇다는것은 아니다. 

어느 한 갈래가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결이 많아진다고도 볼 수 있다.

수많은 결로 머리 곱게 따듯이 잘 따봐야지.

울엄마가 내 머리를 참빗으로 곱게 빗어 기영머리를 땋아 주듯이

내가 우리 규서 유치원 다닐 때 머리를 아주 촘촘히 여러갈래로 땋아 주듯이 

이젠 내 가슴속 결을 참빗으로 잘 빗어서 곱게 가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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