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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Dec 10. 2022

누님


누님, 

죽은 사람도 산사람도 소식이 없는 시절, 

늦가을 스산한 해거름, 

마루 끝에 주저앉은 누님을 김사인의 시에서 만납니다. 

누님이라는 호칭이 그다지도 쓸쓸하고 아름다운 단어라는 것을 시에서 느낍니다. 

그래서 문득 누님을, 

평생 불러보지 못한 이름을 불러 봅니다. 

12월 첫날이었어요. 

누님, 

그때 저는 제주에 있었는데 한라산에 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서 카톡으로 전해 들었습니다. 

뉴스를 떠나는 게 여행이기도 합니다. 

숙소에 들어와서 가져간 책을 잠이 올 때까지 읽거나 

제주도 지도를 바라보는 것이 일과인 아주 단출한 생활, 

그래선지 풍경은 더욱 낯설고 비범합니다. 

꼭 풍경이 아니더라도 여행은 일상을 떠난 부유하는 상태라선지 

육체보다는 정신에 근접한 시간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서울에서도 무서워하는 눈인데 언감생심 한라산을, 

사실 하루 전날에도 1100로를 거쳐 어승생악을 다녀온 터라, 

아 어승생악의 바람은 그렇게 자주 제주도를 다녔음에도 

왜 제주의 삼다에 바람이 들어가는지 처음으로 경험하게 했습니다. 

누님 제 몸이 휘청거리더군요. 

어승생악에 서면 아흔아홉골이 보인다는데 너무나 바람이 세차서 

한 바퀴 돌지도 못한 채 화급히 다시 골짜기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거기 오래 있다가는 정말 몸이 어디론가 날아갈 것 같았으니까요. 

제주 산록도로에 위치한 숙소에서 제주 도립 미술관을 가려고 다시 1100 도로를 향하긴 했어요. 

그 길은 조금 구불거리긴 하지만 차도 적고 무엇보다 한라산 자락이라 온통 양옆이 숲이거든요.

직선이 없는 곡선의 길이니 누님의 신산한 생애 같은 길이겠지요. 

무엇보다 누님

저는 습지를 좋아합니다.

습지는 뭐랄까, 아늑하죠. 그리고 부드러워요. 

아무래도 다른 지역보다는 낮아서 위화감이 없다고나 할까, 

살아갈수록 부드러움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 습지가 1100m처럼 높은 곳에 있으니 길이름도 110도로라고 붙인 거겠지요. 

가는 길이니 오늘은 습지도 들려서 좀 걷다가 가야지 생각하며 일부러 그 도로를 찾아서 간 거죠. 

감히 눈을 보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무가 조금씩 하얘진 듯 느껴졌습니다. 

가만 저게 뭐지? 왜 그렇지? 

그때쯤이었을 거에요, 내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나풀거리며 눈발이 내린 것이. 

누님 

추락하는 것에 날개가 있다는 말은 추락 자체가 신비로움을 지녔기 때문일 겁니다. 

가장 흔한 비가 내릴 때도 빗방울 신비롭지 않던가요? 

더군다나 눈은 날면서 내립니다. 

첫눈은 가볍기 그지없어 땅의 중력 같은 것은 무시한 채로 아주 가벼이 떠다닙니다.

다시 하늘로 그리고 숲으로 차창 앞으로 아무 데나 거침이 없습니다. 

마치 눈의 세상으로 진입하는 것 같았습니다. 

1100고지 습지에 도착하니 어승생악도 한라산도 온통 하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 습지는 

누님, 

마치 누님같습니다. 

미리 자신을 들여서 낮아지고 또 낮아지는, 

그리고 그안에 물을 품어 다른 생명들을 살리는 거죠. 

물은 생명이지만 물의 성향은 어디론가 가고야 말죠. 

흐르고야 마는 그 성질을 감싸 안는 곳이 습지입니다. 

습지는 육지와 뭍을 이어주는, 혹은 산과 산사이의 관계성 지형입니다. 

물에게 습지는 여유나 여백이며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고보니 

누님 제가 습지를 정말 좋아한 듯 싶습니다. 

우포늪을 걷는 동안 입을 내내 벌리며 걸었고 

강화의 매화마름 자생지, 대암산의 용늪에서는 늦가을에 봄타령을 했으니까요. 

양양의 쌍호습지에서는 먼 선사시대의 소리를 들어냈고 

작지만 연천의 한옥 카페 주변의 습지도 걸으면서 아이고 좋네를 연발 했습니다. 

누님. 

무채색의 흰 세상에서 낼 수 있는 소리라고는 아, 오, 우, 

육개월 된 손주의 옹알이 같은 소리가 생각 없이 튀어나오고, 

시들어가는 나이 답지 않게 가슴이 뛰고 설레고, 

지난번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지나면서 교회의 종소리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사라져버린 소리였는데 

도심 한가운데서도 도시의 외곽에서도 교회의 종소리는 거침없이 울렸습니다. 

기쁨의 탄성, 

누님

탄일종, 

아득한 교회의 종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습니다. 

누님,

1100고지 습지.

온통 희디흰 세상 앞에 서니

나조차 은빛이 되는, 

찬연한 시간이었습니다. 

눈은 겨울의 위로 여행의 향기였습니다. 

<한 주먹 재처럼 사그라져/먼데 보고 있으면/누님, 무엇이 보이는가요./아무도 없는데요/김사인의 고향의 누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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