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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Nov 01. 2022

매혹으로서의 연극

네 배우의 모놀로그


행운이었다. 

신문 기사를 봤고 전부 초대석이었는데 그곳에 적힌 전화번호를 눌렀더니  어머 가능하단다.

초대석이라면 주최 측에서 이미 많은 사람을 초대했을 것이고 

나는 초대를 받지 못했으니 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ㅡ생각하면서 전화를 했는데

예쁜 단풍처럼 나풀거리는 초대장을 받게 된 것이다. 

작은 행운에 너무 거창한 이론을 엮는가 싶지만,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다. 

안 될 것을 알면서도 하는 작은 행위에 응전이 있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앞으로도 잊지 말아야 할 액션이리라.  

그래서 네 배우의 모놀로그, 그것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들

박정자 오현경 손숙과 이호재가 하는 연극포럼, <매혹으로서의 연극>을 만났다.      

오현경이 36년생 이호재는 41년 박정자는 42년 그리고 손숙은 44년생이다.

공식적인 노년이었지만 무대 위의 그들은 청년이었다.

공명을 지닌 목소리와 정확한 발음 구사, 전달력 확실한 젊은 배우들이었다. 

자신이 해왔던 연극 중에서 가장 좋거나 멋졌던 (물론 그런 표현을 딱히 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점을 연기했고 

그리고 자신의 연극 인생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평생을 연극 무대에서 살아온 배우가 그 연극무대에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연극스러운, 무대 위에서의 자서전이라고나 할까,  


   

오현경은 이강백의 <봄날>을 연기했는데 

시골 동네의 늙은 홀아비가 젊은 여인을 안고 자면 회춘한다는 말을 믿고 

아들이 짝사랑하는 동녀를 방에 끌어들인다는....

마치 기와집 날렵한 지붕선처럼 사람의 탐욕을 스리슬쩍 보였다가 접는 모습이 가히 일품이었다. 

극본을 찾아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다. 

한 사람의 관객에게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배우의 자존심이라는 노배우의 자존심은 

연극판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삶에서 지켜내야 할 덕목이 아닐까,     


이호재는 맥베스를 연기했고 무거움 대신 가벼움을 말했다.

즐겁고 재미나는 연극을 앞으로 더 하고 싶다는 그의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평생을 진지한 연극이라는 무게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고 

이제 나도 가끔 그러질 않던가. 

진중했던 삶이 버거워 가벼운 유머나 즐거움에 혹할 때가 있으니

이 또한 노년이라 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청년이여 너는 늙어봤니, 청년이여. 나는 젊어 봤다.     


손숙의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의 한 대목은 박완서 소설이 원작이다. 

나는 그 소설을 아주 오래전 읽었는데 

작가는 실제 참척을 당하고 알마 안되 남편 까지 잃은 커다란 슬픔을 겪은 후 쓴 글이다.

수 날을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끓여준 녹차가 목으로 넘어가더라는

글을 읽은 적도 있다.    

동서 간 전화 수다로만 된 소설의 정점이 손숙의 연기로 무대 위에서 피어나니

살짝 눈물이 났다. 

친구 명애는 죽음보다 못한 삶의 현장을 보여주려고 

거의 백치가 된 아들을 간호하는 친구에게 병문안을 가자고, 

친구라고 할 수도 없을만큼 늙은 파파할머니가 된 친구는 

아들이 욕창이 날까봐 마치 공깃돌처럼 그 커다란 아들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는데....

그런 아들이라도 살아 있음에 대한 부러움으로 통곡을 터트리는.....      

손숙은 환경부 장관이 되어 한달여만에 뇌물을 받았다는 이유로 낙마한 후 

그때 죽고 싶은 자신을 살려낸 것이 바로 연극이었다는 고백을 했다.  


    

박정자는 단아한 모습으로 고연옥작 <꿈속에선 다정하였네>중 헤경궁 홍씨를 연기했다. 

실제 무대를 같이 했던 정동환의 목소리가 함께 했는데 

고아하고 우미한 시적 표현들이 박정자의 목소리와 기막히게 어울렸다. 

힘있으면서도 아련한 슬픔의 빛깔이 극장 안을 물들여 가는것처럼 여겨졌다.   

그는 1‧4 후퇴 피란길을 떠났는데 그곳이 바로 제주도 성산포, 

한밤중에 배에서 내렸는데 

그 차가운 겨울날 

휘영청 밝은 달빛과 맑은 물빛이 세상에 가득했던 그 날을 잊을 수 없다고. 

달빛이 너무 영화 같았다고, 

제주 피난 시절  크리스마스에 천막 교회에서 춤추고 노래한 무대가 자신의 첫 무대라고....    


 

수려한 나무의 키처럼 가을이 깊어가는 시절이다. 

솟아나는 새 이파리가 우리에게 주는 생명의 덕을 쉬 형용할 수 있으랴만  

저물어가는 단풍이 주는 정한 역시 봄의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날 나는 밤색 바지에 밤색 쉐터를 어깨에 살짝 걸쳤다.

키 작고 통통한 몸매에 어디 멋이 깃들까만, 

이제 사실 타인의 시선 같은 것 그다지 무겁지 않다. 

저 선연하게 물든 낙엽도 저리 홀홀히 져내리지 않는가. 

그러니 발걸음 가볍게 다닐수 있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밖을 바라보다가 내려서 셔틀버스를 타고 국립극장을 찾아가는 길은 

내겐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한 편의 가을 에세이였다.

노오란 은행잎들은 글을 빛내주는 아름다운 제목이었고 

한그루에서 미묘하게 다른 빛으로 변해가는 느티나무의 단풍은 차진 문장처럼 여겨졌다.

이르게 진 가지에 이파리 몇을 매달고 있는 벚나무들은 애끓는 절창이 아니런가,

가을의 정서를 함뿍 느낄 수 있는 벗과의 동행도 가을에 가을을 더했다.

벗이여 그대도 느꼈을 것이다.

그 무대 위에서 빚어진 삶의 다양한 편린들이 

우리가 실제로 바라봤고 손수 경험했던 부분들이라는 것을,

그래서 무대 위의 삶이 우리와 별의 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네 삶이란 것을, 

그러나 또 무대는 무대라서 

우리의 삶을 객관화 시켜주는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오 가을이라서 더욱 그리한지도 모르겠네. 


그날 양희은도 초대를 받았는지 극장 앞 벤치에 앉아있었다. 

차마 사진을 못 찍다가 이층에서 살짝 ㅋㅋ

뒷모습은 동생 양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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