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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Feb 25. 2023

그대가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

무장애 노을숲길













나도 자주 글에서 그대를 언급한다. 

내가 언급하는 그대는 내 글을 읽는 당신이다. 

나보다 젊어도 좋고 나이 들어도 좋으며 나와 비슷해도 좋다. 

여자라서 좋고 남자라고 해도 좋다. 

어린 소녀 소년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그대는 사람이다. 

내 글을 읽는 사람. 

그렇다고 그대가 꼭 사람만은 아니다. 

가끔 나의 그대는 계절이기도 하고 눈이기도 그리고 비와 좋아하는 나무와 풍경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그대는 얼마나 폭이 넓고 깊은 단어인가. 특히 이런 경계의 시절! 

동네를 살짝 벗어나 북쪽으로 향하는 자유로에 들어서면 하늘도 넓지만, 왼쪽으로는 한강이 흐른다. 

돌아올 때는 더 가깝게 오른쪽으로 펼쳐진다. 

하구라서 제법 넓어 바다 같은 한강의 물빛은 때마다 다르다. 

서쪽으로 해가 이윽하게 기울며 강물에 윤슬을 창조해낸다. 

윤슬은 물방울 결결이 다른 빛을 만들어 낸다. 

만조였던지 유별나게 찰랑거리는 강물은 푸르른 지중해가 저리 아름다울까, 궁금하게 만든다. 

운전해주는 벗이 있어서 강물을 깊게 바라보는 호사를 누렸다. 

나의 벗인 그대는 나이만 동갑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과 살아가는 모습, 지향점도 같아서 같이 하는 밥상은 늘 즐겁다. 

설마 이 풍성한 시절에 진수성찬이 즐거우려고, 함께 하는 벗 때문에 즐거운 게다. 

커피도 그렇다.

우리는 둘 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커피 양이 많지 않다.

그래서 커피 공장의 달콤하면서도 자그마한 아인 슈페너가 딱 알맞다. 

카페로는 이른 봄 햇살이 길게 새어 들어오고 지난해 비 오시던 날 가지에 맺히던 빗방울을 기억나게 하는 나무에 

어머, 새순이 나오나 봐. 

카르페디엠이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나중에도 행복할 수 없다. 

행복은 일종의 학습이자 실력이다. 

긍정의 사유이며 비교 불가의 행위이다. 

그래서 또 메멘토 모리이기도 하다. 

헤이리 옆에는 자그마한 야산이 있다. 

그 길에 무장애 노을 숲길이 있어 걷는다. 

노을 때는 아니지만 노을을 상상하며 걷는다.

1KM가 채 안 되는 짧은 길. 

어디메쯤 봄이 오는가. 

봄의 길을 생각하게 하는 길이다. 

봄의 길은 얼마나 많은가, 

세상 모든 자연들을 이루는 존재들은 저마다 봄의 길을 지니고 있다. 

공간과 사물, 그리고 사람의 마음 역시 그러하다. 

자그마한 봉우리에 올라서니 세상에 사방이 툭 트였다. 

북한도 보이고 일산과 강화도 보인다. 

높은 산만 산이 아니다. 

작은 산도 산이다. 

골 깊은 산만 산이 아니라는 것, 

산을 살짝 사람으로 치환해도 된다. 

그러면 아주 작은 나 같은 사람도 위로가 된다. 

전망대에 김옥상의 작품이 있다. 

철판에 시를? 글을? 오린? 그린? 판? 작품이다. 

빛 때문에 글자가 보였다가 살짝 다가서면 글자대신 형상이 보이기도 한다.

마크 로스코는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는 거리를 지정해주기도 했다. 

약간의 거리 차이로 글이 보이고 형상이 보이는 것, 

글이 지닌 형상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이 수많은 글자를 철판에 새기며 알았을 것이다. 

작가는 글자가 지닌 글의 힘보다 더 아름다운 형상의 힘을, 그 조화로움을, 

그러나 시 역시 아름답고 강했다. 

드문드문 읽어내던 구절.

“나를 넘어 그대를 넘어 이념을 위하여 이념을 버리고 민족을 위하여 민족을 버리고” 

북한이 바라보이는, 아직도 군인들의 훈련 터가 여기저기 보이는, 북한이 고향인 이들의 마지막 집인 동화경모공원이 보이는, 

이곳, 참으로 어울리는 시가 아닌가, 

<초조한 눈빛과 어두운 몸짓과 암호 속에 떨려오던 그대 목소릴 깊이 간직하리, 

살아 있는 동안 떨리는 목소리 울려오는 곳에서 떨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꿈꾸고 피 흐르는 대로 시를 쓰리

/그대가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신대철 >

시인은 군복무 시절 북파공작원을 안내해서 북한으로 보냈다. 

그래서 시인은 누구인지 모르는 북파공작원인 ‘그대’를 사랑하기 위해, 기억의 힘으로 시를 쓰는 것이다. 

나의 그대와는 사뭇 다른, 

봄이 오고 있다. 산책길에서도 봄을 시작하는 시춘목, 산수유의 꽃망울이 아주 조금 벌어졌다. 

그 사이로 연노랑 빛이 살짝 보인다. 이 작고 동그마한 몽우리는 며칠 지나면 왕관 같은 흔들리는 떨잠을 피어내리라 

그렇다. 

우리는 지금 아모르(Amor) 파티(fati)중이다. 

파티는 파티가 아니다.

아모르 파티는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으로 니체가 사용한 라틴어이다.



사진은 빌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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